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정론] 헌법 개정: 길어지고 있는 고민의 끝은?
  • 북민위
  • 2024-05-07 0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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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올해 초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는 2개 국가론을 주창하면서 “헌법에 대한민국을 제1주적으로 명기하고 영토 규정을 삽입하라”는 지시를 하달한 지도 어느덧 4개월 여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그런데 관련 후속 조치는 여전히 안개 속이다. 헌법 수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최고인민회의(우리 국회 格)의 5년 임기가 지난 3월에 종료되었는데도 새로운 제1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다.(관련 내용은 2024.2.8자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북한의 3월 총선이 오리무중이다’ 참조) 그만큼 이번 사안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많은 난제(難題)라는 점을 시사해 준다.

헌법 개정 방식

북한의 헌법 개정은 ①언제든 소집이 가능한 제14기 최고인민회의 최종(final)회의를 소집하여 통과시키는 ‘땡처리 방법’ ②시간이 다소 걸리더라도 새로운 최고인민회의를 구성하여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방법’ 등 2가지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각기 장·단점이 있다. 그렇지만 ▲영토조항을 삽입하는 헌법 개정이 북한정권사에 한 획을 긋는 분수령이라는 점 ▲새로운 영토조항(북한이 말하는 이른바 ‘국경선’)이 몰고 올 파장과 대응방안 마련에 충분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점 ▲북한이 지금 지방발전 20×10 정책 수행, 중·러 협조관계 증진과 같은 내외적 안정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 점 ▲특히 5월에는 중러-북러-한일중 정상회담과 같은 굵직한 외교 일정이 연쇄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민감한 시기라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이로 볼 때, 필자는 단기간 내 조치가 가시화되는 ①안보다는 새로운 대의원 선거-최고인민회의 개원과 같은 절차를 거치는 과정에서 우리와 주변국들의 움직임까지 종합적으로 체크해 볼 수 있는 ②안의 가능성이 좀 더 크다고 판단한다. 김정은이 주도하는 한반도 정세조작에 필요한 긴장분위기 조성은 지금과 같은 말폭탄, 정찰위성과 같은 전략전술무기 도발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북한이 ‘김정은 유일지도-당우위체제’이므로 그 어떤 경우이든 먼저 당 전원회의 김정은 연설을 통해 그 의의를 내외에 선포한 후 당규약-헌법 개정 수순을 밟을 것이다.

영토조항 추론

북한의 헌법 개정은 김정은의 1월 16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을 기본으로 하여 분단국인 대한민국, 대만을 비롯 러시아(연방), 동독(2개 국가론), 오스트리아(독일과 같은 민족이지만 별개국가) 등의 사례를 참조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번 글은 국제법이나 각국 사례에 대한 법률적 논의는 하지 않으며, 김정은 연설과 북한 동향을 기초로 방향을 추정해 보는 데 의의를 둔다.

결론부터 미리 얘기하면, 필자는 ▲‘선(先) 포괄규정, 후(後) 단서조항’의 개연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정은의 2개국가론은 대내외적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조치이지만 대내문제가 핵심 배경(한류열풍 확산 근원적 차단: 일종의 북한판 철의 장막)이라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반도 정세를 파국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있는 현상타파·도발적 영토규정을 신설하기보다는 ‘기존 분단선(미세 조정)의 영구 제도화’와 ‘대적(對敵) 교육 및 단속 강화’를 통해 흔들리고 있는 체제기반을 안정화하는 데 주안을 둘 것으로 전망한다. 핵심 내용은 아래와 같다.

첫째, 포괄적 규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령토는 조선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로 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헌법 3조와 정면충돌하여 영토분쟁의 소지가 있지만, 핵을 사실상 보유한 상황에서 아래와 같은 단서조항으로 문제 소지를 희석시키면서 유사시 핵을 기반으로 대한민국을 편입하겠다는 ‘무력 적화노선’의 근거로 삼으려 할 것이다.

