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정권의 대남공작 추이
  • 북민위
  • 2025-03-03 09: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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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정권의 대남공작의 실체

2024년 11월 6일, 수원지방법원 형사 14부는 석모 민주노총 전 조직쟁의국장에게 징역 15년과 자격정지 15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김모 전 민노총 보건의료노조 조직실장과 양모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에게는 각각 징역 7년과 5년이 선고됐다. 이 사건은 민노총 내부에 북한의 지령을 받는 조직이 존재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지난달 1월 31일에는 수원지검 공공수사부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민노총 전·현직 간부 2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 또한 2018년 9월, 석씨와 함께 중국 광저우에서 북한 문화교류국 공작원과 접선해 지령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현재까지 민노총과 관련된 간첩 혐의로 기소된 인원은 총 5명이다. 이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아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민노총 및 산하 연맹의 주요 조직원을 포섭, 노동단체 장악을 통해 사회 혼란 및 국가전복까지 노렸던 것으로 보인다.

조직의 총책인 석씨는 2017년부터 북한의 지령을 받아 민노총 내에 지하조직을 결성하고 중국과 캄보디아 등에서 북한 공작원과 직접 접선했다. 이후 그는 2018년 10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총 102회에 걸쳐 북한과 지령문, 보고문을 주고받았으며 이를 통해 노조활동을 가장한 간첩활동을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 과정에서 그는 모든 진술을 거부했지만, 국가보안법 위반 및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협하는 중대범죄로 간주되어 1심에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 또한 2023년의 창원, 2024년의 청주와 제주의 ‘간첩단 사건’처럼 민노총 내 간첩단 사건으로 불러야 한다. 왜냐하면, 간첩활동 사실이 분명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석씨는 북한의 지령을 받고 평택 미군기지와 오산 공군기지 내 시설 등을 촬영하는 등 국가기밀을 수집한 혐의도 받고 있다. 또한, 이태원 참사(2022.10.29)가 발생한 후 북한으로부터 세월호(2014) 투쟁과 같이 각계각층의 분노를 최대한 분출시키기 위한 조직사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라는 지령문(2022.11.15)을 받기도 했다.

석씨는 어떻게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됐는가. 그는 1989년부터 ‘양심수 석방’과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0년 1월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의 창립과 함께 노동운동에 적극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 안산시의 한 철강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며 노조위원장을 역임했고, 이를 계기로 2000년부터 민노총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후 정책국장, 비정규국장, 정치국장 등 다양한 직책을 맡았으며 마지막으로 조직쟁의국장을 역임한 후 2022년에 조직을 떠났다.

그가 북한 공작원에게 포섭된 것은 아마도 그가 비정규국장으로 활동하던 때일 것이다. 그런데, 여당인 국민의 힘(서범수 의원)은 그가 2000년대 초반부터 이미 간첩활동을 해왔다고 주장하며 그 근거로 그가 2004년 4월, 북한에서 열린 남북노동자 통일대회에 민노총 경기본부 소속으로 참석자 명단에 올랐다는 것을 제시했다. 당시 통일대회는 남북 양측의 노동계가 주최한 행사였다. 이것이 사실이면, 이때 이미 그는 북한에 포섭됐을 수 있다. 물론 그 이전부터 북한은 그를 포섭 대상으로 낙점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왜냐하면, 석씨는 2003년부터 주한미군 철수 시위에 앞장섰다. 이 시위는 2002년에 발생한 ‘효순이·미선이 사고’로 인해 힘을 얻고 있던 상황이었다. 더불어 그의 아버지가 1980년 ‘1차 진도 간첩단’ 사건으로 18년간 옥살이를 했던 석달윤인 것도 정상참작이 되었을 것이다. 이 사건은 간첩 박양민에게 석달윤의 외척인 김정인(어부, 41세)이 포섭돼 1964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북한에 정보를 제공하고, 석달윤을 포함, 그의 친척 여러 명이 간첩 및 간첩 방조 혐의로 체포된 사건이다. 김정인은 1985년 사형을 당했다.

