탈북자가 바라보는 대한민국의 안보 (1)
  • 도명학
  • 2010-12-27 16:5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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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평도에 대한 북한의 포격이 감행된 이후 안보의식에 긍정적 변화가 보이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반도가 평화상태가 아닌 휴전상태에 있음을 망각하고 살던 사람들이 그로 인해 정신을 차렸다면 얼마나 좋을 까.

 

사실 안보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의 의식을 깨우는 데는 천안함 사건 하나만으로도 충분했어야 했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은 그 진실여부를 의심하는 여러 가지 입장과 견해들이 충돌하면서 안보의식 제고에 별로 큰 영향을 끼친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그것을 6.2지방선거에 이용하기 위한 안보장사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가해자에 대한 비난보다 더 높았다. 심지어 북한의 소행임을 밝힌 합동조사단의 결과에 대해 의심하며 유엔에 정부와 상반되는 내용의 서한까지 보내 나라망신을 시키는 집단도 있었다.

 

강경대응을 선포한 “5.24조치”도 그 실행이 어설프기만 했다. 대북심리전도 당장 재개 할 것처럼 하더니 중파나 단파방송보다도 실효성이 없는 FM방송을 송출한 것이 고작이다. 상대가 조준격파사격을 경고하자 확성기방송도 못하고 있다.

 

당시 고 황장엽 전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에게 탈북자들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은 가고 의견을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황장엽 선생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떻게 되긴? 그저 그러다 말겠지.”

과연 그랬다. 그저 그러다 만 것이 강경대응의 결말이다.

 

유가족의 눈물도 채 마르기도 전에 북한은 이산가족상봉회담을 제안하고 수해지원물자를 요구했으며 금강산관광재개문제를 들고 나왔다.

남한을 얼마나 허술하게 보았으면 그랬을까. 한번 태도를 떠보자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능구렁이 같은 독재자에게 남한은 마음대로 해도 되는 장난감이 되고 말았다.

 

연평도에 대한 보다 대담한 도발이 그래서 용이했던 것 같다. 맞아도 맞은 대로 “그저 그러다 말겠지” 하고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국가관, 안보관이 철저하게 서있지 못하면 당하고 살 수밖에 없다.

남북관계의 본질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남북관계는 어느 쪽에 민족의 정통성이 있는가 하는 다툼, 누가 친자고 누가 서자냐 하는 싸움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 과정이 전쟁이든 평화든 아니면 대화와 협상이든 모든 것은 상황에 따른 전략이고 전술일 뿐이다. 이것이 솔직한 남북관계의 본질이다.

 

그런데도 북한이 주적이냐 아니냐 하는 논의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주적을 구별 못하면 천안함을 미국이 침몰시켰다는 해괴한 소리를 들어도 머리를 끄덕이고 연평도 포격사건이 남측의 사격훈련이 빚어낸 후과라는 북한의 억지주장에도 귀를 기울이게 되어있다.

 

국가가 안보위기에 처했는데 자기가 투자한 주식 값이 좀 떨어졌다고 평화를 구걸하지 않고 맞대응 한다고 정부를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 두려워 강경대응을 싫어하는 국민이 많으면 정부도 나약해 질 수밖에 없다. 선거표를 의식하는 것이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하루를 하고 탄핵되는 한이 있더라도 안보에 있어서만은 한 치의 양보도 있을 수 없다고 각오한 지도자가 대한민국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군대도 행정관료화 되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한 탈북자가 이런 말을 했다.

 “잘못 대응했다가 책임 때문에 군복 벗으면 월급 없다고 마누라한테 쫓겨날까봐 무서웠겠지”

군인답지 못한 처사가 못 마땅해 한번 해본 말이겠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군대가 사람 죽이는 방법이나 가르치는 곳이라고 폄하하는 여성을 아내로 둔 군인이 있다면 그럴 법도 하다.

 

군복무 기간도 고무줄마냥 줄었다 늘었다 하는 것이 보기에 안 좋다. 주적인 북한은 10년 이상 군 생활을 해야 한다. 북한에서 2~3년 군대 갔다 온 사람은 창피하여 어디가 군대 갔다 왔다는 말도 못한다.

 

그런데 남한에선 고작 18개월이니 21개월이니 한 것을 가지고 참 말도 많다. 그런 의식이라면 군복무 1개월을 규정해도 이번엔 1주일로 줄었으면 할 것이다.

 

전쟁에 대비한 대피시설도 문제다. 연평도와 백령도에서 대피령이 내리자 수용능력이 모자라 들어갈 자리가 없는 주민들 일부가 집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은 비참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되어 최 전연에 있는 대피소가 북한의 최후방에 있는 대피시설만도 못하단 말인가. 북한에서 본인이 살던 곳은 백두산이 가까운 최후방이다.

그런데도 대피시설은 연평도나 백령도에 비하면 월등하다. 견고한 갱도에서 몇 달이건 사람이 살아갈 수 있게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을 자랑하면서 북한보다 무엇이 모자라 대피시설 하나 제대로 갖추지 못한단 말인가.

 

걸핏하면 멀쩡한 도로를 뜯어내고 다시 포장하거나 별로 급하지도 않은 동사무소나 구청사를 막대한 자금을 들여 신축할거면 대피소 하나라도 잘 만들었으면 좋겠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잘 고쳐야 한다.

 

전쟁을 바라지 않는 것과 전쟁을 두려워하는 것은 다르다.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한 이순신장군의 말을 깊이 음미해 보게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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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굴 작성일

지당하신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