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칼럼
  • 평화
  • 2011-08-18 05: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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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칼럼>

「북한인권법」은 북한 주민들에 줄 수 있는

'제 2광복의 선물'

안 찬 일(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올해로 우리민족은 광복 예순여섯 돌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짓밟힌 강산에도 광복은 오는가'라는 반문이 있듯 북한에도 똑 같은 광복이 찾아온 것은 아니다. 북한 당국이 규정하고 있듯이 북한에는 광복은 없고 '해방기념일'만 존재한다. 위대한 수령이 이끄는 항일유격대가 강도 일제를 무찌르고 나라를 찾아주었다는 해방의 논리는 북한 신세대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아직 채 끝나지 않은 미완의 혁명의 논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굶주림을 이겨야 하는 대의명분으로 군림한다.

이런 혁명사관 계급사관이 지배하는 북한 체제에 인권이 있을 리 만무하고 그래서 세계는 북한을 가리켜 '인권의 사각지대'라고 부른다. 또 오늘 북한 인민들은 한 목소리로 현재의 북한 사회주의가 일제말기보다도 못하다고 탄식하고 있다. 일제 말기에도 사람들이 그렇게 굶어죽고 맞아죽지는 않았다. 또 그토록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는 일도 많지 않았다. 일제 말기 서대문형무소와 함흥형무소 등에 갇혀있던 애국자들에 비해 오늘 북한의 12개 이상 수용소에 갇혀 있는 무고한 정치범들의 수는 열 배, 백배를 넘어서고 있다.

북한이 스스로 인권을 개선하고 민주국가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은 너무 희박하다.

하여 미국과 일본에 이어 우리 대한민국 국회가 북한 인권법을 제정하여 북한 체제를 압박하는 대안이 제시되게 된 것이다. 6년여 동안 북한 인권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지만 우리 국회는 요지부동이다. 야당의 주장은 북한인권법을 제정하면 북한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여당은 입으로만 북한 인권이고 행동은 피동이다.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자극받는 자의 소수와 인권탄압으로 고통 받는 다수 중 어느 쪽이 북한의 주체인지를…

단지 평양의 집권자 몇 사람의 불쾌감 때문에 대한민국 국회가 북한 인권법 하나 통과시킬 수 없다면 차라리 헌법에서 영토조항, 즉 북한도 우리의 부속도서이며 주권이 미치는 곳이라는 조항을 삭제해야 하지 않을까. 어째서 우리 야당과 진보세력은 그토록 북한 집권자들에 대해 관대하면서 다수의 억눌린 인민들에 대해서는 냉정할 수 있단 말인가.

북한 정권은 사악함에서 스스로 벗어나기 어렵다. 따라서 북한 인민들은 어둠의 골짜기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갈 수 없다. 그들에게 자비의 정신으로 약간의 쌀이나 집어주는 '북한인권복지법'을 만든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인민의 인권을 개선하는 길이 아니라 독재체제에게 지배의 시간을 벌게 해주는 일이란 걸 왜 야당이 모른단 말인가.

정녕 그렇다면 이런 방식은 어떤가. 북한의 5도를 대표하는 대표들을 우리 국회로 보내보자. 대의민주주의 핵심은 지역대표제인데 남한 지역의 대표는 꽉 차 있지만 북한 지역의 대표는 전무하니 누가 사명감을 가지고 북한 인민들의 인권을 위해 사력을 바치겠는가. 탈북자도 좋고 이북 5도 출신도 좋다. 북한 인구 전체를 대표할 수는 없어도 최소한 5도 대표만이라도 선출한다면 대한민국의 국회는 헌법정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600명이 훨씬 넘는데 반해 우리는 그 절반도 안 된다. 왜 북한이 그토록 많은 대의원을 두는가. 바로 자신들이 한반도의 유일한 정부라고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고 통일로 가는 길에서 인권의 강은 반드시 건너야 할 숙명의 과정이며 북한인권법은 그 도강의 다리가 되어줄 것이다. 북한인권법을 제정하여 북한에 선물할 때 북한 인민들은 진정한 광복시대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국회가 그 역사적 사명을 외면하면 북한의 진정한 제2의 광복은 요원하다. 국민이 부여한 정치적 소명과 권력을 왜 마다하고 있는지 국회의원들에게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제2차 대전의 전리품으로 얻은 광복시대를 맞이해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화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우리 대한민국이 어째서 거꾸로 가는 이 나라의 절반을 구하는 일에 피동적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북한 인권침해의 가장 큰 이슈는 세계의 진화와 격리된 채 북한 주민 모두가 무지의 세계에 포박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 "무지는 자비로운 신이 하층민의 비참함을 덜어주기 내려주신 은총의 아편"이라고 했다지만 북한 주민들이 감내해야 하는 무지의 고통은 너무 무겁고 가혹하다.

이제 우리는 북한 인권개선의 초점을 상승시켜야 할 시점에 와 있다. 흔히 북한 인권하면 정치범수용소와 교화소 등을 집중 거론하지만 북한 지역 모두가 수용소이고 감옥이라는데 누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단 말인가. 북한 주민들을 저렇게 방치해 두면 남북한의 문명차이는 더욱 극대화 될 것이고 우리는 통일시대에 그 간격을 줄이기 위해 너무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북한 인권법이 국회에서 통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북한 인권법이 제정되면 우리는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자해 북한 인권개선사업을 벌여나갈 수 있다.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선 북한 주민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문화예술적으로 가장 훌륭하게 형상한 요덕스토리가 오는 가을 미국 공연을 앞두고 있지만 정성산 감독은 걱정이 많다. 예산 때문이다. 인권법이 통과되면 그런 단체에 우선 예산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전 세계에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을 알리는 일이 탄력을 받을 것이다.

갈 데까지 간 북한체제에는 허점이 너무 많다. 우리는 너무 앞서간 우리 문명이 어두운 북한 땅을 두루 비치도록 문화콘텐츠들을 생산해 저 암흑의 땅으로 공수해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북한 주민들은 우리의 문화가치들을 너무 좋아한다고 한다.

국회에 계류 중인 북한인권법은 대한민국의 가치들을 북한에 이식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라는 측면에서도 하루 빨리 빛을 보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법, 가치, 이념, 성장비결은 향후 북한체제에 고스란히 이식되어야 할 소중한 본보기이다. 나라를 빼앗겼던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는 한 자루의 총을 구하고자 많은 독립투사들이 흘렸던 피의 대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한 우리가 풍요의 환각 상태에 매몰돼 동족의 아픔을 외면한다면 그건 도리가 아니지 않는가.

세계를 뒤흔드는 국력을 놔두고 저 북녘 땅의 신음소리가 계속되도록 방치한다면 그 책임은 자못 엄중하다. 말로는 국가와 국민을 외치면서 파퓰리즘과 지역주의에 연연하는 정치인들은 대한민국의 숭고한 헌법정신으로 되돌아가 북한 땅, 북한 주민이 겪고 있는 고통과 애환을 달래줄 생각부터 앞세워야 할 것이다.

고로 하루빨리 북한인권법이 통과되기를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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