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4-01-22 07: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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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와 협력의 남북관계를 대결과 반목의 관계로 전환하려는 김정의 발걸음이 새해 벽두부터 분주하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은 1990년대 들어서면서 붕괴했던 전 세계 차원의 냉전질서가 2020년대 들어 신냉전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는 국제정세가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953년 6·25전쟁의 포성이 멈추고 남북 간에는 적십자회담이나 밀사접촉 등의 대화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대화의 시대를 연 것은 노태우 정부에서 국무총리를 수석대표로 하는 고위급회담을 개최하면서부터다.
1991년 12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 간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됐고, 기본합의서 전문에는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 특수관계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추후 남북정상회담을 비롯한 다양한 당국회담과 남북간 교류·협력은 이 합의를 기준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북한은 기본합의서를 외면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합의 자체가 북한이 수세적 국면에서 수동적으로 체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동구 사회주의 국가의 체제전환이 이어지고 우방인 중국과 구소련이 한국과 수교를 이어가는 상황에서 남쪽과 대화하고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지적이다.
노동당은 국민총생산액 1.7배 증가를 목표로 1987년부터 추진한 제3차 7개년 계획이 부진을 면치 못하자, 1993년 12월 제6기 21차 전원회의를 열어 공개적으로 목표 미달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처럼 사회주의 블록이 작동하지 않고 남북한 경제력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 관리를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고위급회담의 주역으로 기본합의서 성안을 주도했던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당시 북한은 수세적인 국제상황 속에서 회담에 나올 수밖에 없었다"며 "북한이 다른 합의서를 언급하면서도 기본합의서에 대해 말을 아낀 것은 당시 상황에 대해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북한을 수세적으로 만들었던 1990년대 탈냉전의 국제환경이 변화하는 조짐을 보이는 현재 상황은 2019년 '하노이 노딜'에 실망한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끌고 가겠다고 결심하는데 방아쇠를 당긴 듯하다.
현재 전 세계는 공급망이라는 이름의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이념적 갈등, 곳곳에서 펼쳐지는 전쟁으로 '세계화'가 위협받고 있다.
이런 상황의 핵심축은 미·중 경쟁이다. 미국은 대중국 포위망을 다층적이고 다방면으로 강화하고 있다. 남중국해나 대만문제, 공급망 문제 등 정치·군사·경제·외교적으로 압박을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으면서 미국과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으로 국경을 접한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과 갈등하고 대립을 이어가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한미일 3각 협력을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제도화하고 한국 정부가 외교정책을 미국 정부의 입장에 동조화하면서 한중, 한러 관계는 점점 더 악화하는 모양새다.
김정은 위원장이 보기엔 적어도 한반도에서, 동북아시아에서 1990년대 허물어진 냉전의 대결선이 다시 만들어지는 셈이다.
실제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군사적 움직임에 한미일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열었지만,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더 나아가 북한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무기가 부족한 러시아에 포탄과 미사일을 공급하면서 북러관계를 탈냉전 이전 수준으로 복구하고 있다.
러시아를 방문한 최선희 외무상은 지난 16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외무장관회담을 하고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 지역정세를 비롯한 여러 지역 및 국제문제들에서 공동행동을 적극화하기 위한 심도 있는 의견교환을 진행하고 견해 일치를 보았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북한은 우리의 이웃, 가장 가까운 이웃이며 모든 분야에서 더욱 파트너십을 발전시키고자 하는 파트너"라며 북한과 전방위적으로 협력 관계를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북러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상대적으로 소원해 보였던 북중관계도 올해 본격적으로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은 지난해 12월 방북한 박명호 북한 외무성 부상과 회담을 하고 "분쟁이 교차하는 국제 정세에 직면해 중국과 조선은 항상 서로를 지지하고 신뢰했으며 우호 협력의 전략적 의미를 분명히 했다"며 "중국은 항상 전략적 고도와 장기적 관점에서 중·조 관계를 바라보고 조선과 소통과 조정을 강화하며 각 분야 교류와 협력을 심화하기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또 시진핑 국가주석은 새해 첫날 김정은과 축전을 교환하고 "새 시기 새로운 정세 하에서 중국 당과 정부는 시종일관 전략적 높이와 장기적 각도에서 중조 관계를 대하고 있다"며 "전통적인 중조 친선 협조 관계를 훌륭히 수호하고 공고히 하며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의 확고부동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결국 1990년대 남북관계에 임한 북한의 태도가 탈냉전이라는 국제정세에 영향을 받았다면 2024년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 역시 세계화 질서의 변화 속에서 중국, 러시아와 전통적 우방관계를 복원한 것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냉전시기에도 중국과 러시아 관계가 지금처럼 좋은 적이 없었다"며 "북한의 대남태도 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세계질서가 변화하는 상황에서 한중, 한러관계를 좀 더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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