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주기식」 대북 지원 정책의 문제점
  • 관리자
  • 2021-08-31 06:4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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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북한 조선중앙TV는 “이달 초 함경남도에 쏟아진 비로 농지 수백 ha가 매몰되거나 유실되고 주택 1,170여 채가 파괴, 침수됐으며 주민 5,000명이 긴급 대피했다”라고 보도했다. 한편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도 최근 위성사진을 통해 북한 홍수 피해를 분석한 결과, 지난 1일부터 계속된 폭우로 함경남도와 함경북도 19개 시·군·구역의 피해 상황은 농경지 피해 약 3,820ha, 침수 면적 약 2,190ha로 집계됐으며, 수재민은 약 1,350명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노동신문 사설(8.9)은 “사상 초유의 세계적인 보건 위기와 장기적인 봉쇄, 재해성 이상기후 현상으로 인한 곤란과 애로는 전쟁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의 고비이며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난관” 등으로 현재의 어려움을 강조했다. 김정은이 지난달 열린 전국 노병대회에서 코로나19와 대북 제재로 인한 어려움을 “전쟁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이라고 했는데, 여기에 자연재해까지 겹쳐 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 수해 피해 상황이 알려지자, 유엔과 유럽연합 등 국제사회는 북한 수해 복구를 위한 인도적 지원에 나설 의사가 있음을 비쳤다. 우리 정부도 당국과 민간,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인도 협력에 나설 방침을 비쳤다. 그러면서 -마치 대북 지원 기회가 마련되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북한 취약 계층을 돕는 민간단체들의 인도 협력 사업에 남북협력기금에서 약 100억 원을 지원하는 방안을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에서 심의하기로 했다. 8월 12일 개최 예정이었던 ‘교추협’ 회의는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을 시비하면서 통신연락망에 불응함으로써 연기된 상태이다.(다만, 연합훈련이 종료됨에 따라 북한은 조만간 ‘그야말로 슬그머니’ 통신선을 회복할 가능성이 있음)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동포애적, 인도적 견지에서 지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떤 이설이나 반론도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퍼주기’식의 대북 지원은 다음 몇 가지 이유로 해서 한반도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최근 북한의 경제난은 일과성 요인에 의한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김일성으로부터 3대째 이어지고 있는 세습통치 부작용의 적분이라는 것이다.

국정원은 지난 8월 3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1인당 소득은 한국이 3만1,880달러, 북한이 1,169달러이며, 총소득은 대한민국이 1조6,507억 달러, 북한이 297억 달러로서, 1인당 GDP는 한국의 1/27, 총 GDP는 1/56 규모’라고 분석했다. 광복과 더불어 지구촌 최빈국의 하나로 거의 동일선상에서 출발한 남북이 한쪽은 ‘교역량 10위 내외의 경제 대국’으로 부상하고, 또 다른 한쪽은 ‘여전히 세계 최빈국’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처럼 비교 자체가 무색할 정도로 북한 경제가 붕괴한 원인은 김일성으로부터 3대째 세습되고 있는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력갱생’이라는 미명 아래 8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는 「폐쇄 정책」에 기인한 것이다.

한편 주민 생존과 직결되는 식량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국정원 보고에 따르면, “북한 식량은 1년 수요량인 548만t 대비 100여 만t이 부족한 상황”으로 “김정은은 금년도 곡물 부족 상황이 악화하자 전시 비축미 2호를 절량세대(絶糧世帶)를 비롯해 지방에 있는 기관·기업소 근로자까지 공급했다”라고 하는데, 이는 전시 비축미를 방출해야 할 정도로 식량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할 것이다.

김일성은 1962년 제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모두가 이밥(흰쌀밥)에 고깃국을 먹으며 기와집에서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김일성의 공언은 반세기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기까지 공허한 구호로만 남아있다. 오히려 2대 김정일 시기에는 수백만의 주민이 아사한 것으로 알려진 고난의 행군을 겪었고, 3대 김정은에 이르러서도 “다시는 인민의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라던 호언과 달리 또다시 ‘제2의 고난의 행군’을 운운하는 등 북한 주민의 의식주 사정은 악화일로에 있다.

이처럼 북한의 심각한 경제 상황과 식량 부족 현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 ‘위대한 지도자’ 가문이 3대에 걸쳐 통치하는 동안 생긴 고질(痼疾)이다. 그런데도 북한 당국은 최근의 어려운 사정의 원인을 대북 제재, 코로나19, 자연재해 등 외부의 원인 탓으로 돌려 주민을 기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 제재는 국제사회의 우려와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강행하여 자초한 것이고, 코로나19와 폭우 피해를 ‘전쟁상황에 못지않은 시련’이라고 비유한 것은 북한의 체제 내구력이 그만큼 취약해졌음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해묵은 고질로 어려움을 겪는 북한 현실에서, 어려운 지경에 처할 때마다 건건이 지원하는 방식은 일시적으로 고통을 완화하는 대증요법(對症療法)일 뿐이다. 대북 지원을 통해 대화와 협력 모멘텀을 마련한다는 의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더라도, 이런 방식의 대북 접근은 ‘언 발에 오줌 누기’ 격으로 그 효과가 대단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바꿔 말하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은 북한 체제에 근본적인 변화(체제 개방, 지도자 선출 방식 변경 등)가 없는 한, 실현 불가능한 정책일 뿐이다. 이런 평가는 지난 4년간 현 정부가 공을 들인 대북정책 결과의 현주소를 보면 확실하게 증명되고 있다.