둘째, 단서조항은 실질적 영토선을 규정할 것으로 보인다. ①이른바 대한민국 괴뢰가 국경선 이남지역을 불법 점령하고 있음을 적시하고, 잠정적 국경선으로 ②육상은 휴전선 이북 ③해상은 NLL부근 ‘새로운 중간선’을 긋거나, NLL과 북한 경비계선 사이를 비(非)항해완충수역으로 선포하는 전략으로 나올 가능성을 상정해 볼 수 있다.

북한이 이처럼 해상에서의 함정충돌-국지전-전면전으로 비화할 수 있는 공격적인 선(1999년 서해 해상경계선, 2007년 경비계선)을 고집하지 않고 NLL에 대한 전략전술적 양보-영구분단선을 채택할 경우 실(失)보다는 득(得)이 크다.

즉 ▲2개 국가론의 성공적 안착을 통해 한류열풍 차단 등 내부 단속, 탈(脫)김일성-김정일을 통한 완전한 홀로서기에 오롯이 주력할 수 있고 ▲대남 면에서도 윤석열 정부에 양날의 검을 쥐어주는 양수겸장(兩手兼將) 효과를 거양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김정은 정권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대북 전단·방송·영상물 투입 등에 강력 대처할 수 있는 국제법적 근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가의 남쪽 국경선이 명백히 그어진 이상 불법무법의 《북방한계선》을 비롯한 그 어떤 경계선도 허용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이 우리의 령토, 령공, 령해를 0.001㎜라도 침범한다면 그것은 곧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입니다.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령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2024.1.16. 김정은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

셋째, 《김정은·백두혈통의 나라》임을 명기할 것이다. 현행 헌법에는 김일성·김정일만 언급하고 있는데 최근 들어 북한이 김일성 호칭인 ‘태양’을 김일성이 아닌 김정은에 대해 붙이는 등 개인 우상화를 본격화하고 있어 이런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헌법 명칭도 ‘김일성-김정일 헌법’에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헌법’으로 개칭될 것이며, 유일령도체계확립 10대원칙(2013.6 수정)에 포함시킨 ‘백두혈통으로의 영구 승계’ 규정도 삽입될 것이다.

넷째, ▲기타 김정은이 지시한 민족-통일 관련용어의 삭제와 변경 ▲남북한 관계를 ‘잠정적 특수관계’로 명시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비롯한 합의문건 폐기 등의 조치가 광범위하게 진행될 것이다. ▲한편 수도(평양), 애국가, 국화 등과 관련한 규정은 이미 1972년 사회주의헌법 개정 시 명문화했으므로 별도의 조치가 필요하지 않다.

맺음말

지금까지 필자가 제시한 북한의 헌법 개정 절차와 추론은 예상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시나리오 중의 하나일 뿐이다. 전망은 정답을 정확히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황을 가정하고 대비하기 위한 ‘체크 과정’이라는데 의의를 두고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봤다.

당연히 맞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만 나름 확신하는 것은 ①김정은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시작된 헌법개정 작업이 현장 실무 수준에서는 여러 어려움에 봉착해 있고 ②2개 국가론이 강한 수사(rhetoric)와 달리 매우 수세적·폐쇄적 노선인 만큼 헌법 개정도 공격적인 조항보다는 ‘당분간 헤어져 살 환경 조성’, 즉 수비(defence)에 무게를 둘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것이며 ③또한 김정은의 외교시계가 미국의 11월 대선을 계기로 한 2025년 이후로 맞춰져 있을 것이라는 점이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우리 정부와 국민에 당부한다. 북한의 2개 국가론은 우리에게도 ‘위기이자 기회’이다. 김정은의 위협에 절대 주눅 들어서는 안 된다. 국론이 분열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북한의 그 어떤 무리수에도 충분히 대처해 나갈 역량이 있으며, 오히려 북녘 동포들을 압제의 사슬로부터 해방시킬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하고 지혜를 모아 나가야 한다.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밝아오는 법이다. 준비하고 또 준비하자. (출처:데일리NK)

                                                                                             원코리아센터 곽길섭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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