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일 김정은의 잔인성과 복잡 음탕한 여자관계
- 관리자
- 2016-04-11 09: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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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4월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는 ‘김정일은 어떤 인물인가’라는 대외비(對外秘) 문건을 만들었다.
최은희·신상옥 부부 납치 사건이 계기였다. 북한 공작원은 1978년 한국 최고의 여배우와 감독으로 활동하던 이들을 납치했다. 영화와 연극에
광적이었던 김정일은 영화산업에 주력했으나 결과가 신통치 않자 이들을 납치할 것을 명령했다. 희생양이 된 두 사람은 북한에서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세우고 체제 선전 영화를 만들었다.
부부는 납치 8년 만인 1986년 해외촬영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에 간 뒤 현지 미국 대사관을 통해 극적으로
탈출했다. 미국에 체류했던 부부는 1989년 5월 11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부부의 강제 납북(拉北)부터 탈출까지 8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The Lovers
and the Despot)〉에는 김정일이 납치를 언급하는 내용이 나온다. 최은희씨가 김정일의 이야기를 몰래 녹음한 것이다. 녹음에서 김정일은 “내가 두 사람을 우리 쪽으로 건너오게 하라고 지시했다. 우리도 장례식처럼 늘
우는 영화 말고, 국제적 영화제에 나갈 만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1984년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안기부가 작성한 김정일 대외비 문건.
다큐멘터리에서 최씨는 녹음테이프에 대해 “나중에 남한으로 돌아가게 되면 아무도 우리 얘기를 믿지 않을 테니
증거가 필요하다는 신 감독의 말을 듣고, 가방 속에 녹음기를 갖고 들어가 몰래 녹음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정일이 ‘최은희·신상옥 부부 납치’를
진두지휘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안기부에 김정일이 어떤 인물인지를 잘 보여주는 문건을 만들어 은밀히 해외 언론에 제공하라고
지시했다. 국제사회에 김정일 규탄 여론을 확산하라는 명령이었다.
안기부는 통신 감청 정보망과 다수의 휴민트(인적 정보)를 통한 각종 보고서와 탈북자 진술 내용 등을 종합해
A4용지 7페이지 분량의 ‘김정일은 어떤 인물인가’라는 제목의 문건을 완성했다.
문건에는 ▲김정일의 성장과정 ▲비인간적 잔인성과 호전성 ▲극에 달한 호화 사치 생활 ▲복잡·음탕한 여자관계
▲변태적 음란 기질 ▲김정일, 반대세력 숙청을 위한 암살대 조직 운영 ▲김정일 특별지시로 대남공작 부서인 작전부에 해외 납치 전담과 설치 및
국제적 납치 만행 자행 내용이 담겼다. 부전자전일까. 32년 전 만들어진 김정일 관련
문건을 보면 그의 아들 김정은도 보인다. 문건 제목을 ‘김정은은 어떤 인물인가’로 바꿔 지금 공개해도 무방할 정도로 부자(父子)는 똑
닮았다.
엉망인 학교생활
문건에 따르면 김정일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1960년 동독 항공 군관학교에 잠시 유학했지만, 규칙적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1개월 만에 도중하차한다. 김정일은 보안 등의 문제로 가명을
사용해 학적에는 남아 있지 않다.
베를린에서 발행하는
《타게스슈피겔(Tagesspiegel)》지도 1994년 7월 12일 이 같은 사실을 보도했다. 이 신문은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 김정일이
김일성의 명령으로 지난 60년 동독에서 잠깐 유학했지만, 사관생도로서의 엄격한 훈련을 이기지 못해 불과 1개월 만에 중도하차했다고
썼다. 당시 기사 제목은 ‘의문의 인물 김정일에게 동독군은 너무
엄격했다’였다.
어쩔 수 없이 김정일은 1960년 4월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에 입학, 64년 8월에 졸업했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도 김정일은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미모의 여학생을 수시로
농락, 임신시키는 등의 행동을 했다. 문건 내용을 그대로 옮긴다.
