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성 존중은 평화와 안보의 근간”
  • 관리자
  • 2020-03-19 10: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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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세계적 대유행병(pandemic)으로 규정되면서 제43차 유엔 인권이사회도 추후 통지가 있을 때까지 중단된다고 발표했다. 오는 20일경 북한인권결의안 채택을 위한 투표절차가 예정돼 있었지만 이도 연기됐다. 공교롭게도 세계보건기구의 대유행병 선언이 나온 11일, 미국 국무부는 ‘2019년 인권실행에 관한 국가보고서(2019 Country Reports on Human Rights Practices)’를 내놓았다.

미국 국무부는 199개 국가, 즉 전 세계 모든 나라의 인권과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해 매년 보고하고 있다. 마이클 폼페이오(Michael R. Pompeo) 미국 국무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올해로 44년째 국가보고서를 발행하는 것이라며 “인권에 있어서 최적의 기준(gold standard)을 매년 설정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연례 인권보고서를 발행하는 것은 “더 높은 수준의 인권을 모든 나라 정부들이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킴으로써 평화와 (인권범죄에 대한) 책임규명, 안보를 증진시키기 위함이다”며 보고서 발행 의의를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세계인권선언과 기타 국제협약 내용에 기초해, 국제사회가 인지하는 개별적, 시민적, 정치적 권리와 노동권에 대해서 다뤘다. 이에 따라 북한보고서는 전체 7개 섹션으로 구성됐다. 첫째 인간의 품격(Integrity of the Person) 존중 부문, 둘째 시민적 자유 존중, 셋째 정치참여의 권리, 넷째 부정부패와 정부의 투명성 결여, 다섯째 인권유린에 대한 국제적 그리고 비정부적 조사에 대한 북한당국의 태도, 여섯째 차별 및 사회적 침해와 인신매매, 마지막으로 노동권이다. 일상 생활에서 모든 북한 주민들이 겪는 인권침해부터 정치범수용소 등 구금시설에서 자행되는 것으로 알려진 반인도범죄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류의 인권유린들을 다 포괄했다.

이 보고서는 2019년 한 해 발행된 북한인권 관련 문건과 보고서, 언론 기사들을 총결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유엔 서울 인권사무소와 통일연구원을 포함해서, 휴먼라이츠워치 등 국내외 북한 인권 기구와 NGO들이 발행한 보고서, 그리고 데일리NK 등 북한 문제를 다루는 연론 보도 등을 종합했다.

2019년의 업데이트 부분을 살펴보면, 인간의 품격에 관한 첫째 섹션에서 여전히 공개처형이 현재 진행형이라고 설명했다. 2018년 6월 데일리NK가 보도한 인민무력성 후방국 검열국장 현주성의 공개처형 보도를 인용하며 ‘자의적 (arbitrary) 생명 박탈과 불법적 또는 정치적 의도의 살인’문제의 심각성에 주목했다. ‘감옥이나 구금시설 상태’에 있어서도 인간성을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2019 통일연구원 백서가 지적한 구금시설 내 영양 공급 상태, 위생, 의료지원 상황 등의 열악한 수준을 조명했다. 

또 수감 도중 사망한 사람들 대한 통계마저도 없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구금시설 내 수감자 수는 적게는 8만에서 12만 명에 달한다고 추측하는데, 2018년 휴먼라이츠워치가 폭로한 구금시설 내의 만연한 성폭력 문제도 언급했다. 이처럼 법적 영역 내에서도 ‘자의적’인 인권유린이 발생하는 데는 공정한 공개재판과 독립적 사법부의 부재, 그리고 예심과 재판 과정의 심각한 뇌물문제 등에 기인한다.

시민적 권리 섹션에서는 언론과 표현의 자유, 인터넷 자유, 학문적 자유와 문화적 행사 및 평화로운 집회와 결사의 자유, 이동의 자유 등이 박탈된다고 적시했다. 다소 긍정적인 변화로는 ‘이동의 자유’ 부문에서 도(道) 내에서는 과거보다는 자유롭게 이동하는 현상을 보이지만 뇌물로 법적 통제망을 우회할 때 해당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여전히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노동권 섹션에서 강제노동도 큰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 돌격대의 현대식 노예노동 구조는 물론이고 일반 노동자들의 국가적 과제에 대한 부담과 대규모 노력 동원 문제에 대해서 잘 설명했다. 2018년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이 밝힌 양강도 지역 600세대의 철거와 삼지연 아파트와 북부 철길 건설에 일반 주민들이 동원된 정황도 포함시켰다.

그 외에도 강제실종, 고문, 정치범수용소, 불법적 사생활 침해, 언론과 인터넷의 제한, 집회와 결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해, 종교의 자유에 대한 가혹한 제한, 광범위한 부정부패, 강제낙태 등 북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인권침해 전반을 기술했다. 주민 경제생활에서 뇌물을 이용해 다소의 여유 공간이 생긴 점을 제외하면 북한의 인권 실상은 실제로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는 오토 웜비어의 사망에 대한 북한 당국의 해명이 아직까지 없었다고 지적하며, 심각한 문제는 “북한 당국이 인권유린을 자행하는 공무원들을 기소하는 등의 신뢰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비판했다.

2019 국가별 연례보고서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미 국무부의 ‘민주주의 인권 노동국’ (DRL) 로버트 데스트로(Robert A. Destro) 차관은 본 보고서의 쓰임에 대해서 “이 보고서의 정보로 세계가 무엇을 할 것인가는 각자에 달려있다”라며, “세계가 모든 사람의 천부적 존엄성을 존중하게 되길 희망한다. 이것이야말로 지속적인 평화와 안보의 근간이다”고 강조했다. 즉 인권과 평화나 안보 문제는 분리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지난달 21일, 휴먼라이츠워치와 ICNK(북한반인도범죄국제연대)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공동서한을 보낸 바 있다. 전 세계 23개국에서 활동하는 300개 이상의 개별 단체들을 대표하는 69개 국제 인권단체들과 7명의 국제적 인권 명망가들의 협력과 지지를 받아서 공동서한이 작성됐다. 여기는 북한인권의 심각성에 지나치게 무감한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한 우려가 담겨있다.

문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동서한을 통해 국제사회는 “한반도의 안보와 관련하여 장기적인 해결책을 얻기 위해서는 북한의 억압적인 인권상황에 대해 북한 당국이 근본적이며 포괄적인 개혁에 착수하도록 압력을 가할 필요”있으며 “인권 문제를 바로잡는 것만이 장기적인 평화와 번영에 도달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소개한 미 국무부 데스트로 차관의 강조점과 다르지 않다. 

이 주장은 남북 간 대화 재개를 명목으로 잔혹한 인권유린에 대해 눈감아 주는 정책으로는 다른 어떤 안건을 다루는 대북 정책에도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문제 인식에서 나왔다. 이 핵심적인 원칙과 가치가 빠진 대북 정책은 북한 당국이 원하는 대로 휘둘리기만 할 뿐 장기적인 진전이나 근본적인 개선을 만들어 내는 데 한계가 있다.

코로나19 사태가 몇 개월이 더 걸릴지는 몰라도 인간의 면역력과 과학기술의 발달은 코로나 바이러스를 이길 것이다. 그러면 43차 인권이사회에서 북한인권 결의안 채택 절차를 밟게 될 것이고, 또다시 국제 인권계가 문재인 정부의 결정에 주목할 것이다. 한국 정부가 북한인권 결의안의 공동제안국에 다시 들어감으로써, 미 국무부 인권보고서의 취지인 ‘최적의 기준(golden standard)’을 북한인권에도 적용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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