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의한 강제실종: 전시납북자 문제
  • 북민위
  • 2025-04-09 06: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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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 제58차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결의가 2003년 인권위원회 이래 23년째 연속 채택되었다. 3월 13일에는 유엔 자의적구금실무그룹(WGAD)이 북한의 김정욱·김국기·최춘길 선교사의 장기 억류가 불법적인 임의 구금에 해당한다는 의견서를 채택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 11월 북한의 제4차 보편적 정례인권검토(UPR)에서 억류자 6명의 즉각 석방, 납북자·억류자·국군포로·이산가족 문제 즉각 해결, 강제송환 탈북민에 대한 고문 등 북한의 핵심적인 인권침해 문제 해결을 촉구하였다. 정전 70여 년이 넘은 지금도 납북자·국군포로·이산가족 문제는 여전히 미완의 과제이다. 이제는 인류 보편 가치 실현을 위한 중차대한 문제들에 있어 국가와 사회가 더이상은 미룰 수 없는 시점이 된 것이다. 전시 납북자 문제 관련 법적 근거를 바탕으로 납북자 문제의 해결 방향을 다시금 명확히 하는 것은 정부 차원의 시의성 및 실효성 있는 해결책 마련을 위한 필수 선결과제이다.

한국전쟁과 납북자 문제

납북자(拉北者)란 6‧25전쟁 중 그리고 정전협정 체결 후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북한에 강제 납치된 민간인으로, 전시 납북자와 전후 납북자로 구분된다. 그 정확한 규모는 공식 파악되지 않으나, 전시 납북자 규모는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조사 자료 기준 9만여 명으로 추산된다. 대한민국 국민인 전시‧전후 납북자 및 국군포로 상당수가 강제 실종 피해자에 해당한다. 납북피해 가족들은 납북피해 당사자 소식과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진행형의 고통 속에 놓여있다. 납북자 문제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납북피해자 생사 확인 자체가 어려워지며, 납북 과정의 진상 규명과 희생자 명예 회복 등 나날이 연로해지는 납북피해 가족 연령대까지 감안한다면 현실적으로 요원해질 우려가 큰 사안이다.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국민적 차원의 관심과 정부의 전방위적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이다.

국제인도법 및 국제인권법상 강제실종

국제인도법은 무력충돌(armed conflict) 또는 전시(wartime) 상황을 규율하는 일련의 규칙들로 전쟁법 혹은 무력충돌법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경험을 통해 1949년 채택된 4개의 제네바협약, 그 후속적 성격의 1977년 2개 추가의정서는 오늘날에도 국제인도법에 있어 가장 핵심적 역할을 하는 국제규범에 해당한다. 북한에 의해 자행된 전시 납북 행위는 국제인도법상 「전시에 있어서의 민간인의 보호에 관한 제네바협약」(제4차 제네바협약)과 관련이 있으며, 남한은 1966년, 북한은 1957년 가입하였으나 한국전쟁 당시에는 남북한 모두 미가입 상태였다. 그러나 국가가 개별 국제인권조약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더라도, 예외적으로 국제관습법 또는 조약 중 국제법상 강행규범의 법적 성질이 높은 일부 내용이 적용가능하다. 다시 말해, 전시납북 문제에 있어 한국전쟁 당시 제4차 제네바협약을 그대로 적용 및 원용하기는 어려울 것이나, 전쟁 당시 이미 국제관습법적으로 인정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적용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제4차 제네바협약 제59조 1항과 제49조는 강제이송과 강제연행을 금지한다. 여기서 강제이송(forcible transfer)이란 4개의 제네바협약에서 공통적으로 규정하는 제3조상 개별 원칙들을 복합적으로 침해한다는 의미로 ‘최소한의 인도적 기준’(minimum humanitarian standards)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북한에 의해 자행된 전시 납북 행위는 전시 민간인 강제 연행, 즉 전시 민간인 보호를 금지한 제4차 제네바협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으로 당시 국제관습법으로 볼 때에도 명백하게 확립된 규범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인도법이 무력충돌 존재를 상정한다면, 국제인권법은 평시 또는 전시를 구분하지 않고 원칙적으로 모든 상황에 적용된다. 전시 납북 문제를 검토하기 위해서는 국제인도법 외에 국제인권법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인도에 반한 죄’는 민간인 주민에 대한 광범위하거나 체계적인 공격의 일부로서 행해진 범죄를 말하는데 강제실종, 살해, 노예화, 고문 등 비인도적 행위가 포함된다. ICC 규정 범죄구성요건에 따르면,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2002)」 제7조에서 규정하는 인도에 반한 죄는 국제사회 전체에 대한 중대한 범죄 중 하나로서 로마규정 제22조에 의해 엄격히 해석되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강제실종은 단 하나의 행위만으로 국내법상 약취죄(略取罪)와 같은 범죄에 해당하지만, 만약 강제실종이 ‘만연하게’ 또는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경우, 이는 국제법상 반인도범죄가 될 수 있다. 또한 강제실종은 그 자체로서도 하나의 인권침해 사안이 될 수 있지만, 그 내부적으로 여러 종류의 인권이 동시적으로 위반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에 의해 자행된 강제실종, 전시 납북자 문제

