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황장엽 선생 1주기를 기리며
  • 홍순경
  • 2011-10-12 08:4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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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독재정권의 폭정으로 도탄에 빠진 북한 인민들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막고 민족을 구원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형제들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한 채 대한민국 망명을 단행했던 황장엽 선생의 서거 1주기를 맞았다. 김정일 정권의 압제를 피해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같은 운명을 겪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황 선생께서 애착을 보였던 ‘북한민주화위원회’ 조직을 계승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남다르다.

황 선생께서 1997년 4월 망명 이후 대한민국 땅에서 보낸 13년은 민족통일이라는 원대한 목표와 신념을 가진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인고의 세월이었다.

망명 당시 황 선생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북한 동포들의 비참한 현실과 김정일 일당의 폭압상을 알리면 온 국민이 김정일 정권 종식을 위해 분연히 궐기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망명 이후 대한민국에서 겪은 현실은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대다수 국민은 통일을 먼 미래의 일로 치부하여 연로한 황 선생이 혼신의 힘으로 전달하는 통일과 안보문제에 대한 혜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통탄스럽게도 대한민국에서는 김정일 일당에게 호의적이거나 노동당과 연결고리를 갖고 암약하는 종북세력들이 ‘통일’ 이슈를 점령하고 김정일 일당에게 굽실거리며 추파를 던지는 것이 민족의 화해, 통일의 실천인 양 오도되고 있었다.

굶주리고 헐벗은 채 인권 탄압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구출하기 위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극소수로 보였다. 이런 대한민국에서 황 선생께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불가항력이었다.

일부 정치권은 황 선생을 남북 대화의 걸림돌로 치부하며 입을 틀어막기에 급급했고, 종북세력들은 북한의 지령을 받고 황 선생을 ‘배반자’로 몰면서 수차례에 걸쳐 살해 위협을 하기도 했다. 북한 김정일 일당도 황 선생을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았다. “배신자의 말로를 보여 주겠다”고 공언하면서 수차례에 걸쳐 간첩을 남파해 살해를 기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황 선생은 생전에 김정일 일당과 종북세력들의 협공에서 자유로운 날이 단 하루도 없었지만 “조국통일을 위해 테러에 희생된다면 그것은 영광”이라며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거듭되는 협박과 좌절 속에서도 끝까지 통일의 기대를 접지 않고 희망의 싹을 키웠다.

황 선생은 집필 활동과 더불어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북한 주민 구출에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선생께서는 자신이 지은 시의 한 구절처럼 영면하는 그날까지 ‘망명할 때 걸머지고 온 통일 염원의 보따리’를 내려놓지 못했다. 그 통일 염원의 보따리를 이제 우리 탈북자들이 맡아 지고자 한다.

황 선생께서 망명할 당시 대한민국에 귀순한 탈북자는 1000명이 채 안 됐지만 이제 2만30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런 추세라면 금방 10만 명이 될 것이다. 우리 탈북자들은 늘어난 규모에 걸맞게 일심 단결해 황 선생의 꿈을 앗아간 통일의 장애물인 종북세력들을 이 땅에서 뿌리 뽑는 데 앞장설 것이다.

그리고 김정일 독재정권의 기만과 폭압 속에서 인간의 기초적인 인권과 생존권마저 빼앗기고 짐승만도 못한 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북한 형제들, 오길남 씨 가족인 혜원 규원 신숙자 씨 같은 죄 없는 사람을 구속하고 있는 정치범 수용소를 해체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모든 악의 근원을 없애려면 북한의 민주화를 이루고 세습독재의 사슬을 끊어야 함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이기에 이 일에 앞장서고자 한다. 황 선생님! 이제 걸머지고 온 보따리는 우리에게 맡기시고 부디 편안히 영면하십시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 2011년 10월 11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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