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찾는 어느 탈북자의 망향제
  • 관리자
  • 2011-09-15 09:2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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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한 약속 지키려 10년 동안 매년 베이징에 찾아갔지만…."

탈북자 이월산 씨(62·여)는 13일 자신과 같은 처지의 탈북자 40여명과 함께 경기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을 찾아 헤어진 가족을 그리며 망향제를 올리다 눈시울을 붉혔다.

함경북도 청진이 고향인 이 씨는 1999년 탈북해 중국 산둥성에서 숨어 지내다 지난해 8월 남한 땅을 밟았다. 올해 추석은 남한에서 보내는 첫 추석인 셈. 1997년 헤어진 여동생 수화 씨(58)와는 지난해 다시 만났다. 하지만 자신보다 한 해 앞서 중국으로 넘어간 딸 안선희 씨(35)의 생사는 아직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 딸도 떠나보낸 '고난의 행군'

결혼 10년 만에 이혼한 이 씨는 1남1녀를 혼자 맡아 키우기 위해 청진항의 노동자 배급소인 정양소에서 일했다. 그러다 북한에 경제난이 닥치자 1996년 쌀 배급이 완전히 끊겼고 전역에 전염병이 덮쳤다. 1990년대 중후반 북한에서는 혹독한 식량난으로 약 33만 명이 굶어죽어 이 시기를 '고난의 행군'이라고 불렀다.

이 씨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들인 안선일 씨(당시 22살)은 급성 폐렴, 딸 안선희 씨(당시 20살)는 장티푸스에 걸렸다. 두 자녀가 입원한 병원은 약솜이 없어 남은 옷 자투리를 썼고 링거병 대신 소주병을 썼다. 하루에 수십 명씩 목숨을 잃고 달구지에 실려 나갔다.
이 씨의 자녀는 기적적으로 버텼다. 스무날 만에 살아나 다시 찾은 집은 텅 비어 있었다. 도둑은 이불 한 채 남기지 않았다. 이 씨는 "국가가 먹여 살리지 않는 이북은 이미 무법천지였다"며 "딸을 살리기 위해 중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타국서 십여 년을 버티게 한 약속

1998년 10월 7일 오후 4시. 이 씨는 딸을 중국 접경지역인 무산으로 떠나보낸 날을 잊지 못한다. 젊은 처녀가 그나마 중국에서 살 길이 있다는 브로커의 말을 믿었다. 한 달 뒤 돌아와 거처를 알려준다며 7살 난 자기 아들을 맡기고 떠난 브로커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세 달이 지나고 이 씨는 딸을 찾아 중국으로 떠났다. 남겨진 아들은 운명이라며 어머니를 편히 보내줬다. 딸과의 약속 하나가 이 씨의 삶을 지탱했다. 딸의 생일인 9월 8일 베이징에서 제일 큰 기차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었다.

이 씨는 "두 번째 베이징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단속에 걸려 모든 것이 끝나는 줄 알았다"고 했다. 나이가 지긋한 공안이 중국어가 서툰 이 씨를 훑어보고는 베이징에 무슨 일로 가느냐고 묻더니 "딸을 찾으러 간다"는 말에 버스에 다시 태웠다.

베이징 올림픽이 열려 경계가 삼엄했던 2008년을 제외하고 1999년부터 2009년까지 해마다 베이징역을 찾았지만 이 씨는 딸을 만날 수 없었다. 산둥성에서 목공소 일을 하면서 번 돈은 모두 딸을 찾는 광고를 내고 해마다 베이징을 방문하는데 썼다.

● 딸 찾으려 신상 공개해

이 씨는 중국에서 라디오에 채널을 돌리다 조선말을 들었다. '자유북한방송(대북 라디오 방송)'이었다. 그곳에 전화를 걸고 싶었지만 번호를 알기가 쉽지 않았다. 베이징의 한 민박집을 통해 번호를 알기까지 5년이 걸렸다. 남한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도 그 때 알았다.

자유북한방송의 기자를 통해 브로커를 소개받은 이 씨는 윈난성 쿤밍에서 라오스~베트남~태국을 거쳐 남녘땅을 밟았다. 몰래 국경을 넘을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남한에 있을지 모를 딸 생각에 이를 악물었다.

중국에서 딸을 찾아 십년을 찾아 헤매다 남한에 왔지만 이곳에서도 딸을 찾을 수 없었다. 여동생 수화 씨를 만났지만 어머니는 자식들의 생사를 알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 전 북한에 있는 남동생로부터 아들 선일 씨가 낙지잡이 배를 타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씨는 "이제 하나 남은 딸과 다시 만나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했다.

서울시 관광과는 '행복한 국내여행' 프로젝트로 12, 13일 북한이탈주민과 외국인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추석맞이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보통 한국에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은 위험부담 때문에 얼굴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는데 이 씨와 같은 경우는 흔치 않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 씨와 북한이탈주민들은 망향제를 올린 뒤 통일전망대에서 임진강 너머로 보이는 북녘 땅을 한참동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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