유엔 COI 보고서에 따르면, 전시 납북자의 경우 대부분 성분상 적대계층으로 분류되어 극심한 차별을 당하고 상당수 강제노동수용소 및 정치범수용소에서 생을 마감한 것으로 파악된다. 이 보고서는 강제실종을 시기 및 유형별로 분류했는데, 6‧25전쟁 중 북한에 의해 자행된 강제실종에 해당하는 전시 납북은 북한군에 의해 광범위하고 조직적으로 이뤄졌으며 숙련된 전문가 충원을 위한 정책적 목적으로 사전 계획되어 자행된 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북한에 의한 강제실종은 전시 납북의 경우, 1950년대 초반~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전 주로 발생하였다. 정전협정 제3조 58항에 따르면, 군사분계선 이남에 거주한 전체 사민(私民)에 대해 귀향을 원할 시,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며 협조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은 전시 납북 자체를 지속 부인하며 실제 한국 송환이 이뤄진 경우는 없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남북한 정부가 납북자 생사 확인 및 송환 문제를 남북 장관급회담, 적십자회담, 이산가족 상봉 등 계기마다 일부 논의한 적은 있으나, 이 역시 별다른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납북자 생사 확인조차 대부분 이뤄진 바가 없다. 시민단체들은 유엔 강제실종실무그룹(WGEID)에 진정서 접수,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전시 납북자 명단을 제출하며 생사 확인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지원 요청을 하는 등 노력을 이어왔다. 그러나 북한은 전시 납북자들의 행방 및 운명에 관한 어떠한 정보 관련해서도 전시 납북 피해 가족 또는 한국 정부에 제공하지 않았다.

전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법적 검토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B규약/자유권규약) 제15조에서 명시하듯이, 강제실종 등 행위는 처음 발생한 그 당시 반인도범죄의 정의에 근거해 평가되어야 한다.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하는 강제실종에 해당하는 행위들에 대한 개념과 정의는 1945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으로부터 기원을 찾는 것이 일반적이다. 북한 당국에 의해 6‧25전쟁 과정에서 자행된 납치, 구금, 체포 등에 의한 강제실종은 당시 국제형사법상 인도에 반한 죄를 야기한 범죄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유엔 총회결의에서 권고한 바와 같이 만약 안전보장이사회가 ICC에 북한인권 문제를 회부하게 된다면, 과연 국제재판소가 북한에 의해 자행된 인도에 반한 죄, 특히 강제실종에 대해 시간적 관할권(Jurisdiction ratione temporis)을 가질 수 있는지의 문제로 이어질 것이다. 로마규정 제11조는 ICC가 로마규정 발효 시점인 2002년 7월 1일 이후 자행된 범죄에 대해서만 관할권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로마규정 발효 후에 당사국인 된 국가의 경우에는 로마규정이 그 국가에 대해 발효된 이후 행해진 범죄에 대하여만 관할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강제실종이 지닌 범죄의 계속성 및 지속성을 고려할 때, 과연 ICC가 2002년 7월 이전 발생 범죄에 대해 형벌불소급원칙에 관한 로마규정 제24조에 따른 관할권을 가질 수 있는지도 문제가 된다. 이는 ICC 범죄구성요건 중 강제실종 관련 부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제실종은 여전히 지속되는 범죄행위지만, 적어도 최초의 체포, 구금, 납치 등 행위가 2002년 7월 이후 발생한 경우에 한하여 ICC 관할권 적용이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결국 사안의 적용을 위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객관적 및 주관적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실제 ICC에 기소되기 전에 자행된 인도에 반한 죄에 해당하는 강제실종 행위, 즉 전시 납북 행위는 시간적 관할권 및 소급효 원칙에 관한 예외를 두지 않는 이상, 현실적으로 북한에 대해 책임을 묻기 어려울 수 있다.

