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2개국가론’의 시원(始原)을 찾아서
  • 북민위
  • 2024-06-06 07:21:28
  • 조회수 : 120

김정은은 올해 들어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는 ‘2개국가론’을 주창한 이후 관련 표현 삭제·변경, 상징물 파괴, 헌법 수정 작업 등의 후속 조치를 전개해 나가고 있으며 말 폭탄과 전략 도발로 한반도 긴장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필자는 김정은 ‘2개국가론’은 ▲신냉전 구도 형성으로 러·중과의 진영외교가 강화된 상황(‘든든한 후원자’ 확보) ▲암세포처럼 퍼지고 있는 한류열풍의 원천 차단 필요성(‘초강경 악법 연쇄 제정’ 등 백약이 무효인 상황) ▲선대와 차별화된 김정은식 나라 건설 본격화(‘김정은의 콤플렉스와 야망’)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先 정권 공고화를 위한 고슴도치 전략전술의 절정》으로 판단한다.

이 같은 김정은 행보는 갑작스러운 돌출행동이 아니다. 그 조짐은 이미 오래전부터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었다. 다만 선대(先代)와 선을 긋는, 따라서 파장이 엄청날 수밖에 없는 고도의 정치 행위인 점을 고려하여 전면적 공식화보다는 개별 정책으로 추진해 오다가 이번에 결단을 내린 것으로 추정한다.

아래는 김정은 ‘2개국가론’ 정식화에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주목되는 정치외교적 계기와 김정은 심리구조를 ‘3개 카테고리 10가지 사례’로 범주화하여 추적, 분석한 글이다.

신냉전 구도

하노이 대참패(no deal) 이후 새로운 길’ 강조

김정은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한반도 평화의 봄’(비핵화 사기극으로 판명)의 중간 마침표를 찍기 위해 2019년 2월 하노이로 출발하였다. 트럼프와의 정상회담 대성공을 예감한 듯 평양역에서 당·정·군 간부들이 대거 참가한 가운데 성대한 출정식을 진행하고 장장 66시간 4500㎞에 달하는 열차 대장정의 길에 올랐다.

그러나 결과는 대참사(no deal)였다.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안고 다시 귀환길에 오른 김정은의 심정은 어떠하였을까? 2012년 공식 집권 이후 최대의 정치적 위기였다고 할 수 있다.

한 달여 동안의 칩거를 끝낸 김정은이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꺼내든 화두가 ‘새로운 길’이었다. 즉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오지랖 넓은 중재자 행세를 하지 말라”며 해고를 선언하고, 트럼프에게는 “2019년 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나오라”는 최후통첩장을 보냈다.

이어 미사일 시험발사 등 강경책을 이어가다가 8개월 후 개최된 연말 당 전원회의를 통해 ‘강대강 정면돌파전’을 새로운 노선으로 공식 채택하고 분야별 세부 정책을 공개했는데 남북관계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이 말한 ‘새로운 길’은 ▲대한민국 정부와의 대화·교류협력 전면 거부 ▲핵 개발 올인-자력갱생에 기초한 폐쇄적인 자립노선 추구 ▲비핵화 협상 이전 과거로의 완전 회귀였으며 오늘날 ‘2개국가론’의 모태(母胎)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체제목표 및 해외동포관리 규정 보완

북한은 2021년 1월 8차 당대회에서 당규약을 개정하고 체제목표인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과 ‘온사회의 김일성주의화’ 용어를 삭제하고(풀어서 쓰고) ‘공산주의 사회 건설’이라는 표현을 부활시켰다. 그리고 해외동포 관련 내용을 최초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2월에는 후속조치로 ‘해외동포권익옹호법’을 제정하였다.

“조선로동당은 전조선의 애국적 민주력량과의 통일전선을 강화하며 해외동포들의 민주주의적 민족권리와 리익을 옹호보장하고 그들을 애국애족의 기치아래 굳게 묶어세우며 민족적 자존심과 애국적 열의를 불러일으켜 조국의 통일발전과 륭성번영을 위한 길에 적극 나서도록 한다.”(2021.1 8차 당대회 수정 당규약 전문)

이같이 북한이 그간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재외동포 사회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은 독립국가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750만 동포들에 대한 관할권 행사와 우군화(友軍化)에 시동을 걸려는 사전포석이라고 평가된다. 이들이 북한 국적을 취득할 경우 각종 한반도 문제에 대한 스피커(speaker) 역할, 관광 및 투자 자원 등으로써 활용 가치가 크다는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김정은김여정의 헤어질 결심’ 담화 발표

김정은은 2022년 7월 정전협정체결 기념일(7.27) 연설에서 윤석열 정부에 대해 “입보다는 머리를 굴려라. 때 없이 우리를 걸고 들지 말고 더 좋기는 아예 우리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상책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2022년 8월 19일 김여정 부부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8·15광복절 기념사(‘담대한 구상’)에 대한 비난 담화를 발표하면서 “제발 좀 서로 의식하지 말며 살았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이다. 남조선 당국의 대북정책을 평하기에 앞서 우리는 윤석열 그 인간 자체가 싫다”라는 극한 표현까지 써가며 선을 그었다.