〈어린 학생 시절부터 나이 많은 사람에게 한 번도
경어를 써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안하무인 격인 망나니 행동을 해온 김정일은 김일성 대학 시절 미모의 여학생을 보기만 하면 마구 농락, 임신시키는
등 호색 문제아의 면모를 보였다. 중학생 때도 주위의 여학생 중 마음에 드는 여자는 경호원을 시켜 닥치는 대로 납치,
농락하였다.〉
김정일은 삼석 인민학교와 제4인민학교,
남산고급중학교(현 평양 제1중학교)를 나왔다. 실력 부족으로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것은 김정은도
마찬가지였다.
2010년 11월 24일 영국 일간지 《더 선(The
Sun)》은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시절 공부를 잘 못해 같은 반 학생들이 ‘김(Kim)’ 대신 ‘띨띨하다’ ‘둔하다’는 뜻의 ‘딤(dim)’을
붙여 ‘딤정은’으로 부를 정도였다고 전했다. 이 신문을 보면 스위스 최고 사립학교에서의 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부었지만, 김정은은 교실의
낙제생이었다. 중등교육 검정시험 자격증에 해당하는 것조차 따지 못했다.
결국 15세 때 베른국제학교에서 공립인 리베팰트학교로
전학했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금세 열등한 학생층으로 떨어졌다. 옆자리에 앉았던 포르투갈 외교관의 아들 조앙 미카엘루는 “김정은과 내가 반에서
가장 둔한 학생(the dimmest student)은 아니었다. 하지만 언제나 2군에 속했다. 김정은은 자신의 의견을 나타내기 위해 애를
썼지만, 독일어를 잘하지 못했다. 또 문제를 내고 대답을 하라고 하면 어쩔 줄 모르고 허둥대곤 했다”고
말했다.
2년 뒤 2012년 4월 1일 스위스 일간지 《르
마탱(Le Matin)》도 김정은이 1990년대 스위스에서 2년간 다닌 국제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익명의
소식통들을 인용해 김정은이 스위스 베른국제학교 시절 첫해에 75일, 두 번째 해엔 105일을 결석했다며 이같이 전했다. 당시 김정은과 같은 반
학생이었다는 사람은 그가 오후에 학교에 나온 적이 많았고 성적도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이 말한 바로는 당시 ‘박운’이란 가명을 쓴
김정은의 자연과학 성적은 6등급 가운데 3.5등급이었다. 또 수학·문화·사회·독일어 등에서 과락을 겨우 넘는 성적이었고, 영어는 처음 고급반에
들어갔다가 보통 반으로 재배치됐고 과락을 겨우 넘겼다. 반면 음악과 기술은 최고 등급인 6등급 바로 밑의 5등급이었다.
김정은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에서
유학했다. 이후 2002년에 김일성종합대학 군사학과에 입학, 2007년 졸업했다.
비인간적
잔인성
‘비인간적 잔인성과 호전성의 소유자 부분’에는 김정일이
측근이라도 비밀 누설 시나 진정(陳情) 때는 처단하고, 총살 현장을 직접 참관하는 등 잔인한 성격이라고 설명한 뒤 그 사례를 자세히
소개했다.
〈사례-1. 노동당 국제부 부부장 최준덕(50세)이
사소한 거짓말을 했다 하여 재떨이를 머리에 던져 심한 상처를 입혔음(최준덕은 김정일의 첫사랑이자 두 번째 부인인 성혜림의 묘지기였다. 김정일의
최측근이며 김정일 서기실(비서실)의 2인자였던 그는 김정일과 함께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를 다니다가 모스크바로 유학, 러시아통이 됐으며
러시아어에도 능통하다. 그는 본처 자리를 빼앗기고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린 성혜림이 치료를 위해 1974년 모스크바에 머물자 성씨를 돌보는
역할을 했다.)
사례-2. 77년 첩 관계 등 사생활을 누설한
공관관리책임자 이수헌(39세)을 처형.
사례-3. 77년 자신의 난잡한 여자관계 등 사생활을
누설한 연락군관 추태식(52세, 대좌)을 처형.
사례-4. 78년 난잡한 여자관계를 만류한다고 노동당
선전선동부부장 박성수(52세)를 처형.