2023년 6월 28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국립 6·25전쟁납북자기념관에서 열린 제10회 6·25 납북희생자 기억의 날 행사에서 납북희생자 가족이 납북된 가족의 사진을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런 어려움에도 강제실종 문제 해결을 위한 또 다른 법적 해석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사실에도 반드시 주목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민간인 전시 납북 행위는 국제법상 인도에 반한 죄인 동시에 전쟁범죄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북한은 1984년 「전쟁범죄 및 인도에 반한 죄에 대한 공소시효 부적용에 관한 협약」에 가입했으므로, 적어도 북한의 전시 납북 행위에 대한 공소시효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있다. 둘째, 인도에 반한 죄의 경우, 국제관습법에 근거한 강행규범 일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비록 북한이 아직 반인도범죄를 국내법을 통해 규정하지 않았고, ICC 당사국이 아니라고 해도 북한에서 자행된 강제실종을 포함한 인도에 반한 죄를 범한 개인들은 언제든지 국제법에 따른 형사책임을 지닐 수 있다. 셋째, 유엔 COI 보고서는 국제납치와 연관되어 자행된 구금 등 인도에 반한 죄와 국제법 기본원칙에 반하는 기타 자유의 심각한 박탈에 적용되는 사법권의 제한은 없다고 지적한다. 이는 국제납치와 관련된 반인도범죄는 ICC 사법권에 속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즉 강제실종의 경우, 로마규정 및 ICC의 범죄구성요건에 따라 2002년 이전에 자행된 범죄들에 대해 설사 관할권이 없다고 해도, 이러한 관할권 제한은 강제실종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자의적 구금행위 및 심각한 자유의 박탈 등과 같은 다른 인도에 반한 죄에는 적용되지 않으므로 여전히 ICC의 관할권 하에 놓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납북자 문제 해결 방향 및 과제

북한 김정은 정권은 지금도 국제규범을 위반하며 납북 인사들을 강제 억류 중이다. 우리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 반인륜적‧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 끝까지 추궁하는 정신을 갖고 대북 및 남북관계, 국내외 차원에서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해 각자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다각도로 동시에 모색해야 한다. 첫째, 북한의 ‘적대적 두 국가관계’ 선언과 ‘동족’ 개념 부인에 따라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북대화에 어려움이 있지만, 대화 의지를 천명해야 한다.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 유엔 총회 기조연설 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민 대상으로 납북자 문제가 잊히지 않도록 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한 사후 준비도 필요하다. 납북자 문제의 망각 방지를 위해 국민 대상으로 현황 및 실태에 대한 홍보와 교육 강화도 요구된다. 일례로, 통일의식조사에서 납북자 현황과 실태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항목이 추가될 수 있다. 나아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납북자 문제 관련 기념 사업의 체계적 추진을 위한 법제화 방안 강구도 중요하다. 셋째, 납북자 문제 해결을 위한 인권외교를 강화, 특히 UPR 제도 활용 방안이 적극 강구될 필요가 있다. 기존에 우려와 관심을 표명했던 UPR 회원국들의 권고를 지속 장려하는 동시에 새로운 국가들이 우려와 관심을 표명할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동시에 더 많은 유엔 회원국들이 북한의 강제실종협약 비준을 권고하고, 지난 북한 UPR 심의 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하며 북한 측 입장을 두둔한 국가가 있었음을 유념해 사실 왜곡 방지를 위한 현황과 실태 홍보 강화도 요구된다.

 김태원 통일연구원 연구기획부장/법학(국제법)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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