한류 원천 차단

코로나19 발생 즉시 국경 전면 봉쇄

북한은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중국·러시아를 비롯한 국경을 가장 먼저 폐쇄(2020.1)하였다. 중국과의 교역이 대외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상당한 전략적 결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대한민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다양한 지원 제의에 대해서도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김정은이 이렇게 경제와 외교를 희생하면서 문을 100% 걸어 잠근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필자는 코로나 위기를 내부 개조의 기회로 역이용하고자 하는 승부사의 기질이 작동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북한은 ▲국경 폐쇄, 월경자 총살 등 단속 조치 강화를 통해 만성적인 탈북을 방지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전주(錢主)와 장마당 통제를 통한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 복원 ▲비사회주의 현상 척결 사업 등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이런 사실은 2024년 3월 공개된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 내용, 즉 “2018~2023년 기간 확인된 북중 국경초소가 6820개이며 코로나 시기에 20배 증가하였다. 2~3중 철조망, 1~2㎞ 완충지역 접근 사살 등도 함께 확인되었다”는 조사분석 결과를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국경봉쇄 효과는 국내 입국 탈북민 숫자가 2019년에 1047명에서 229명(2020년) → 66명(2021년) → 67명(2022년)으로 급감한 데서 증명이 된다.

외부정보 유입 차단을 위한 초강경 악법 연속 제정

북한은 국경단속 강화 조치와 병행하여 남한풍 유입을 막기 위해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0년), 청년사상교양보장법(2021년), 평양문화어보존법(2023년) 등을 연이어 제정하고 한류 콘텐츠 유포자에게는 최고 사형까지 처하는 반인륜-구조적 악행을 제도화하였다. 또한 사회안전성 산하에 헬기 지원까지 받는 시위진압전담부대를 창설하였다.

이 같은 행위는 북한지도부의 한류에 대한 위기의식이 얼마나 큰지를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증표가 아닐 수 없다. 실제로 김정은은 2021년 4월 8일 열린 세포비서대회 폐회사에서 “새 세대들의 사상 정신상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청년들의 옷차림과 머리단장, 언행,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늘 교양하고 통제해야 한다. 청년교양 문제는 조국과 인민의 사활이 걸린 문제다,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운명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고 품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인간개조 사업을 적극 벌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우리민족제일주의 대신 우리국가제일주의’ 강조

민족보다 국가를 더 강조하는 ‘우리국가제일주의’는 2017년 11월 로동신문에 처음 등장한 이후 별다른 공개 언급이 없다가, 2019년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 신념화’를 강조하면서 대대적으로 선전되기 시작했다.

북한은 2021년 1월 제8차 당대회에서 ‘우리국가제일주의 시대’를 선포했다. 김정은이 강조하는 것은 자존과 번영이다. 수령이라는 최고지도자의 존재,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 핵무력 완성 등이 자존의 기반이며 자력갱생 정신과 자강력 제일주의 등이 번영의 동력이라고 강조하고 있다.(국립통일교육원 홈페이지에서 중요내용 발췌)

김정은의 탈()선대독자노선 심리구조

김일성고급당학교를 당중앙간부학교로 개칭

김일성고급당학교는 노동당 간부를 양성하는 북한 최고의 교육기관이다. 1946년 6월 1일에 설립된 북조선공산당 중앙당학교가 그 시초이며, 1972년 4월 김일성 환갑을 기념하여 김일성고급당학교로 개칭되었다.

이런 교육기관이 김정은 시대 들어 철퇴를 맞았다. 김정은은 2019년 3월 선전일꾼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수령의 혁명 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된다”고 강조하는 극히 이례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2020년 2월 28일 소집된 당 제7기 11차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김일성고급당학교 부정부패 사건 전반을 총화한 후 학교 당위원회를 해산시키고, 급기야 2021년에는 학교명을 아예 중앙간부학교로 개칭하였다.

게다가 2023년부터 추진한 새 교정(校庭) 조성사업 마무리 점검을 위한 김정은 현지지도(5.15)에서는 김일성 주체사상이 등장한 이후 내려졌었던 마르크스-레닌의 초상화가 건물 외벽에 다시 걸려있는 것도 확인되었다. ▲학교명에서 김일성 이름을 빼고 ▲새 교사를 지어 이전하고 ▲마르크스-레닌을 다시 불러오는 것과 같은 일련의 조치는 선대 우상화를 넘어 정통공산주의로 승부를 걸겠다는 김정은의 의지, ‘새 술(인물)은 새 부대(학교)’라는 내심이 엿보인다.