사례-5. 80년 김일성에게 김정일의 사생활이 너무
방탕하고 퇴폐하다고 진정하는 익명의 투서사건이 발생하자 2개월의 수사 끝에 선전선동부 부부장 이명재(55세)의 처를 범인으로 색출, 남편이 직접
총살토록 조치.(이 사건에 대해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씨는 생전 “김정일 비밀파티에 이명재 당시 당 부부장이 참석했는데 이명재 부인이 비밀파티
사실을 알고 김일성에게 바로잡아 주라고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편지가 중간에 김정일에게 들통이 나서 김정일이 이명재를 불러다 부인단속을 하라고
말했다. 이에 이명재가 ‘제가 부인을 죽일까요’라고 물었고, 김정일은 그 자리에서 허락해 이명재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부인을 쏴 죽였다”고
했다.)
사례-6. 81년 자기와 정을 통한 간호원
이영미(27)가 부모에게 “나는 김정일을 모시고 있다”는 편지를 보낸 사실을 알고 임신 중임에도 처형.
사례-7. 81년 자신의 허가 없이 첩에게 모스크바행
비행기표를 사준 공관관리과장 노종일(55세)을 첩이 보는 앞에서 마구 구타.
사례-8. 81년 김정일이 여동생 김경희(36세)와
같이 지방여행 시 동행한 예술단원 한 사람이 술에 취해 추태를 부리자 김정일이 이를 보고 권총을 꺼내 총살하려는 것을 김경희가 만류하여
중지.
사례-9. 김정일이 탑승한 차량이 주행 시, 마주치는
모든 차량은 사전 정지토록 의무화하고, 이를 위반하여 머뭇거리거나 늦게 정차하는 차량이 있으면 동승한 비서로 하여금 탑승자를 확인해 반드시
처벌.〉
개인감정에 근거해 잔인하게 숙청, 처형하는 것은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이 권력 전면에 나선 2012년 7월 이후 처형된 고위 간부는 100여 명에 달한다. 김정은의 첫
표적은 김정일 사망 이후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김정은은 2012년 7월 리영호를 전격 해임했다. 그의 해임은 김정은
군 통제 강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로 알려졌다.
리영호를 포함해 김정일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군부 4인방’도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모두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물러났다. 특히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을 전격 처형,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죄목(罪目) 중에는 김정은에 대해
‘왼새끼를 꼬며(딴마음을 먹고)’, 김정은을 추대하는 자리에서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것도 있었다.
지난해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재판 절차도 없이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되면서 김정은 체제의 잔혹성이 국제사회에 다시 한 번 각인됐다. 처형 이유는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꾸벅꾸벅
졸았기 때문’이었다. 현영철의 처형 한 달 뒤인 지난해 5월 김정은은 최영건 부총리도 처형했다. 최영건은 김정은이 추진하는 산림녹화정책과 관련해
불만을 표출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은 올 2월에는 우리 군(軍)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북한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군부 서열 3위)을 처형했다. 죄목은 ‘종파분자 및 세도·비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反)김정은 파벌을
구축하고 권력 남용 비리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代를 잇는 호화 사치
생활
김정일은 호화사치생활을 즐겼다. 김정일이
가장 즐겼던 술은 1980년 프랑스 보르도산 샤토
라투르(Chateau Latour)라는 와인이었다. 병당 560만원 정도 한다. 김정일은 이 술을 오스트리아의 유리 명품인 리델(Riedel)의
와인잔에 따라 마셨다. 애완견 수입·관리에만 매년 수십만 달러를 쓰기도 했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일은 프랑스 수의사를 수시로 불러
애완견의 건강검진까지 했다”고 했다.
2009년에는 이탈리아에 호화요트
2척(240억원가량)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요트는 이탈리아 경찰에게 압수됐다. ‘극에 달한 호화 사치 생활자’ 부분에는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잘 정리돼 있었다. 문건 내용이다.
〈○80년 중앙당 김정일 공관 확정 보수 시 서독
기술자를 초빙하여 최고급 외제 장식품으로 치장하는 등 영국화 200만 파운드(당시 기준 한화 30억원 상당)
허비.
○평양에 미화 1억 불 상당의 공관 4개소, 각 지방에
초호화 별장 9개소, 최신형 고급 외제 승용차 30대 등 소유(김정일은 꼭 독일산 벤츠 자동차를 탔다. 김정일은 차 값을 금괴로 결제, 벤츠사
최고 고객 중 한 명이었다. 별장 내에서만 사용하는 번호판 없는 벤츠도 많았다.)
