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4-03-28 08: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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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는 ‘먼저 온 통일’인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지원 문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북한이탈주민의 날’까지 제정하라는 대통령의 특별지시가 있을 정도로 뜨거운 관심사다. 이전 정부에서 탈북어민 강제북송, 탈북모자 아사 사건 등 북한이탈주민을 홀대하고 차별하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큰 진전이다. 하지만 부처 간 가시성 정책경쟁이 대통령이 언급한 북한이탈주민 지원에 대한 관심과 정책 방향을 오히려 흐리게 만들고 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하나센터 개편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남북하나재단 직영 운영 방안은 결코 해결책이 아니다. 그동안 민간에 위탁 운영했던 전국의 북한이탈주민 지역적응센터, 이른바 하나센터를 남북하나재단이 직영으로 전환하겠다고 한다. 정부는 전국 25개 하나센터를 남북하나재단 소속으로 일원화하는 내용의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이르면 다음 달에 입법 예고할 거라 밝혔다.
하나센터는 탈북민의 거주지 적응과 심리상담, 취업, 교육, 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현재는 통일부와 지자체가 지역 소재 기관, 단체에 위탁 운영하고 있다. 남북하나재단은 복잡한 지배구조 탓에 책임 소재가 불명확하고 민간 위탁의 문제점이 지적되기 때문에 직영으로 운영한다는 명분을 밝혔다. 하지만 작금의 문제는 오히려 남북하나재단이 하나센터에 자율성을 부여하지 않고 독점한 결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북하나재단이 하나센터를 직영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첫째, 하나센터는 이미 본연의 목적을 상실해 개편이 필요하다. 하나센터의 원래 명칭은 ‘지역적응센터’다. 말 그대로 남한에 입국해 하나원 과정을 마친 북한이탈주민이 자신의 거주지를 정하고 지역으로 전입 때 ‘초기정착교육’이 주된 목적이다. 그런데 지난 3년간 국내 입국한 북한이탈주민의 수는 급감했다.
심지어 지역에 단 한 명의 전입자도 없어 교육을 중단한 하나센터도 있다. 하나원, 하나재단 모두 정책서비스 대상자인 탈북민이 없다. 과거처럼 매년 1,000명 이상 국내에 입국하던 상황은 현재 북한 내부 상황이나 중국의 탈북루트 봉쇄로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둘째, 방만한 운영과 세금 낭비다. 남한에 입국한 3만 5천 명의 탈북민을 지원하기 위한 기관으로 남북하나재단이 존재한다. 말그대로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인 남북하나재단에 탈북민 고용은 극히 미미하고 그나마 구색 맞추기 수준이다. 간부급 연봉이 1억 원이 넘는다는 소문 아닌 소문이 돌고 방만한 운영으로 조직개편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던 곳이다.
그런 남북하나재단이 하나센터마저 직영으로 운영하겠다는 건 몸짓 불리기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전국 25개 하나센터 중 현재 3곳은 하나재단 직영체제다. 이곳에 파견된 센터장은 부장, 팀장급인데, 25개 전체를 직영으로 운영하려면 23명의 간부급 인사가 더 필요하다. 또한 현재 하나센터는 민간위탁이라 별도의 임차비가 필요 없지만, 하나재단 직영체제를 하려면 세금으로 불필요한 임차비를 내야 한다.
셋째, 그동안 하나센터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민간단체 위탁 지정 연한을 별도로 규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재는 3년에 한 번씩 민간을 포함한 각 법인의 공모를 받아 선정한다. 위탁 지정을 받으면 운영 임기는 3년인데 남북하나재단의 평가를 거친 후 재지정된다. 그런데 위탁 사업자 평가와 지정이 형식적이고 재지정 연수에 대한 제한조차 없다. 그러니 하나센터 제도가 처음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12년 동안 운영하는 기관도 여럿이다.
역량 있는 신규 기관이 새로 진입할 통로 자체가 원천적으로 막혀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역 하나센터는 남북하나재단 평가 담당자의 눈치를 보며 ‘적당히’라는 보신주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매년 창의적이고 새로운 사업을 발굴해 지역 탈북민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마인드는 오히려 재지정 평가에 악영향을 미친다. 남북하나재단에서 재지정을 결정하면 공모 절차 자체가 없으니 지역 사회에서 경쟁력을 갖춘 법인이나 단체가 경쟁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았다.
넷째, 고용구조의 불안정성이다. 현재도 하나센터에는 하나재단에서 파견된 상담사와 하나센터 직원 간 한 지붕 두 살림체제로 운영된다. 이 두 그룹 간 갈등의 소지는 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더욱이 하나재단 소속인 전문상담사들은 정규직이 아니라 근무환경이나 처우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최일선에서 일하는 상담사인데 가장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하나센터를 직영으로 운영할 시, 남북하나재단 소속이지만 정규직이 아닌 또 하나의 차별적 고용구조를 양산하게 된다.
다섯째, 탈북민단체를 비롯한 탈북민 개개인의 상실감이다. 그동안 탈북민단체는 탈북민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정책서비스 제공과 상징성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탈북민 관련 기관단체장으로 명망 있는 탈북민 인사를 천거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그런데 북한이탈주민과는 아무런 관련 없는 낙하산 인사의 보은성 자리로 전락해 버려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태다. 그런데 지역 하나센터마저 남북하나재단 직영으로 운영해 남한 출신 직원들의 자리채우기가 된다면 대체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곳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조치가 정녕 ‘탈북민을 위한 개편인가’라는 아주 원론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해답이 있다. 신규 전입자를 대상으로 초기적응교육을 담당하는 지역 하나센터는 광역권별로 대폭 줄이거나 행안부 소속 행정복지센터로 이관하고, 지역에 정착한 기존 탈북민과 남한 출신 주민간 사회통합을 위한 사업을 늘려가야 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안정적 정착은 그들을 탈북민이라는 구별짓기로 ‘보호받을’, ‘치료받을’ 대상으로만 보지 않고 북한이라는 지역에서 우리 곁에 온 동등한 시민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김씨 일가의 독재체제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자유민으로 살기 위해 남한에 온 그들은 먼저 온 통일이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경제적 풍요로움을 북한 주민도 함께 누리도록 하는 것은, 먼저 온 탈북민이 시민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남한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아야 하는가라며 한탄하던 고향이 평양인 지인이 생각한다. 그는 그저 우리 곁에 온 고향이 평양일 뿐인 동료이자 시민이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국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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