급기야 지난 5월 21일 진행된 준공식에서는 김정은 초상화가 김일성·김정일 초상화와 함께 건물 내외에 걸린 장면이 공개되었다. 김정은이 선대와 똑같은 반열에 오르는 순간이다. 최근 들어 북한이 김일성 호칭이었던 어버이, 태양을 김정은에게 붙여 사용하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다. 바야흐로 《김정은 연출·주연, 김일성·김정일 들러리 드라마》가 쓰여지고 있다.

핵선제공격 정책 법제화

1960년대 중반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된 북한 핵 개발은 연구, 협상, 군사용으로 점차 발전되어 왔다. 김정은은 집권 이후 양적-질적 능력 제고에 올인해오고 있으며 2013년 핵보유국법 채택, 2017년 국가핵무력 완성 선언, 2022년 핵무력정책법 채택 등을 통해 핵질주 가속페달을 더욱 세게 밟고 있다.

특히 핵무력정책법은 핵을 자위적 수단을 넘어 ‘대남 핵선제 공격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2개국가론의 핵심축(hardware)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북한은 동법을 헌법에도 명기(2023.9) 하여 퇴로를 완전 차단하였다.

영토완정론

핵선제공격 정책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른바 ‘영토완정론’이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김정은이 ‘영토완정’을 공식문서의 전략용어로 사용한 것은 지난 2017년 11월 29일 미국 본토를 사정거리로 하는 화성-15호를 발사하고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공화국 정부성명서’가 처음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략무기 개발과 발전은 전적으로 미제의 핵공갈 정책과 핵위협으로부터 나라의 주권과 령토완정을 수호하고 인민들의 평화로운 생활을 보위하기 위한 것이다.”(2017.11.29. 중대 보도/공화국 정부성명)

이후 동 용어는 중·러 국경일 등 주요 계기 시 시진핑-푸틴의 영토정책 지지 성명 등에서만 확인되다가, 2022년 9월 핵무력정책법 전문과 제1조에 명문화되고 김정은과 군 수뇌부는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한다”는 발언을 수시로 내뱉고 있다.

우리 정부를 대한민국으로 호칭

이런 가운데 2023년 7월 10일 김여정이 담화를 통해 우리를 정식 국호인 ‘대한민국’으로 호칭(‘반어법’으로 우리 정부를 비난)하며 거친 말을 쏟아냈다. 이후 8월 말에는 김정은이 김여정 담화와 같은 단어와 맥락으로 강경한 발언을 이어 나갔다.

“미국과 일본, 《대한민국》 깡패우두머리들이 모여앉아 3자사이의 각종 합동군사연습을 정기화한다는 것을 공표하고 그 실행에 착수했다.”(2023.8.27 해군사령부 방문 시)
“미국과 《대한민국》 군부깡패들의 분주한 군사적 움직임과 빈번히 행해지는 확대된 각이한 군사연습들은 놈들의 반공화국 침략기도의 여지없는 폭로이다.”(2023.8.29 군 총참모부 전군지휘훈련 방문 시)

물론 그 이전에도 남북합의문 또는 대남비난 시 간혹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지만 ▲최고지도부 입에서 ▲가장 자극적인 비난 표현으로 ▲그것도 전쟁을 운운하며 사용된 것은 극히 이례적이었다. 아마 이때가 김정은이 대한민국과 헤어질 결심을 완전히 굳혔을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맺음말

필자는 김정은 ‘2개국가론’이 나온 이후 3번 놀랐다. ▲어느 정도 예측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선언이 나올 줄 몰랐고(‘마치 장성택 숙청 때처럼’) ▲한류에 대한 김정은의 위기의식이 예상보다 커서 놀랐고 ▲특히 선대 지우기-홀로서기 승부수(‘거의 친위쿠데타 수준’)에 또한번 놀랐다. 우리는 머지않은 장래에 김정은이 후계자로 선정된 이후 눈물을 머금고 수용했던 김일성 체형마저도 던져버리는 《脫 김일성 다이어트 이벤트》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 체제는 일반성과 특수성이 공존한다. 그런데 우리는 어느 한 가지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례도 앞서 살펴본 10가지의 사례를 연속선상에서 주목했다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다시 한번 옷매무새를 다듬어 본다. 김정은은 콤플렉스와 야망을 지닌 승부사다. 절대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는 다양한 난제를 안고 있지만 긴 호흡을 가지고 다양한 대응조치를 취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2개국가론’의 배경과 의미, 대응 방향 등 관련 세부 내용은 ‘데일리NK 곽길섭 북한정론’ 게재 글들을 참조)

따라서 우리도 긴 안목과 다양한 전략 전술을 가지고 김정은의 취약점을 공략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리드해 나가야 한다. 김정은이 위기를 기회로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위기는 곧 기회이다. 지금이 동토의 땅 북한을 변화시키고 자유통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라고 생각한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격언을 다시금 곱씹으며 행동할 때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