○전용 창고에는 자신이 농락한 여자들에게 선물할 각종
고급 물품(보석류, 향수, 시계, 전자제품, 여자 의류, 여자 신발류, 핸드백 등)이 산적.
○전시에 대비, 서방은행에 금괴 7톤 및 거액의 외화
예치.〉 김정은은 김정일보다도 더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다.
북한 인민들이 굶어 죽어가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안위(安危)와 사치를 위해선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실제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안이 발효된 상황에서도 김정은 정권은 집권 후 4년여 동안
자동차, 수상스키, 승마용품, 카펫, 전자제품 등 사치품을 사들이는 데 21억 달러(약 2조4000억원)를
탕진했다.
김정은은 자신이 유학생활을 했던 스위스에서 만든
사치품을 선호한다. 김정은이 2010년 10월 노동당 창건 65주년 행사 때 찬 시계는 스위스 파텍 필립(Patek Philippe)사 제품으로
추정된다. 주문 생산만 가능한 제품으로 가격은 1억원 정도다. 2012년엔 스위스 메델라(Medela)사의 심포니 유축기(모유 짜는 기계) 등
고급 출산·육아용품에 15만 유로(약 1억9200만원)를 썼다. 메델라사의
심포니 유축기는 국내 산모들 사이에서 ‘꿈의 유축기’로 불리는 제품으로 300만원이 넘는 고가(高價)다.
또한 김정은은 유학 시절 즐겨 먹던 스위스 에멘탈
치즈를 북한에서 만들려다 실패하자 수입해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핀란드와 독일
업체들로부터 가정용 사우나 설비들을 수입하기도 했다.
소식통은 “아버지(김정일)처럼 밤샘 파티를 즐기는
김정은이 숙취와 피로 해소 목적으로 도입을 지시했다”며 “파티용 포도주 및 양주 수입량도 김정일 시절보다 증가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중국에 진출해 있는 북한 무역회사를 내세워
영국제 최고급 요트를 구입하기도 했다. 김정은의 요트는 위성사진에 잡힌 바 있다. 북한 전문가인 커티스 멜빈(Curtis Melvin)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한미연구소 연구원은 2015년 10월 촬영한 위성사진을 공개하면서 “남포항에서 길이 약 50m의 호화 요트가 발견됐다”고
밝혔다.
미국의 북한 전문 인터넷 매체인 ‘NK 뉴스’는
김정은이 지난 2013년 5월 동해안을 10일간 시찰할 때 영국제 호화 요트인 ‘프린세스 95MY’를 이용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영국 요트
회사인 프린세스 요트가 만든 ‘프린세스 95MY’의 당시 가격은 약 450만 파운드(약 80억원)였다.
복잡한
여자관계
김정은은 김정일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복잡·음탕한 여자관계를 가진 패륜아’ 부분에는 김정일의 은밀한 사생활이 담겼다.
관련 내용이다.
〈김정일은 본처(영숙, 성·나이 미상) 외에 첩 2명과
생활하면서도 주변의 근무여성을 특별양성하여 성적유희로 농락하고 있다.
김정일은 77년부터 매년 시·도 예술전문학교 졸업반
여학생 가운데 미모의 30여 명을 선발, 평양적십자병원 의대에 1년 과정의 특설 반에서 기본간호교육을 시키고 홍콩·마카오 등지에 파견하여 안마술
등 단기간의 연수를 시켜 자신이 최종심사한 여자를 집무실·공관·별장 등에 배치하여 즐기고 있다.
또 영화배우 유진희 (〈당의 참된 딸〉
주인공)·홍영희(〈꽃 파는 처녀〉의 주인공)·최삼숙·이정순·채수련·오화자·고지미 등 10여 명과 ‘만수대예술단’ 무용수 10여
명·전용타자수·담당간호사 등 숱한 여자들과 성적유희를 자행하고 있다. 김정일은 이들에게 공훈 배우 칭호를 수여하고 고급물품을
선물했다.
