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0-09-28 08: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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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에서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운 장마와 연이어 불어닥친 태풍에 의한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이 -특히 큰물 피해가 심했던 함경도와 황해도를 중심으로- 한창이다.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10월 10일)까지 모든 수해 복구 작업을 끝내라’라는 김정은 지시에 따른 것이다.
노동신문을 비롯한 북한 보도 매체들은 연일 수해 복구에 나선 주민들의 모습과 김정은의 ‘애민(愛民) 행보’를 부각하는 소식을 내보내 체제 선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일정 수준의 효과도 거두고 있다. 하지만 보도의 행간을 보면, 저들 의도와는 달리 북한 체제가 지닌 고질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들을 드러내고 있다. 하나씩 짚어본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11일 태풍 ‘마이삭’으로 피해를 본 함경도에 파견된 제1수도당원사단이 복구 작업을 힘있게 다그치고 있다고 1면에 보도했다. 당원 1만 2000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복구 지원 호소에 따라 선발돼 9일 함경도에 도착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수도당원사단의 함경도 지역 수해복구…김정은의 말한마디가 모든 것 결정 |
김정은은 지난 5일 태풍 피해를 본 함경남도에서 정무국 확대회의를 열고 “수도의 우수한 핵심 당원 1만 2천 명을 함경남북도에 급파할 것을 결심했다”라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이후 조선중앙통신(9.6)은 ‘김정은 위원장이 수도 평양의 당원들에게 함경도 태풍 피해 복구에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號召)한 지 하루 만에 30여만 명의 당원들이 당 중앙의 구상을 실천으로 받들 열의를 안고 함경도 피해 복구장에 탄원했다’라고 전했다.
노동신문도 평양시 당 위원회 간부들이 김 위원장의 서한 공개 즉시 긴급협의회를 열어 최정예 당원사단 조직 방안을 논의하는 한편 복구 작업에 필요한 화물자동차와 굴착기, 삽차 등 중기계와 작업 공구, 자재들도 일찌감치 채비를 마쳐 함경도로 출발했다고 보도했다. 여기까지는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북한에서 일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문제는 막심한 재난이 발생했더라도, 최고 권력자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는 –조직적이든, 개별적이든- 구호 활동이나 복구 작업을 함부로 할 수 없음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북한 체제의 지도이념인 주체사상은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라는 철학적 원리에 기초하며,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입장을 견지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김정은의 지시가 있은 다음에야 수해 복구에 착수한 일련의 과정을 보면, 주체사상의 정신과는 배치(背馳)되는 것으로서 동시에 북한에서 주체적 인간은 최고 권력자 한 사람이고 주민들은 권리의 주체가 아닌 객체일 뿐이라는 것을 드러냈다고 할 수 있다.
태풍 피해 복구를 가장 먼저 끝낸 북한 황해북도 금천군 강북리에서 살림집(주택) 입사 모임이 17일 진행됐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앞서 지난 15일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이곳을 찾아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삿짐을 실은 자동차와 농악대가 마을로 들어서고 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군의 살림집 건설 지원…선군후로(先軍後勞)의 방증 |
이후 노동신문(9.18)은 1면과 2면을 할애해 황해북도 금천군 강북리에서 살림집(주택) 입사 모임이 열렸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이곳은 지난달 폭우와 태풍 ‘바비’로 수해가 발생하자 인민군이 파견돼 가장 먼저 복구 작업이 마무리된 곳으로, 김정은이 직접 찾아 둘러보고 결과에 만족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앞서 김정은은 지난달 초 큰물(홍수) 피해를 입은 황해도 지역을 방문해 ‘국무위원장 예비 양곡’을 지원하고, ‘은파군 농장마을 800세대’에 새 살림집을 지어주라고 하는 등 군대에 수해복구를 지시한 바 있다. 한 달여 만에 복구 현장을 다시 방문한 김정은은 “건설장 전역이 들썩이고 군대 맛이 나게 화선식(火線式) 선동사업을 잘하고 있다”라며 “불과 30여 일 만에 이 같은 선경 마을의 자태가 드러난 것은 자기 당에 대한 충성심과 자기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지닌 우리 인민군대만이 창조할 수 있는 기적”이라고 치하했다.
군이 주민들의 어려움을 지원하는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할 만하지만, 여기에도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북한군이 수해 복구의 일환으로 건설하는 주택의 수는 ‘은파군 농장마을 800세대’를 비롯해 1,000여 세대 남짓할 것으로 추산된다. 물론 이 수치를 훨씬 상회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민간 경제에서 이 정도의 주택을 건설을 감당하지 못해서 군에 의존해야만 하는 것은 그만큼 북한 경제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수시로 강조하는 ‘인민 생활 향상’은 구두선(口頭禪)일 뿐이고, 북한에서는 여전히 선군후로 정책이 작동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함경북도의 태풍 피해 복구 현장으로 보내는 중요물동을 수송하기 위한 임시다리가 함경남도 단천시 북천에 설치됐다고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2일 보도했다. /사진=노동신문·뉴스1
북한 실상을 보여준 ‘웃픈’ 수해복구 광경…정면돌파전 민낯 드러내 |
노동신문(9.12)은 ‘함경북도의 태풍 피해 현장으로 보내는 중요 물자를 수송하기 위한 임시다리가 함경남도 단천시 북천에 설치됐다’라고 보도하며 관련 사진을 게재했다. 이 사진을 보면, 수십 명의 남녀가 아무런 장비 없이 맨손과 밧줄만으로 작업하고 있다. 최신 건설장비를 동원할 필요도 없이 그저 몇 세트의 지게차와 부교만 있으면 해결될 일을 그야말로 맨몸으로 정면돌파전을 벌이는 장면인데, 북한의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 ‘웃기면서도 슬픈’ 광경이다. 그리고 이는 3대에 걸친 백투혈통 75년 통치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처럼 효율성이 떨어지는 노동력에만 의존해서는 어찌어찌 수해복구는 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8차 당대회로 미뤄진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은 앞에서 지적한 ‘타율적인 사회 분위기’ ‘군사 우선정책’ 등의 내재적 문제점과 뒤섞여 차질을 빚을 것이며, 더불어 북한 경제와 주민들의 미래 또한 암담하다고밖에 할 수 없을 것이다.
출처 : 데일리 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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