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통일 명제(命題)를 생각해 본다
  • 북민위
  • 2025-07-18 06: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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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2004년 7월에 이어 21년만에 통일부 장관으로 다시 지명된 정동영 후보자가 쏘아올린 ‘통일부 명칭 변경 필요성’에 대해 갑론을박(甲論乙駁)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필자가 개진하는 의견도 큰 호수에 던지는 또 하나의 작은 돌일 수도 있겠지만, 북한·통일문제를 다루며 한평생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한마디 보태고자 한다.

바람직한 통일방안은

그동안 필자는 대한민국의 통일방안에 대해 ▲‘화해협력-국가연합-통일한국’의 3단계를 설정한 정부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한계성을 지적하면서 ▲‘화해협력’의 1단계와 병행하여 0단계, 즉 ‘북한체제 변화를 위한 전방위적 온-오프라인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0단계는 중단없는 화해협력 기반을 조성하는 과정으로서 전략적 접촉과 교류협력 제의, 인도적 지원, 북한내 인권 개선 촉구 및 외부세계 소식 전파 등 가용방안이 총망라된다.

한편 통일은 ▲대한민국의 비전이자 최종 종착점이긴 하지만 ▲2개의 상이한 정치체제가 1개로 완전 통합되는 것은 매우 지난한 과제라는 점을 고려하여 현 정치구조하에서 다방면적으로 협력하며 법과 제도를 정비하는 국면(2~2.5단계)까지만 진행되면 그것이 곧 ‘사실상의 통일’이라는 입장을 천명해 왔다.

통일》 표현을 자제해야 할까

그런데, 지난해 9월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통일하지 말자’ 발언에 이어 정동영 후보자가 ‘통일부 명칭 개칭’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갑자기 《통일》이라는 단어 사용을 꺼리는 가운데,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을 강경 보수주의자로 몰아가는 이해 못할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통일》 표현 사용 자제를 주장하는 측은 “김정은이 2023년 말부터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는 ‘적대적 2개 국가론’을 주창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상대가 싫어하는 용어를 사용하여 자극할 필요가 있는가? 오히려 통일 표현을 자제하면서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해 노력해 나가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지 않은가?”라는 논리인데,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우리에게 통일은 무엇인가

통일은 5000년 한민족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대한민국의 근간(根幹) 중 근간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양보해선 안 될 맥심(maxim) 중의 맥심이다. 이승만·김구를 비롯한 항일 독립운동 지도자들로부터 문재인·윤석열 정부로 이어 오며 이념과 진영을 떠나 그 자체로서 소명이자 비전이었다.

보다 실제적으로는 헌법의 명령이다. 법과 한민족의 숭고한 가치 구현을 위해 설립한 통일부의 명칭을 조급히 손대서는 안 된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전문가 토론회·국민 공청회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김대중 정부 햇볕정책 설계자인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까지도 “통일부 명칭 변경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라고 지적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통일부를 없앤다면 통일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냐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통일지향적 평화를 만들자는 거지 분단을 고착시키는 평화체제를 만든다는 것이 아니다. 이는 헌법 제4조의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평화통일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한다’는 조항도 위반하는 것이다.”(2025.7.7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롭게 사는 게 중요하다. 투 코리아(Two-Korea)면 어떻냐?”, “통일부 명칭을 한반도부, 남북교류협력부, 평화협력부 등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단견이 아닐 수 없다. 좀 심하게 이야기하면 “실용주의를 팔아 눈 가리고 아웅”하는 행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이명박·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가 논의하였던 외교부 산하로 들어가는 게 더 맞지 않을까?

다시 한번 강조한다. 평화, 자유, 안보, 통일은 개념과 선후가 구분 지어지는 게 아니다. ‘통일’은 이들과 교집합 관계에 있는 게 아니라 합집합 개념이다. 함께 가며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고 안아주는 관계이다. ‘평화’ 레토릭(rhetoric)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우리가 힘이 없거나 주변국으로부터 한반도 통일의 당사자(주도권) 자격을 인정받지 못한 경우 유리병처럼 깨져 버린다. 이에 비해 통일을 민족의 소명으로 생각하고 가는 길(process)은 길고 험난한 노정이지만, 나침판이나 질그릇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순간을 위해 영원(진실)을 눈감아선 안 된다.

자칫 통일을 내리고 평화만을 앞세우다가는 김정은의 반민족·반통일 ‘적대적 2개 국가론’이 뿌리내릴 시간만 줄뿐이다. 지금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북한 젊은 세대들의 변해가는 마음 즉 대한민국과 하나가 되고픈 소망인데,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일종의 죄악(罪惡)이다. 그건 바로 북녘 동포들의 삶은 물론이고 한반도의 미래에 큰 재앙으로 나타날 것이다.

맺음말

통일은 선택이나 유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변함없는 소명이자 비전이다. 그러므로 세세연년 살아갈 집을 짓는 건축가처럼 행동해야 한다. 조직 명칭을 바꾸고, 통일 용어 사용을 회피하는 것은 일종의 눈가림이다. 대화와 협력이 복원된다는 보장도 없다. 오히려 김정은의 민족·통일 지우기 장단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이 크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시간에 ▲역사와 진실을 직시하며 내부 역량 강화와 북한을 당당히 상대해 나가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남북한 합의의 대(大)장전인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으로 돌아가는 창의적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거룩한 뜻과 지금 이 시각에도 신음하고 있는 북녘 동포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전국민적 소망, 헌법적 가치, 한반도 미래상 등을 포괄적으로 아우르고 있는 ‘통일부’의 명칭을 유지하면서 실질적 해법을 가지고 승부를 펼쳐나가야 한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기존 명칭에 ‘평화’ 2글자를 덧붙인 ‘평화통일부’ 정도면 족하지 않을까?

북한이 요구한 것도 아니다. 서두르거나 지레 겁먹을 필요도 없다. 김정은에게 당당하고, 북녘 동포들에게 늘 우리가 함께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 나가는, 이른바 ‘대북 접촉면 전방위 확대 활동’(세부내용은 2025.6.23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참조)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조금 어렵고 더디지만,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문패는 집을 어느 정도 지은 다음에 바꿔 달아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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