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왕이 ‘싱가포르 합의’ 이행 주장의 노림수
  • 관리자
  • 2020-12-07 07:3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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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외교부장인 왕이가 이달 25일에 방한해서 26일 이해찬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났다. 청와대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접견 시에는 말을 극도로 아꼈던 그가 이 전 대표와의 회동에서는 작심발언을 하였다.

 “양국이 코로나19 사태를 직면해 한배를 타고 협력했다. 중국은 한국과 함께 노력하고 각 분야의 교류협력을 확대해 중한 관계가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길 희망한다”고 하면서 한국이 중국의 긴밀한 협력동반자 관계임을 강조하였다. 

이 전 대표도 왕이 부장과 공동의 관심사에 대해 깊이 있게 의견을 교환했다고 하는데, 이 ‘공동의 관심사’가 무엇인가. 왕이 부장이 방한 당일에 강경화 외교부장관을 만나 ‘한중 사이에 민감한 문제’를 잘 처리하라고 주문했다고 한다.

한편, 이 전 대표와 함께 왕이 부장을 만난 여권 인사들은 그가 미·북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높이 평가하면서 비핵화와 제재 완화의 ‘동시적 조치’를 주문했다고 한다. 또한, “남과 북이 (한반도의) 주인이다. 건설적 노력을 계속해주길 바란다”고 했다고도 했다. 

이들의 전언에서 특히, ‘비핵화와 제재 완화의 동시적 조치’라는 문구에서 위에서의 ‘공동의 관심사’ ‘한중사이 민감한 문제’가 무엇인지 조금 윤곽이 드러난다. ‘비핵화와 제재완화의 동시적 조치’는 중국이 이미 전부터 내세웠던 쌍궤병행(비핵화와 평화체제 전환 동시추진)의 다른 식 표현이다. 문 정부식 ‘비핵화 입구로써의 종전선언’과 그 결을 같이 하는 것이다.

즉, 왕이 부장은 문 정부의 종전선언 밀어붙이기를 다시 한 번 촉구한 것이다. 이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으로 미중 신 냉전 구도 속에 한국을 자국 쪽으로 편승시키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로 비춰진다. ‘싱가포르 합의’가 이행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 것을 볼 때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싱가포르 합의’는 문 정부 인사들이 내년 1월에 출범하게 될 바이든 행정부를 설득시키기 위한 히든카드로 내세운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7일에 정권이 바뀌었다고 하더라도 역사적인 합의는 존중되고 유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했다. ‘역사적 합의’는 바로 ‘싱가포르 합의’를 가리킨다. 

2018년 미북 정상회담 시 도출된 6·12 합의문의 핵심 내용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구축’(합의문 2항, 3항)이다. 3항에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는 4·27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명시했다.

따라서 싱가포르 합의를 내세우는 것은 결국, 판문점 선언 이행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번 왕이 부장의 ‘남북이 한반도의 주인’이라는 말도 판문점 선언문 1조 1항인 “남과 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자주의 원칙을 확인하였으며…”와 일맥상통한다. 

또한, ‘한중 사이에 민감한 문제’는 ‘미중사이의 문제’로 읽힐 수 있고 이것은 사드(THAAD)문제로 대변되는 미중 간의 한반도 내에서의 군사적 긴장감을 조성하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지칭한다. 일찍이, 쌍중단(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주문했던 중국이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 트럼프 정부에서 중단했던 한미연합군사훈련 재개 시도를 선제적으로 봉쇄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왕이가 주문했던 ‘비핵화와 제재완화의 동시적 조치’는 한국식의 ‘비핵화 입구로의 종전선언’이라고 앞서 기술한 바 있다. 이 또한, 판문점선언문을 기초로 한다. 3조에 “남과 북은 비정상적인 현재의 정전상태를 종식시키고 확고한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것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이다”라고 명시했다. 

그 부속조항인 제3항에는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했다.

이처럼, 판문점 선언은 ‘종전선언’ 실현을 분명한 목표로 설정했다. 동시에 한반도의 평화체제구축을 위해 중국을 포함한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정부는 6·12 싱가포르 합의문 안에 ‘4·27 판문점 선언 재확인’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은 것이다. 즉, 트럼프 정부가 ‘종전선언’과 ‘한반도 문제의 중국 개입’을 수용한다는 시그널을 준 것이다.

왕이의 이번 방한 목적이 바로 이것이다. 겉으로는 싱가포르 합의 이행이라고 했지만 결국, 판문점선언문 이행을 강력 주문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수용한 판문점선언으로 차기 바이든 정부를 설득하라는 주문이다. 

그런데, 싱가포르 합의문이 채택될 당시 바이든은 “모호한 약속만 받고 동맹을 약화할 수 있다는 신호까지 보냈다”고 혹평한 바 있다. 모호한 약속은 ‘북한의 비핵화’(북핵 포기)가 아니라 ‘한반도의 비핵화’라고 뭉뚱그린 거를 의미할 것이고 ‘동맹 약화의 신호’는 한미군사훈련중단을 가리키는 것일 것이다.

판문점 선언문 3조 4항은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라고 명시했다. 이것은 북한의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의 비핵화를 가리킨다. 

우리는 이 둘의 차이를 이미 너무나도 잘 안다. 판문점 선언문 2조 1항에서 명시한 ‘모든 공간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일체의 적대행위 전면 중지’는 ‘한미군사연합훈련 중단’을 직접적으로 가리킨다. 바이든도 당시 이 두 가지 점을 크게 우려하고 정상 간의 합의문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여기에 대한 입장이 바뀌지 않는다면, 우선적으로 한미군사훈련 재개를 꾀할 것이고 동시에 북한의 선 비핵화를 강력하게 촉구할 것이다. 이미 한미동맹을 강조하고 종전선언은 비핵화의 출구라고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중국의 행보가 바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급기야는 문 정부를 ‘긴밀한 협력동반자’라고 부르며 대(항)미 파트너로 손짓을 보냈고 문 정부는 덥석 잡았다. 아니, 이전부터 묘한 관계가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북한 김정은 정권은 미 대선 이후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우리 정부만 너무나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썩, 실속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실속은 고사하고 고래 싸움에 새우 꼴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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