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0-05-11 10: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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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절(4·15, 김일성 생일)에 할아버지를 참배하지 않은 것을 시발로 한 ‘김정은 신변이상설’이 분분하다. 알려진 바와 같이 김정은은 지난 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 주재(보도는 12일)와 서부지구 항공사단 예하 추격습격기 연대 시찰을 마지막으로 보름이 넘도록 행적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가 단편적인 미확인 첩보와 나름의 논리로 사망설을 비롯해 위중설, 격리설, 휴양설 등을 전개하고 있다. 그야말로 설왕설래(說往說來)다. 한자에 噪(조)라는 글자가 있다. ‘뭇 새가 지저귀다(鳥羣鳴)’라는 뜻인데, 김정은 신변이상설과 관련해서 작금의 상황을 그야말로 절묘하게 묘사하고 있는 글자라 하겠다.
하지만, 어느 판단이나 분석도 정확하다고 할 수 없는 ‘경쟁 가설’(Competitive Hypothesis)의 난무는 오히려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이다. 여기에 (이상하리만치) 무대응으로 일관하는 북한 당국의 태도와 함께 ‘중국, 김정은 도울 의료전문가 북한 파견’ 등 일련의 보도도 이런 혼란에 일조를 하고 있다.
그러면 지금 김정은은 어떤 상태인가? 북한과 같은 폐쇄사회에서 발생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작업은 다음 두 가지 이유로 해서 매우 어렵다.
첫째, 정확한 분석에 필요한 신뢰성 있는 첩보가 절대 부족하거니와 설사 신뢰성이 높은 단편 첩보가 입수됐다 하더라도 설득력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는 후속 첩보가 드물다. 대표적인 사례가 김일성 사망(1994. 7. 8) 당시에 있었던 북한 특이 동향이다.
김일성 사망 직전, 심야의 악천 후 속에서 직승기(헬기)가 평양을 이륙했다. 하지만 ‘헬기 이륙’ 사실 만으로는 어느 누구도 ‘김일성 사망’과 직결시킬 수 없다. 아마 김일성 사망과 연계시키는 보고를 했다면, 심한 질책을 면키 어려웠을 것이다. 다만, 김일성 사망을 복기(復棋)하는 과정에서 헬기 이륙이 이와 연계됐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유사한 사례는 천안함 폭침 사건(2010. 3. 26)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시 한미 정보당국은 천안함 침몰 사건 2~3일 전에 북한의 소형 잠수함정이 기지를 이탈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지하다시피, 잠수함이 수중을 항행하는 동안은 이를 추적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바꿔말하면, 후속 첩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 잠수함의 기지 이탈을 천안함 폭침 기도’로 판단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이처럼 북한을 들여다보는 데는 강력한 설득 무기인 귀납적 방식을 적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이런 제약 때문에 ‘아마’(probably), ‘거의’ (almost)와 같은 확률적 용어를 동원해서 ‘불확실한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둘째, 이른바 소음(noise)이라고 불리는 역정보와 가짜 정보를 식별하기 어렵다. 가장 위대한 근대 조각가로 불리는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신이 대리석 속에 감춰둔 걸작을 드러내기 위해, 필요 없는 돌덩이(부분)를 떼어낼 뿐이다.”
정확한 분석과 판단을 하려면, 로댕의 언급처럼 불필요한 첩보(특히 오류를 유도하려고 의도적으로 조작된 정보)를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결코 용이한 작업이 아니다. 담당자의 오인과 편견, 조직 특성 등이 복합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을 보여준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86년 11월에 있었던 ‘김일성 사망설’ 오보이다.
미군 통신병이 북한 방송을 모니터하는 중에 무거운 분위기의 노래가 나오자 이를 장송곡으로 착각한 것으로 시작된 김일성 사망설은, 일본 공안조사청에 입수된 ‘김일성 피살, 암살자들은 중국으로 도주’ 첩보와 합쳐져 김일성 사망으로 공식화됐다. 하지만, 김일성이 11월 18일 몽골 인민혁명당 서기장을 영접하기 위해 순안국제공항에 나타나면서 오보로 판명됐다.
당시 전 세계 정보기관과 언론사 중에 김일성 사망에 대해 의문을 표한 기관은 국가정보원의 전신(前身)인 국가안전기획부로서, 대한민국 국가정보기관의 성가를 높인 계기가 된 사건이기도 했다.
최근 미국이 RC-12 정찰기를 비롯해 E-8C조인트스타즈 등 정찰자산을 동원해 대북정보수집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다. 아마도 과거의 대북정보 판단 실패 경험을 교훈 삼은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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