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5-03-18 07:2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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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전 글에서 북한이 작년 10월에 통일전선부를 ‘당 10국’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고 했다. 그 주된 이유로 양지의 통일업무에서 음지의 대남공작으로의 무게중심 이동을 들었다(2.28. 평양포커스 참고). 이 평가에 대해 현재보다 과거에, 특히 1980년대 대남공작활동이 가장 극에 달했다는 의견을 보낸 분이 있었다. 맞는 얘기다.
1980년 5·18 이후 학원가의 민주화 운동이 폭발하게 되고 이를 포착한 북한은 대남공작 활동을 강력하게 전개하게 된다. 1980년대는 남파된 간첩들이 남한 내 친북 성향의 인사(대학생 포함)들을 포섭해서 그들로 하여금 지하조직(당)을 만들어 학생운동권과 노동계 운동을 북한의 입맛대로 조종하게 하였다. 이번 글은 1980년대의 대남공작과 국내 지하조직 활동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대남공작의 목표·방식 및 조직체계
1980년대 대남공작의 주된 목표는 남한 내에서 혁명역량을 키워 체제전복을 꾀하는 것이었다.
공작 방식은 무장 공작과 대남 간첩 침투를 통한 지하조직 구축이다. 전자에는 1983년의 아웅산 테러와 1987년의 KAL기 폭파 사건이 있다. 후자는 ‘서울 간첩단 사건’(1984)과 이선실 간첩 사건(1985)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선실은 북한이 남파한 여성 간첩으로 일본을 경유해서 위장 입국하여 간첩 활동을 수행하다 체포되었다.
북한 공작원의 대남 침투 목적은 크게 ▲남한 내 혁명역량 육성(학생·노동운동 조직화) ▲정치·사회 혼란 조성(반미·반정부 운동 조장) ▲간첩망 구축 및 대남 정보수집 등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친북·종북 성향의 사람들을 포섭하여 지하조직을 만들어 대학가 및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주사파 이념을 확산시켰다. 이때 활용된 선전·선동 방법이 바로 ‘구국의 소리’와 ‘평양방송’ 같은 단파방송 송출이다. 당시는 북한이 경제적으로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며 김일성 유일 체제가 강고했던 시기라 적극적인 대남혁명 전략을 추진할 수 있었다.
1980년대 대남공작 지령은 노동당 대남 당당 조직에서 내려왔다. 북한의 노동당 산하 대남조직으로는 ‘통일전선부’, ‘대외연락부’, ‘작전부’, ‘35호실’ 등 4개의 공작 부서와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 ‘국가안전보위부’ 등이 있다. ‘대외연락부’는 남한 내 친북 조직을 유지, 확대하고 정당이나 사회단체에 침투하는 간첩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북한은 2009년 ‘작전부’와 ‘35호실’을 인민군 총참모부 산하 ‘정찰국’과 통합해 ‘정찰총국’을 조직했으며 ‘대외연락부’는 노동당 내각 산하로 소속을 변경하면서 ‘225국’으로 조직명을 변경한 바 있다.
북한의 공작 지령문 전달 및 접선 방식
북한의 지령문 하달 방식을 보면, 직접적이고 은밀했다. 당시 전달 방식을 보면, 크게 ▲직접 대면 접선 ▲무선통신(단파 라디오) 활용 ▲편지·문서(비밀 암호문) 전달 ▲비밀장소를 활용한 지령 전달 등이다. 첫 번째 방식은 이선실 간첩 사건에서 나타난 것으로 이선실이 지하조직을 접촉해 지령을 직접 전달했다. 두 번째 방식은 ‘구국의 소리’와 같은 북한 단파방송을 이용해 암호화된 지령을 전달했다. 간첩들은 암호표를 이용해 방송 내용을 해독했다. 대부분의 간첩단 사건은 이 방식을 택했다. 이선실도 북한으로부터 지령을 받을 때 이 방식을 택했다.
