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富村 개성’마저 아사자 속출… “김주애는 신수 훤해” 수군수군
  • 북민위
  • 2023-03-10 07:2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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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화성-15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발사한 지난달  대통령실이 내놓은 대북 메시지는 평소와 달랐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 결과를 전하면서 “심각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주민의 인권과 민생을 도외시하며 대규모 열병식과 핵·미사일 개발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식량난 자체는 만성적 현상이라 뉴스가 아니지만 아사자 속출은 근래 듣기 어려운 얘기였다. 정부가 공식 문서에 북한의 아사자 속출을 명시한 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 이후 처음이었다.

아사자 속출에 김여정까지 급파

정부가 북한 식량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구체적 징후를 포착한 시점은 작년 늦가을이다. 외교 소식통은 “해외 북한 공관들에서 주재국 정부에 식량 지원을 요청하는 동향들이 다수 확인됐다”고 전했다. 강추위가 몰아친 연말부터는 함경도와 황해도를 시작으로 북한 각지에서 식량 부족으로 전전긍긍하는 내용의 SI(특수 정보)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농장원들이 “쌀 한 톨 못 쥐었다”며 양곡 수매 검열관에게 항의하거나 중간 간부들이 “고난의 행군기보다 어렵다”며 자조하는 내용이었다.

국회 정보위 관계자에 따르면, 부촌으로 꼽히는 개성에선 새해 벽두부터 하루 수십명이 굶어죽는 상황이 1주일 가까이 이어졌다. 특별 보고를 받은 김정은이 실태 파악을 위해 김덕훈 내각 총리에 이어 여동생 김여정까지 내려보냈지만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당초 ‘국정 가격 절반으로 식량을 공급하라’고 했다가 민심이 악화하자 며칠 만에 ‘무상 공급’으로 지시를 뒤집는 등 정책 혼선을 빚었고, 다른 지역에서 “개성 사람만 인민이냐”며 반발하는 동향도 포착됐다. 북한 당국은 연초부터 ‘애국미 헌납 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이것이 개성 식량난 때문이란 소문이 돌면서 타지역 주민들이 동요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당은 지난달 5일 정치국 회의를 갖고 “2월 하순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 확대회의를 소집할 것을 결정한다”며 “농사에 필요한 해당 대책을 강구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절박한 초미의 과제”라고 했다. 전원회의는 1년에 한 번, 많아야 두 번 여는 대규모 정치 행사다. 북은 이미 연말에 전원회의를 열었다. 두 달 만에 전원회의를 다시 열면서 의제를 농사 대책으로 국한한 것은 극심한 식량난과 이에 따른 동요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김여정의 ‘선별적 침묵’도 예사롭지 않다. 앞서 김여정은 대통령실의 대북 규탄 다음 날(2월 19일) 담화를 내고 “적의 행동 건건사사를 주시할 것”이라며 “우리에 대한 적대적인 것에 매사 대응하고 매우 강력한 압도적 대응을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정작 대통령실이 거론한 ‘아사자 속출’에 대해선 함구했다. 다음 날 나온 담화도 마찬가지였다. 화성-15형에 대한 한국 언론의 지적은 일일이 반박하면서 식량난 문제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대통령실이 ‘아사자 속출’을 거론한 지 3주가 지나도록 북한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식량 생산 급감에 유통 왜곡 겹쳐

과거 북에서 풍수해로 인한 흉작으로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발생한 경우는 간혹 있지만 지금처럼 여러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작황이 다소 부진하더라도 곡물 수입이나 외부 지원으로 부족분을 일부 메우고, 주민들도 장마당 거래 등을 통해 최소한의 식량을 확보하는 식으로 만성적 식량난에 대처해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식량난은 전통적 내핍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극단적인 코로나 봉쇄 조치로 곡물 생산이 3년 연속 차질을 빚은 것이 1차적 원인이다. 기존 고강도 제재에 봉쇄까지 더해지며 비료, 농약, 농기계 등 농자재가 정상 공급되지 못했다. 특히 비료의 경우 원유 금수 조치 등의 영향으로 자체 생산이 여의치 않았고, 대중국 수입도 2019년 4315만달러였던 것이 2020년 545만달러로 8분의 1토막 났다. 쌀 생산량이 급감한 이유다. 2020년 140만t으로 꺾인 뒤 회복을 못 하고 있다. 옥수수, 콩 생산은 타격을 덜 받았지만 외부 식량 확보가 여의치 않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식량 지원에 인색하다”며 “북중 관계가 서먹하다”고 했다.

