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0-12-24 08:0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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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의 인권 유린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의 ‘어선 선장 공개총살’ 사건은 북한 내부에서 자행되고 있는 이 같은 사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더 기막힌 사실은 우리나라 외교장관이 북한 당국의 인권 유린을 정당화해줄 수 있는 발언으로 세계를 경악케 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1일(현지시간) RFA(자유아시아방송)는 함경북도 사법기관의 한 소식통을 인용한 기사를 보도했다. 지난 10월 중순경 함북 청진시에 사는 중앙당 39호실 산하 수산기지 소속 최모(40) 선장이 자사 방송을 듣다 북한 당국에 걸려 총살됐다는 것이다.
최 씨는 수십 년간 항해 시 외부 라디오 방송을 청취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도 보위국은 최 씨 사건을 당에 반하는 행위(해당 행위)이자 체제전복 시도로 간주하여 다른 선장 등 1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를 공개 총살했다고 한다. 이에 앞서 RFA는 지난 8월에도 북한의 한 여군 통신병이 방송을 청취하다가 발각돼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 같은 사건들은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에 관한 두 가지 질문을 제기한다. 첫째, 라디오 청취가 과연 ‘해당 행위’이며 ‘체제전복’ 시도냐는 것이다. 뱃일을 하는 사람들이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그마저 체제전복 시도로 걸어 처벌한다면,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란 전무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 당국은 체제보위를 위해 주민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이상 징후가 보일 경우 그것을 모두 해당행위나 체제전복 기도로 몰아가는 과잉 처벌을 일상화하고 있다.
둘째, 남북관계 발전을 빌미로 최근 한국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어낸 것이 과연 ‘북한 주민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타당한 조치냐’는 것이다. 북한 당국의 최 씨에 대한 잔혹한 처벌은 북한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사상 고취를 위해 외부 정보의 유입이 중요한 요인이라는 점을 역설적으로 시사한다.
북한 주민들은 한국에서 날아온 전단이나 최 씨의 경우처럼 라디오 방송을 청취하는 행위를 통해 한국의 발전상뿐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조금씩 깨우치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 세계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외부 정보 접촉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는 것이다.
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인권 의식에 눈뜨게 되면 김씨 일가의 70년 왕조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당국은 라디오 청취뿐 아니라 주민들의 자유와 인권 말살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정된 한국의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이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북한인권결의안 논의하는 유엔총회 본회의, /사진=유엔 웹 tv 캡처
자유세계에서는 북한 당국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를 지속적으로 규탄하고 있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유엔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했다. 2005년 이래 16년 연속 이뤄진 결의안에서는 북한 당국의 고문 및 성폭력과 자의적 구금, 정치범 강제수용소, 조직적 납치, 송환된 탈북자 처우, 종교·표현·집회의 자유 제약 등이 지적됐다.
아울러 결의안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ICC(국제사법재판소) 회부와 가장 책임 있는 자들을 겨냥한 추가 제재 고려 등 적절한 조치를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이 또한 7년 연속 포함된 내용이다. 국제사회가 북한 당국의 인권유린 문제를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올해 북한인권결의안의 58개국 공동 제안국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지난해에도 그랬다. 더 나아가 한국 외교장관은 남북한 국민을 갈라치기하며 북한 당국을 옹호하는 모습도 보였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은 ‘대북전단 살포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을 옹호하며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할 경우에만 제한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은 발언은 두 가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는 강 장관의 인식이다. ‘표현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헌법에 규정돼 있다. 우리 헌법의 제10조, 제17조, 제18조, 제21조, 제22조, 제37조 등에서도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 있다. 한 법학자에 따르면,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기 때문에 사전 검열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되며 강 장관의 발언은 자칫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위험한 발언이다.
특히 로드니 스몰라(Rodney A. Smolla) 댈러웨이 대 교수가 주장하는 ‘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세 가지 가치 가운데 ‘폭넓은 계몽 효과’는 북한 주민들에게 미치는 인권 개선 영향과 관련하여 주목할 만하다.
강 장관의 발언은 북한 당국이 아전인수(我田引水) 격으로 해석, 적용할 개연성도 있다. 북한 당국이 선장 공개총살 사건과 관련하여 최 씨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했기 때문에 처벌한 것이라는 논리를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의 논거는 최 씨의 외부 라디오 청취 행위를 해당행위이자 체제전복이라는 죄목으로 처벌했다는 데에서 잘 나타난다. “남조선에서도 그러는데, 우리라고 공익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항변할 수 있는 논리를 강 장관이 제시해 준 것이다.
둘째, 한국 국민의 범주와 관련된 문제다. 강 강관의 발언은 남북한 주민들을 구분하는 반(反)헌법적 발상의 산물이다. 강 장관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되는 경우에만 표현의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국민이란 당연히 접경 지역에 거주하는 한국 국민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대북전단이나 USB 등 외부 세계의 실상을 알려주는 정보들을 접촉하지 못함으로써 지속적으로 자유와 인권을 유린당하며 생명과 안전을 위협당하는 북한 주민들은 한국 국민이 아니라는 얘긴가? 북한 주민들을 한국 국민으로 생각한다면 그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라도 대북전단과 외부 정보의 유입을 통해 인권의식을 고취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대북 전단을 받아봄으로써 주민들이 북한 당국에 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대북전단 살포금지법’은 북한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고 강변하면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강 장관의 CNN 인터뷰 맥락상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본다. 강 장관의 발언은 한국의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미 의회가 심각하게 문제시하고 있다는 사회자의 지적에 대한 반응으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강 장관의 발언은 한국 국민들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북한 당국의 인권 탄압을 옹호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이 김여정을 미소 짓게 만들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 실종에 기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강 장관의 발언은 한국 정부가 남북한 국민들 모두의 인권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을 세계에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부터라도 한국 정부는 북한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권탄압’이라는 오랜 ‘적폐’를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제2의 최 씨들이 계속 나온다면 북한 주민들의 인권은 말살될 것이고, 통일이 되었을 때 남북한 국민통합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자유와 인권에 관한 주민들의 의식이 진전될 때 남북한 국민들의 이질감도 완화될 것이고, 통합 과정도 수월해질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외부 정보의 유입은 앞으로도 지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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