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하는 탈북민, 국회의원을 꿈꾸다....
  • 청계산작은할아버지
  • 2011-05-25 14:28:28
  • 조회수 : 1,934

"한 방울의 물에 온 우주가 비낀다."

-작은 것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는 격언-

 

건국초기에는 학자들이 할 일이 없다.

한반도의 통일을 대한민국의 제2의 건국이라고 본다면, 사실 행동주의자들이 필요할 때이다.

 

여기서 행동주의 자(者)들인, 여러... 분들을 잠시 열거해 보고자 한다.

그들은, 탈북민들의 관심과 지적을 동시에 받는 사람들로서 작금(昨今) 탈북민사회의 대안 없는 미래라 받아진다.

 

필자가 이들을.... '대안 없는 미래'라 전제(前提)하는 것은, 현재 이들을 능가하는 인물들의 출연이 없고, 동시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재들의 풍성함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많은 사람들이 난세(亂世)의 영웅이 되기 위해 나설 것이고, 그들이 제발... 나와야 하기에 지금은, 이들을 감히 1군이라 칭하겠다.

 

탈북민-국회의원탄생의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반론도 많지만, 나는 그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언젠가? 누군가? 꼭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또한 간절히 소망(所望)한다.

 

다만, 이들의 족적(足跡)의 명(明)과 암(暗)을 살펴보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 1군.

1. 강철환 (이름은 가나다 순)

제발....

꼭, 국회의원이 되어야 한다.

본인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로 하여금, 국회의원이 아니 되면, 이 땅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된 다고 보는 무지(無智)한 사람들이 강철환선생의 등을 떠밀고 있기 때문이다.

 

하여 그는 자의 반, 타의 반 이 길로 가야 할 것이다.

측근으로 불리고 싶은 몇몇 졸부(猝富)들로 인해, 강철환선생은 본인이 감당할 수 없는 도덕적, 공인?으로 추앙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한테는 엄격’하다.

하여, 이상적인 기준을 설정한 후, 그것을 엄격한 잣대로 타인에게(특정인) 요구한다.

 

강철환선생도 이런 조건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를 규정하는 상징은, 그(본인) 스스로가 정한 것이 아니다.

그의 주위에는 성공을 조건으로 마치, ‘냄새나는 곳에 파리가 몰리듯’ 몇몇 변설(辨說)가들이 몰리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들은 강철환선생의 능력과 무관하게 일정의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부합하지 못하면, 인격의 문제로 연결지어, 거듭 비난한 후 스스로 떠나 버린다.

대게 이런 행위들이 반복된 것이 알려진 사례들이다.

 

허나, 이런 비난 앞에서 강철환선생도 자연스럽지는 못하다. 지금 까지, 함께한 사람들을 10명이라 가정할 경우, 5명은 인격이 형편없는 무지(無智)한 자들이라 규정한다 해도, 아니 7명이라 해도, 나머지 사람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강철환선생과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다, 몽매(蒙昧)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과연 이들 중, 한명이라도 강철환선생과 근자(近者)까지도 함께 하는 사람이 없다면 말이다.


 

그도 자신이 가야할 길의 시기적 적정성과 방법론이라는 “담론”에 갇혀 있다.

또한, 혼자 겉도는 현상이 있다.

과거 김성광목사의 “입”으로서 ‘박근혜’를 씹었던 것 또한, 2012년 총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된다.

 

그에게도 이 모든 요인들이 수습하기가 버거운 사안들이다.

허나, 나는 이런 요인들로부터 애써 벋어 나라고 조언하고 싶지는 않다.

국회의원은 과정이지, 종착(終着)이 아니기에 하나의 수업(授業)으로 치부하면 될 것이다.

 

tip: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2. 김흥광

독일의 사회철학자, 막스 베버는 정치가가 갖추어야 할 자질 3가지를 규정했다.

첫째, 열정.

둘째, 책임감.

셋째, 균형감각.

이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김흥광선생은 가장 근접한 인물상을 뛰고 있다. (물론 정치가로서의 자질에 근거....)

 

그의 평가는 강철환선생과 비례하게, 측근들의 평가가 우호적이다.

김흥광선생의 인격과 무관하게, 그의 처세술은 당연히 균형감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은 애증(愛憎)이 있으면 비록, 자신과 동일하지 않아도, 떠나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는 김흥광선생에게는 확실한 달란트(talent)가 있음을 인정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도 예외도 있음을 단서(但書)하고 싶다.