미 농무부 전망에 따르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2019년 69만6000t이던 것이 2020년 95만6000t, 2022년 121만t으로 급증하는 추세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최소 수십만명이 굶어죽은 고난의 행군은 3~4년 연속 자연재해로 흉작이 누적된 결과”라며 “지금은 코로나 봉쇄 3년이 자연재해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이 북한의 양곡 정책 변화다. 북한은 작년 12월 농장법을 개정해 협동농장에서 생산한 양곡을 당국이 수매해 국영판매소에서만 팔게 했다. 이 조치 전까지 농민은 정부 수매분을 뺀 나머지를 시장에 팔았는데 이것이 금지됐다. 당국이 곡물의 생산·유통을 장악해 시장의 영향력을 줄이겠단 의도다. 하지만 이런 방식의 식량 배분은 시장의 효율성을 따라갈 수 없다. 더구나 3년 누적된 작황 부진으로 식량 배분의 지역 불균형이 극심해졌다. 곡창이라는 황해도에서도 아사자가 속출하는 이유다.

핵 폭주와 김주애 등장에 주민들은 ‘부글’

당장 식량 증산이 어렵다면 식량난을 가중시킨 잘못된 정책이라도 손봐야 하지만 북은 그럴 생각이 없다. 지난달 말 농사 대책을 강구한다며 소집한 전원회의의 결론도 ‘기존 정책 관철’이었다. 전원회의가 끝나자 주철규 내각 부총리, 리철만 당 농업부장 등 간부들은 “죄책감에 머리를 들 수 없다”는 반성문을 노동신문에 경쟁적으로 기고했다. 김정은의 정책은 완전무결한데 자신들이 집행을 못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은 더 이상 이런 선전에 속지 않는다고 한다. 조직적 저항까진 아니지만 불만을 토로하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북한 사회안전성(경찰청 격)은 지난달 22일을 기해 ‘사회주의 제도의 안전과 인민의 생명 재산을 침해하는 자들을 엄격히 처벌할 데 대하여’란 포고문을 전국의 주요 거리와 장마당 입구 등에 게시하고 ‘범죄와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포고문은 살인, 강도, 유괴, 강간·윤간 같은 흉악 범죄 외에도 당 정책 시비·중상, 혁명가요 가사 왜곡, 유언비어 유포, 간부 가족에 대한 폭력, 낙서 등 반정부·반체제 행위들을 단속 대상으로 거론했다. 현재 북한 내부의 혼란상과 흉흉한 민심을 짐작할 수 있다.

굶주리는 북 주민들을 좌절시키는 것은 핵·미사일 폭주다. 북한은 작년 ICBM 8발을 비롯해 탄도미사일 70발을 발사했다. 올해도 대남 타격용 초대형 방사포 도발로 새해 첫날을 열었고, 2월엔 ICBM 기습 발사 능력을 과시했다. 3월엔 5년 만에 정상화되는 한미연합훈련을 고강도 연쇄 도발의 핑계로 삼을 것이다. 군 당국은 지난 1년간 미사일 발사에 최소 3억8000만달러, 최대 6억달러를 쓴 것으로 추산한다. 2600만 전 주민에게 3~5개월 치 쌀을 공급할 수 있는 돈이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이 ICBM 발사와 열병식 등 군 관련 행사장마다 딸 김주애를 대동하는 것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고 전했다. 주민들끼리 사석에서 “먹을 수도 없는 미사일만 잔뜩 만든다” “주민들은 배를 곯는데 (김정은) 딸은 신수가 훤하더라”는 얘기를 주고받는다고 한다. 유성옥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김정은은 김주애로 상징되는 미래 세대의 안전을 위해 쌀 대신 핵을 택했다는 메시지를 내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허리띠 조이지 않게 한다더니… 말바꾼 김정은]

”허리띠 더 조이고 배곯아야…승리 위한 불가피한 선택”

북한의 식량난은 당초 김정은의 다짐과는 거리가 멀다. 김정은은 김일성 100회 생일날이던 2012년 4월 15일 김일성광장에 운집한 평양 시민들 앞에서 “인민이 다시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리게 하자는 것이 확고한 결심”이라고 했다. 집권 후 첫 대중 연설이었다.

하지만 이후 김정은의 행보는 연설과는 딴판이었다. 핵·경제 병진 노선을 표방하며 인민경제 발전보단 핵무력 강화에 체제의 역량과 자원을 집중했다. 미 본토까지 날아가는 ICBM을 개발했지만 국제사회의 고강도 제재를 얻어맞았다. 5년전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제재 해제를 시도했으나 2019년 하노이 노딜로 실패했다. 결국 그해 말 열린 당중앙위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하여 나라의 존엄을 지키겠다”고 했다.

김정은이 세 번째로 허리띠를 언급한 건 지난달이다. 인민군 창건 열병식(2월 8일)에서 “사랑하는 우리 인민들과 아이들이 허리띠를 더 조이고 배를 더 곯아야 했다”며 “보다 큰 승리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했다. 김정은의 직접 발언이 아니라 노동신문이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신문은 “총알보다 쌀을 먼저 생각하면 인민의 존엄이 유린당하기에 힘들어도 가셔야 했고, 세상이 몰라준다 해도 가셔야 할 길이었다”며 김정은의 핵폭주를 두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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