앞서 기술한 대로 석씨의 반국가적 행위는 2000년 초반부터로 보여 지지만, 검찰과 재판부는 그와 북한 공작원의 접선 시기를 2017년부터로 판단했다. 그는 단지 지령을 받고 보고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아래와 같이 김정은에 대한 충성 맹세를 한 것으로 알려진다.

“남조선 혁명운동에 대한 김정은 동지의 유일적 영도, 모든 것을 다 바쳐나갈 것…”

여기서 남조선 혁명운동은 북한의 대남전략의 일환이다. 과거 김일성-김정일 시기가 아닌 현재 김정은 정권하에서의 대남전략이다. 김정은 정권하에서도 남조선 혁명(적화, 해방)의 목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김정일 시기보다 더 강화된 측면이 있다. 위에서 기술한 간첩단 사건들이 그 예이다.

대남공작 부서문화교류국

현재 북한에서 대남공작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은 ‘문화교류국’이다. 이 부서는 남한 내부에 침투한 고정간첩을 관리하고, 반정부 인사를 포섭하여 비밀지하조직(지하당)을 구축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또한, 사회단체 동향과 정권 주도 세력의 정보를 수집하는데, 과거 일심회, 왕재산 사건 등 여러 공안 사건의 배후이기도 하다.

북한은 2024년 10월, 노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문화국’을 ‘문화교류국’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규모를 확대해 대남공작을 강화했다. 이는 북한이 대남 혁명 전략에 따라 남한 정부 및 헌정 체제를 전복하고자 하는 의도를 반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민노총 사건뿐만 아니라, 청주, 제주, 창원 등의 간첩단 사건의 배후로도 문화교류국이 지목됐다.

김정은 정권하에서 대남정책을 재조정한 시기는 2018년경이다. 이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해체 위기를 맞다가 결국 2024년 1월 초 최고인민회의(제14기 제10차)에서 폐지가 결정됐다. 조평통이 양지의 통일업무를 주로 담당했다면, 지금의 문화교류국은 음지의 대남공작이 주요 임무이다.

2024년 초 김정은이 남북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함에 따라, 노동당 통일전선부를 포함한 여러 대남기구들이 폐지되거나 명칭을 변경하는 등의 조직개편이 이뤄졌다. 작년 10월에 통일전선부는 ‘당 10국’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과거 통일전선부 산하에는 ‘조국통일연구원’,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조선아시아·태평양 평화위원회’(아태위) 등이 있었는데, 조평통은 이미 해체됐고, 조국통일위원회는 ‘대적연구원’으로 변경됐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민간외교를 담당하며 남북관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아태위’는 ‘대남협력위원회’로 개편된 것으로 보인다.

양지의 통일업무에서 음지의 대남공작으로 무게중심 이동

통일전선부가 ‘당 10국’으로 변경됐다는 것은 여러 가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북한이 대남공작의 강화를 더 명확히 하고 이를 통해 통일을 위한 실질적인 전략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둘째, 당내 통합과 중앙집권 강화로 ‘당 10국’이라는 명칭은 노동당 내에서 중요한 기구로서의 위상을 부여하는 동시에 당의 통합적이고 중앙집권적인 통제력을 더욱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의 정치적·군사적 통일전략을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권력구조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셋째, 대남공작의 중점 전환으로, ‘당 10국’으로의 변경은 대남공작의 활동 영역을 보다 체계적이고 고도화된 방식으로 조직하려는 의도로 비친다. 이는 북한이 남북관계의 전환을 시도하면서 동시에 대남전략 수행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넷째, 내부의 재편성과 대외적 신호로, 명칭 변경은 북한 내부에서의 권력 재편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북한이 대남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겠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다.

이처럼, 북한이 통일전선부를 ‘당 10국’으로 개칭한 것은 단순히 이름 변경을 넘어 북한의 대남전략이 새롭게 재정비되었음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 핵심은 양지의 통일업무에서 음지인 대남공작으로의 무게중심 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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