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5-04-11 06: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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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에 성공한 이후 대선 캠페인 2대 캐치프레이즈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의 구체화에 진력하고 있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중요시했던 큰 정부, 자유무역, 가치외교는 어느덧 옛이야기가 되었다. 오로지 정부 군살 빼기, 국가이익만이 최우선이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과 관세전쟁을 벌이며 세계보건기구(WHO), 유엔교육문화기구(UNESCO), 파리기후협약과 같은 국제기구에서 탈퇴하고, 필요하다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마저도 발을 뺄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가히 2차세계대전 이후 80년간 지속되어 온 국제질서의 대변혁, 강대국 지정학의 귀환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인권운동에 미치고 있는 영향
북한인권운동 분야는 유탄이 아니라 직격탄을 맞고 비틀거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긴급한 인도적 지원을 제외한 모든 해외 개발원조 프로그램 중단”을 강제하는 행정명령 제14169호에 서명했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일론 머스크가 이끌고 있는 정부효율부(DOGE)는 인도주의 지원과 개발원조 분야에 있어 센터 역할을 수행해 온 국제개발처(USAID: 연간예산 약 430억불)를 방만한 예산 운영, 국익 배치 등을 이유로 ‘범죄 조직’이라고 규정하고 사실상 폐쇄했다.
이와 관련 3월 17일자 문화일보는 “USAID의 외국원조 계약 90%가 해지될 예정이다. 국무부 민주주의·인권·노동국(DRL)과 민주주의진흥재단(NED) 역시 북한인권 분야에 매년 약 1000만 달러를 투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3개월간에 걸친 재검토 기간 자금 집행은 사실상 제로인 상태다. 북한 실상을 알려온 미국의 소리(VOA) 방송과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존립 위기에 놓여 있다”며 그 심각성을 보도했다. 3월 18일 메릴랜드주 연방법원이 위헌적 요소가 있다며 폐쇄에 관한 추가 조치를 중단하라는 가처분 결정을 내렸지만,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현장의 목소리
북한인권운동 현장의 반응은 당혹감을 넘어 공포감까지 표출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는 ‘더 공격적인 구조조정’을 주문하고, 일론 머스크는 ‘전기톱 퍼포먼스’로 화답하며 자신의 개혁 의지를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3월 15일부터 신규 방송프로그램 송출이 중단되고 폐쇄 수순에 들어간 VOA와 RFA 한국어 방송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각각 680만 달러, 319만 달러의 예산을 사용하며 북한 내부로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전파해 온 최고의 전통을 가진, 최전선의 대북매체이다. 북한이 외부 영상물 유포 시 최고 사형까지 부과하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과 같은 악의적 주민 통제 정책을 강화하고 있는 국면에서 그나마 세계로 통하는 실낱같은 창구마저 막아 버릴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RFA에 근무하고 있는 한 기자는 페이스북에 “오늘을 마지막으로 자유아시아방송이 비상 체제에 들어갑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이 마지막 출근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처음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고 국제개발처 예산이 삭감될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한 국내 북한인권단체 관계자는 “미국에서 지원되던 예산이 거의 다 끊겨서 매년 해오던 활동은 물론이고 인건비·사무실 임차료도 감당이 안 되는 실정이다. 기존 업무의 약 70%가 날아갔으며, 우리보다 규모가 작은 단체들은 거의 90%가 축소됐다고 봐야 한다”(3월 17일자 문화일보)며 지금의 심각한 상황을 전했다.
대응 방향
미국 국무부의 북한인권운동 예산 지원은 지금까지 해당 단체들의 활동에 있어 대동맥이자 젖줄과 같은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트럼프 행정부의 전격적인 조치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북한 자유화 프로젝트를 수행해 오고 있는 민간대북방송을 비롯한 국내외 북한인권운동 생태계에 큰 파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잘못하면 고사될 수 있다는 위기감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민간대북단체의 경우 북한 내부로 외부 자유세계 소식을 전파하는 것은 물론 유급 첩보망 운영, 탐사보도 등을 통해 북한 주민의 생생한 생활상과 당국의 반인권적 행태들을 국내외로 피드백 해주는 매개체 역할까지 수행해 왔는데 이 같은 기능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은 이미 발생했고, 넋두리만 하고 있어선 안 된다.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마련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국내 인권 단체들 스스로가 자립 노력을 더욱 강화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NGO의 모태는 정부 지원이 아니라 민간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기금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소액 고정기부금 운동, 자체 고정 수입원 발굴과 같은 선진 트렌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 물론 국내외 언론·시민들과 힘을 합쳐 “과연 예산 지원 중단 조치가 미국과 트럼프 행정부의 궁극적 정책목표와 부합할 것인지?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는 건 아닌지?”에 대한 온·오프라인 여론전을 유기적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은 당연하다.
둘째, 그러나 NGO의 체질 개선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따라서 대한민국 정부와 국회는 열악한 인권운동 생태계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할 때까지 예산 전용을 포함한 긴급 지원방안을 편성, 시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련 단체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질지도 모른다. 북한에 진실을 알리는 활동은 ‘북한 주민의 알권리 보장, 한반도 평화와 민족공동체 형성’이라는 장기목표 하에 한시도 중단되어서는 안 되는 풀뿌리 사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정은이 ‘적대적 2국가론’을 주창하며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고 ‘한류와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전개하고 있는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셋째, 보다 근원적으로는 차제에 9년째 출범이 지연되고 있는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박차를 가해야 하며, 정부의 ‘민간대북활동단체 예산 지원 프로세스’를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트럼프의 대북인권정책 변경은 이제 시작일 뿐이기 때문이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시대는 끝났다. 북한문제 제1 당사자는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올해 정부의 관련 예산 지원 규모는 미국 국무부의 20% 정도인 29억 6000만원에 불과하다. 상식적이지 않다. 정상화가 필요하다.
넷째, 한편 지난해 ‘8.15 통일독트린’에서 강조한 북한사회 변화를 위한 국내-북한-국제사회 삼위일체 활동을 보다 구체화해나가야 한다. 북한 주민들의 외부정보 접근을 위한 통로를 보다 다양하게 열어 나가는 게 인권·핵 문제를 넘어 한반도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이다. 이를 위해서는 나경원 의원의 ‘대한민국 주도의 북한인권자유동맹 거버넌스 구축’, 김영권 전(前) VOA 기자의 ‘VOA를 대신한 VOK(Voice of Korea) 설립’과 같은 제안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기는 곧 기회다’라는 격언이 있다. “힘든 상황이 오히려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가는 극적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공무원 인력 감축 및 해외원조 자금 지원 중단’의 여파로 큰 충격에 휩싸여 있는 국내외 북한인권운동 활동가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경구이다. 우리 모두가 “모든 사람은 생명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세계인권선언 3조). “북한 주민은 우리에게 ‘아무나’가 아니다”(오준 유엔 주재 한국대사)의 말을 한 번 더 곱씹으며 ‘북한인권운동 2.0 시대’를 열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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