세 번째 방식은 북한은 간첩들에게 일반적인 편지나 서적을 위장하여 지령을 전달했다. 비밀잉크, 암호화된 단어를 사용하여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대표적 사례가 1987년의 ‘구로공단 간첩단 사건’이다. 북한이 공장 노동자들에게 암호화된 서신을 보내 노동운동을 지시한 사건이다. 네 번째는 특정한 장소에 지령문, 무기, 현금, 위조 서류 등을 숨겨놓고 조직원들에게 회수하게 하는 방식이다. 1984년에 있었던 ‘서울 간첩단 사건’이 대표적 사례이다. 북한이 남파 간첩을 통해 남한 내 공작원들에게 공작금과 지령문을 숨겨놓은 장소(한강 변 돌밑)와 물건(필름통)을 알려주고 이를 회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1980년대 지하조직(당) 활동 및 영향
1980년대 북한의 대남공작방식은 앞서 기술한 대로, 남한 대학가와 노동운동 조직을 혁명역량으로 육성하는 것으로 학생들과 노동자들에게 ‘주체사상’을 교육하고 반정부·반미시위를 선동하게 하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는 이선실이 배후로 지목된 1983년의 ‘구국학생연맹’(구학련) 사건이다. 이때 이선실과 협력관계에 있던 인물이 정기열인데, 그는 미국에서 활동했던 친북 성향의 학자로 북한과 직접적인 접촉을 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구학련은 198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학생운동 관련 인사들이 대거 검거되었다. 이후, 1986년에 김영환을 중심으로 주체사상을 기반으로 한 학생조직이 정식 결성되었는데, 조직명을 ‘구학련’이라고 정했다. 김영환과 이선실과의 직접적인 연계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영환은 당시 주사파 운동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강철서신’(1987)의 집필자로 학생운동권 내에서 주사파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던 인물이었지만, 199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고, 수감 중에 사상적으로 전향을 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활동했던 하영옥과 이석기는 전향을 하지 않았다. 하영옥과 이석기는 1992년에 후배 주사파 세력이 만든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과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하는데, 이 지하당은 북한의 대남공작조직인 ‘대외연락부’와 직접적인 연계를 갖게 된다.
이석기는 구학련 활동 시 경기지역 학생운동권을 결집하는 역할을 하였고 구학련이 해체된 이후, 주도적으로 ‘경기동부연합’을 결성하여 이 조직을 이끌었다. 성균관대, 한양대, 인하대, 경기대 학생들이 주축 멤버가 되었다. 경기동부연합 내에 극비리에 운영되었던 비밀조직인 RO(혁명조직)가 있었다. 이석기는 2000년대 통합진보당에 합류하여 국회의원으로 당선(2012)되었다가 2013년 RO(혁명조직) 내란선동 사건으로 구속되었다. RO는 비밀회합을 가지고 남한 체제전복과 무장봉기 관련해 논의하다가 정보기관에 적발되었다. 이석기는 당시 남한 상황에 대해 혁명할 시기가 무르익은 ‘혁명의 만조기’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8년여 간 수감됐던 이석기는 2021년 12월 가석방됐고, 경기동부연합 핵심 인물들은 여전히 성남시를 기반으로 정치적 활동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 상황은 ‘혁명의 만조기’인가
이석기가 발언한 ‘혁명의 만조기’는 레닌의 혁명론과 북한의 무장 혁명 이론을 차용한 것이다. 레닌은 1917년 러시아 혁명 전후에 혁명의 적기를 설명하면서 ‘혁명의 만조기’(High Tide of Revolution)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만조(滿潮)란 바닷물이 최고조로 차오른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만조기’는 혁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회적·정치적 환경이 조성된 시점을 의미한다. 사회 내부의 불만과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기존체제가 약화하였을 때 혁명의 성공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의미이다. 레닌은 이러한 혁명의 물결이 최고조에 달할 때 혁명 세력이 조직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수 있다고 보았다. 북한의 주체사상 및 무장혁명론에서도 사회적 위기가 고조될 때가 혁명의 기회라고 보았다.
당시, 이석기는 남북한 정치·군사적 상황(북핵 위기 등) 및 남한 사회의 불안정성을 혁명의 기회로 보고 조직원들에게 적극적인 행동을 촉구했고 당시 비밀회합에서는 “총을 들고 싸워야 한다”라는 내란 관련 발언도 있었다고 한다. 그 당시 모인 실무자들이 약 130명이었는데, 그들은 각각 50여 명의 조직원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는 ‘성급한 판단’이 되었지만, 그만큼 혁명의 만조기라고 여길 만큼의 국내외적 상황이 전개되었던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어떠한가? 우리는 최근에 발생한 민주노총 간첩 사건과 각 지역의 간첩 사건들을 통해 어느 정도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민노총 내 간첩 조직들은 공작 포섭 대상을 단계별로 ▲소극분자 ▲동반자 ▲열성분자 ▲적극분자 ▲임무부여자 5단계로 분류했다고 한다. 4단계인 ‘적극분자’만 해도 북한의 혁명소설, 이적물을 읽고 탐닉하며 북한 체제를 칭송하는 단계라고 한다. 즉, 종북 주사파가 된 무리들이다. 5단계, ‘임무부여자’는 북한 공작원을 직접 접촉하고 접선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 자들이다. 한마디로 고정간첩이 된 자들이다.
민노총 내 간첩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한 시기가 2017년인 만큼, 작년에 적발되기 전까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8년 동안 얼마나 많은 종북 주사파, 더 나아가 고정간첩이 양성되었겠는가. 정말 아찔한 일이다. 그들 머릿속에서도 ‘혁명의 만조기’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싶다. 안보·수사당국은 잔당 세력들을 발본색원해서 혁명의 불씨를 완전히 꺼트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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