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새판짜기'…한국의 이니셔티브 기대해본다
  • 북민위
  • 2023-10-05 08: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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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2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는 결의안에 러시아 대표가 셀프 거부권을 행사한다. 여기저기서 "히틀러가 전범재판에서 거부권을 행사한 꼴"이라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장면2: 지난 17일 방러 일정을 마치고 귀국길에 오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 연해주 주지사로부터 받은 뜻밖의 선물. 자폭드론 5대와 정찰용 드론 1대다. 러시아가 찬성한 대북제재 결의 2397호(산업기계와 교통수단, 금속류 등의 대북제공 금지)를 정면으로 저촉하는 첨단무기다.

유엔 안보리는 어느 때부터인가 무력감을 상징하는 단어처럼 돼버렸다. 북한이 대놓고 탄도미사일 기술을 이용한 도발을 감행하면 늘 안보리가 소집되지만 결론은 어김없이 빈손이다. 국제외교의 새로운 일상이다.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 얘기만 나오면 전가의 보도처럼 거부권을 쓴다. 안보리를 실질적으로 형해화하고 있는 '악동'은 러시아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노골적인 일탈을 일삼아온 러시아는 제재 대상인 북한과 버젓이 무기 거래를 한다.

18일 막을 올린 제78차 유엔 총회에서 안보리 새판짜기가 긴급한 화두로 부상한 것은 필연적이다. 과거에도 심심찮게 제기된 이슈지만 이번만큼 소구력이 크지는 않았다. 유엔 사무총장과 서방 주요국 정상 발언에서는 위기감과 절박감마저 읽힌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총장은 "유엔만 변하지 않았다. 안보리를 현재 국제사회 상황에 맞춰 개혁하자"고 목청을 높였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어떤 나라도 오늘날의 도전을 혼자 감당할 수는 없다.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20일(현지시간) 윤석열 대통령의 기조연설은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하며 안보리 개혁에 힘을 실었다. 윤 대통령은 "세계평화의 최종적 수호자여야 할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다른 주권 국가를 무력 침공해 전쟁을 일으키고, 전쟁 수행에 필요한 무기와 군수품을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정권으로부터 지원받는 현실은 자기모순적"이라고 직격했다.

안보리 개혁의 핵심은 거부권을 갖는 상임이사국을 늘리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이 상임이사국과 비상임이사국을 모두 늘리자고 제안하고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거들었지만, 방점은 상임이사국 확대에 찍혀있다. 사사건건 반기를 드는 중국과 러시아의 비토 파워를 약화하려는 의도다. 하지만 안보리만큼이나 안보리 개혁 논의 역시 무력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상임이사국을 확대하려면 193개 회원국의 최소한 3분의 2 수준인 128개국의 승인이 필요하지만 국가마다 셈법이 엇갈린다. 이른바 'G4'로 불리는 독일, 인도, 브라질, 일본은 상임이사국 확대를 강력히 주창한다. 상임이사국이 늘어난다면 가장 유력한 후보들이다. 그러려면 우리나라가 속한 이른바 '커피클럽'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반대 역시 만만치 않다. '합의를 위한 단결(Uniting for Consensus)'이 정식 명칭인 이 모임은 한번 선출로 영구적 지위를 누리는 상임이사국 확대에 반대한다. 

단순히 상임이사국만 늘리면 안보리의 대표성과 지속가능성이 저해된다는 이유에서다. 정기적 선거를 통해 비상임이사국(일반 이사국)만을 늘리자고 주장한다. 저변에는 국가 간의 묘한 감정선도 흐른다. 파키스탄은 개혁에 찬성하지만 앙숙인 인도의 상임이사국 진출만은 결사반대한다. 한국은 이웃 일본과 어느 때보다 가까워졌지만 상임이사국 손을 들어주는 건 별개의 문제다. 개혁의 결정적 걸림돌은 상임이사국 확대가 유엔헌장까지 바꿔야 할 사안이라는 점이다. 헌장을 바꾸려면 모든 안보리 상임이사국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논의 자체가 헛바퀴를 돌 가능성이 높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은 최근 '안보리 개혁' 평가 보고서에서 "안보리는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필수 불가결한 안전 축이자 국제질서의 코너스톤"이라고 평가했다. 안보리가 종이호랑이가 된 것은 신냉전과 국제정치 양극화의 산물이다. 최대 주주 5개국(P5)이 대결하고 있는 국면에서 주주총회가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강대국이 논의를 주도하는 구조로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우리나라와 같은 '미들파워'의 역할이 긴요한 시점이다.

헌장까지 바꿔야 하는 '구조적 판 갈이'가 불가능하다면 체질을 건강하게 바꾸는 '운영방식'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안보리 운영의 핵심은 결국 책임성과 투명성이다. 한국은 내년부터 2년간 안보리 비상임이사국으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창의적 아이디어로 무에서 유를 창출해온 대한민국 외교가 또 하나의 기지를 발휘해보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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