 

열정, 책임감...... 이런 요소들이 정치가만 가지는 자질은 아니다.

이런 것으로만 정치가를 규정하는 것은 무리(無理)가 있다.

하여 정치가들에게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것이다.

허나, 욕심을 균형감각과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만약 그렇다면, 최악의 조합이다.

와이프를 조직이 운영하는 '식당 주인'으로....

자신은 “영명한 지도자” 로....

자신의 조직 내(內) 집단지성이 보스(BOSS)의 무오류(無誤謬)를 찬양한다면?

김흥광선생의 정치적 야심은 서쪽(태양이 지는 곳)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약한 것이다.


람들은 정치가들이 반드시 도덕군자, 실천윤리학자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냥, 보편적이기를 바란다. (여기서 의미하는 보편적이란, 만인(萬人)의 경험 중에 친(親) 사회적인 것을 뜻한다.)

과연, 정치가로서의 길을 걷는 김흥광선생이 보편적 탈북민의 리더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는 국회의원의 그릇이 되는가?

아쉽게도 아니라면....

그럼 어떤 그릇인가?

금(金)쟁반 or 개(犬)밥그릇.....

 

균형감각 있는 김흥광선생이 추구하는 세상으로 가는 방법의 적정성은 아마도, 조직 내(內) 집단지성이 건설적 비판자로의 역할을 수행할 때만이, 가히 희망적이다.

tip : “유능한 리더가 무능한 집단을 만나면? 결과는..... 무능해진다”

 

3. 안찬일

정치가로서 길(道)을 잘 걸으면 별 문제 없지만....

 

사실....

실망이 없지는 않다.

지금, 실체 없는 유령조직을 6개 넘게 만들고 있다.

그것이 국회의원으로 가는 길이라 굳게 믿고 있으나, 너무 아날로그(an analog)적인 것이 아닌가? 라는 회의감이 든다.

단지, 이 모든 행동이 이력서의 경력으로 채워 넣을 것에 필요한 것이라면? 너무 소모적이다.

 

나라를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 것도 이해가 된다.

허나, 과거 일정(日政)시대 상해에서 비롯된 당파 모임도 아니고, 3일 건너 하나씩 만들어 버리니... 단체의 진정성은 물론, 탈북민사회의 가치관에 물 타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위구심(危懼心)마저 생긴다.

 

공자 왈(曰) '지도자' 란, "백성들 앞에 서는 것임이 분명하나, 대중의 근심을 함께 하는 사람" 이라 했다.

역설적이게도 탈북민의 대표성을 가지기를 원하는 안찬일선생이 대중의 바람과 달리, 인위(人爲)적 형식에만 집착하는 것은, 과거의 낙후한 정치행태를 답습(踏襲)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나중에는 모두, 부담감으로 작용할 것이 자명하다.

안찬일선생을 탈북민들의 리더로서,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치적(治積)을 쌓기 위해 탈북민들을 도구로 활용한다면, 대중의 비난을 감내(堪耐)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의 이미지가 "투명망토"로 고착(固着)되어 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탈북민을 "의존해서" 사는 사람이 아닌, "위해서" 사는 사람이 되길 바랄 뿐이다.

 

tip : "정직" 하지 못한 것은, 잠깐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인 것을 버리는 행위-

 

∎1.5군

 

서재평. (현(現)북민위 사무국장)

암울한 탈북민사회에 가능성 있는 용자(勇者)들이 등장하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주목 받지 못하고 있지만, 주변에서 후한 평가를 받고 있는 한 분을 소개하려 한다.

 

사실 이 분은 본인의 능력 보다, 고(高) 평가되어 있다.

즉, 주변의 평가가 후(厚)하다.

자신의 능력을 지속적으로 배양하여, 불특정다수에게 자기증명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가 "계란이 스스로 깨면 병아리여, 남이 깨면 후라이다" 라는 격언처럼, 1.5군에서 졸업하여, 화려하게 출행(出行) 하리라는 것을..... 다만, 실망도 기대도 하지 않을 것이다.

 

tip : "일부로 하지 않아도, 실제로 하지 않은 것 없다"

 

필자가 관심 받으려고,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면서 위에 분들을 열거한 것이 아니다.제발.... 이분들한테 한번 쯤 관심을 가져달라는 바램이다.

어설픈 서울 사람으로 살아가기 보다는, 이곳에서 북한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거시적으로 바람직하다는 사견(私見)이다.

 

내가 두려운 것은, 탈북민 리더들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도 불행이지만, 탈북민 전체에게도 유쾌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