김정일은 변태적인 기질이 다분한데, 주말마다 각종
연회를 열고 무용수들에게는 나체로 춤을 추게 하며 참석자(중앙당 부부장급 이상)로 하여금 이들을 애무토록 한 뒤 즐기는 등 변태적 음란
기질자임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여자관계가 복잡했던 김정일은 최소한 10명의
사생아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러시아 일간지 《콤소몰스카야
프라우다(Komsomolskaya Pravda)》지는 1997년 9월 23일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 이 신문은 ‘수령과의 잠자리’라는 제호
아래, 기쁨조를 비롯한 김일성-김정일 부자(父子)의 여성 편력을 거의 전면에 걸쳐 소개한 뒤, “우리(러시아) 여성들도 김정일의 관심을 비켜가지
않았다”며 “러시아 여성 연예인들이 엄청난 공연료를 받고, 김정일 개인손님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같은 러시아 여성 연예인들의 평양 방문은 북한
특수기관에 의해 비밀리 이뤄지고 있는데, 이들은 많은 출연료를 받고 있음에도 불구, 단 한 차례도 공개공연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91년 김정일 손님으로 평양을 방문한
모스크바 여성 합창・무용단원들을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이 목격함으로써 처음 드러나게 됐으며, 러시아 최고 인기 여가수 알라 푸가초바(Alla
Pugatcheva)도 91~92년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또 이 신문은 “김정일에게 수많은 사생아가 있으며, 확인된 아이만 하더라도 10명 정도”라고
덧붙였다.
김정은도 김일성, 김정일과 마찬가지로 여성들과 은밀한
사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이 집권 초반에는 초대소나 별장
등을 별로 이용하지 않았지만 2014년 다리 이상과 발목 수술 이후엔 초대소·별장 등지에서 휴양하는 일이 잦다”며 “김정은이 자주 찾는 초대소와
별장 등지에는 키 170cm 이상 미모의 여성들이 근무하고 있다. 김정은은 김정일 생존 시 활동했던 기쁨조를 모두 해임하고 새로 (기쁨조를)
뽑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최근 평양에선 ‘기쁨조’에 선발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얼굴에 흠집 내는 여성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거엔 ‘기쁨조’에 선발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기던 평양 여성들이
“김씨네와 중앙당 늙은 영감들의 노리개질은 하기 싫다”며 거부한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첫사랑인 현송월과도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북한판 걸그룹’ 모란봉악단 단장인 현송월은 노동당 국제부장과 《로동신문》 책임주필을 지낸 현준극의 조카로 김정은보다 다섯
살이 많다. 연상의 여인인 성혜림과 연인 관계였던 아버지 김정일은 쓰라린 경험 때문이었던지 둘 사이를 떼어놓았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일이 죽고
둘의 관계는 다시 가까워졌다.
강명도 경민대 교수는 “현송월이 그 나이에 인민군
대좌(대령) 계급을 단 것은 김정은의 총애가 없다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암살대 조직
실제
김정은은 모란봉악단 공연이 있을 때마다 현송월을 자신과
가까운 곳에 배석시키고 있다. 심지어 지방을 방문할 때도 현송월을 수행시켜 둘만의 시간을 보낸다는 소문도 있다. 문건에 따르면 김정일은 ‘김일성
부자 세습체제’를 반대하는 인사를 극비리에 숙청하기 위해 국가정치보위부 내에 비밀단체인 암살대를 조직, 직접
지휘했다.
〈암살대는 의사, 저격수, 운전수 등 15~20명으로
이뤄져 있으며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령사항을 즉각 수행한다. 76년 3월 교통사고로 발표한 당시 정무원 부총리 남일(당시 6l세)의
사망도 실은 ‘암살대’에 의한 처단임. 김정일은 남일이 소련의 비호하에 주석이 되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죽이기로 마음먹음. 김정일은
암살대에 평양〜남포 간 고속도로에 대형화물트럭을 세워놓았다가 달려오는 남일의 승용차로 돌진, 충돌하여 죽이라고 명령. 암살 후 교통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위장 보도.〉
김정은도 김정일처럼 암살대를 운영하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김정은은 국가안전보위부를 이용해 자신의 반대세력을 축출, 처단하고 있다. 보위부에서 제거 대상자의 비리나, 김정은을 비난하는
내용을 캐내면 여지없이 처형한다고 한다. 장성택,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변인선 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마원춘 국방위원회
설계국장 등의 처형, 숙청도 보위부의 작품이다.⊙
조선뉴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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