둘째, 일구이언(一口二言) 식의 대북 지원 정책은 신뢰성을 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정책 추진의 저의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26일 한국아동·인구·환경의원연맹과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이 공동주최한 ‘제로헝거 UN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두 번째 목표 혁신 정책회의’ 축사에서 코로나19와 기후변화로 식량 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같은 민족이자 동포이며 수해·코로나19·제재라는 3중고로 경제와 민생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북한 주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어린이와 노약자, 임산부, 산모 등의 영양상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도적 관심과 염려를 우리 정부 또한 잘 이해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내년 봄이라도 식량, 그리고 비료 등을 통해 적시에 남북이 협력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라며 대북 식량·비료 지원 의지를 밝혔다. 여기에 코로나19 방역 협력으로 시작되는 남북의 협력이 식량과 비료 등 민생협력으로 이어지고, 철도·도로 등 공공인프라 협력으로 다시 확장돼 나가기를 바라는 달콤한 희망까지 덧붙였다.

그는 이 같은 구상의 배경으로 “한반도의 긴 역사 속에서 남북 주민들은 하나가 돼 살아왔고 지금도 서로에게 연결돼있는 생명과 안전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생명·안전 공동체’라는 용어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지, 이 장관은 지난해 말(12.3) 열린 ‘생태대를 위한 PLZ(Peace & Life Zone) 포럼 2020’ 기조 강연을 비롯해 기회 있을 때마다 이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 인권에 대한 현 정부의 또 다른 접근을 보면 동포애적, 인도적 감정을 고조시키는 ‘생명·안전 공동체’라는 용어가 그저 수사(Rhetoric)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을 가지게 한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지난 3월 23일(현지시간) “북한에서 오랫동안 자행됐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제도적이며 광범위하고 중대한 인권 유린을 강력히 규탄”하면서 책임 규명을 촉구하는 북한 인권결의안을 표결 없이 컨센서스(합의)로 채택했다. 지난 2003년 이후 19년 연속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유럽연합이 주도한 이번 결의안의 공동제안국 명단에서 빠졌다. 한국은 2003년 유엔인권이사회가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한 이래 2018년까지 줄곧 이름을 올렸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2019년 이후 3년 연속 공동제안국에서 발을 뺐다. 외교부 당국자는 공동제안국 불참과 관련해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그렇게 입장을 정했다”라고 구차한 변명을 했다.

북한인권 문제에 관한 문재인 정부의 이중적인 태도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 주민들의 알권리와 우리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모두 제한한다는 점에서 위헌 소지가 다분’하여 「김여정 하명법」으로 비판받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일명 대북전단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또 미 국무부의 ‘2019 국가별 인권 보고서’를 야당의 지적을 받고서야 1년 만에 공개하기도 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는 북한 주민의 자유와 권리, 인권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식량 지원, 백신 지원 등 지엽말단적인 지원 문제에만 집착하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행태는 북한 주민의 진정한 인권개선보다는 경제난, 식량 부족으로 통치에 곤란을 겪는 김정은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김정은 바라기’ 정책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끝으로 김정은 자신이 ‘인도적 지원’을 포함해서 문재인 정부의 일방적인 구애 행위를 외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18일 방송에 출연해 “만약 남북이 치료제와 백신을 서로 협력할 수 있다면 북으로서는 코로나 방역 계로 인해 경제적인 희생을 감수했던 부분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본다”라며 “부족할 때 함께 나누는 것이 더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이 장관이 발언한 다음 날, 노동신문 사설(’20.11.19)을 통해 “없어도 살 수 있는 물자 때문에 국경 밖을 넘보다가 자식들을 죽이겠는가, 아니면 버텨 견디면서 자식들을 살리겠는가 하는 운명적인 선택 앞에 서 있다”라며 ‘외부 도움을 일체 받지 않겠다’라는 뜻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8월 수해로 국내외에서 대북 지원 목소리가 일었을 때에도, 김정은은 “큰물(홍수) 피해와 관련한 그 어떤 외부적 지원도 허용하지 말라”고 공개 지시했었다.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와 대한민국의 인도적 지원을 거부하는 것은, 어쭙잖은 지원을 받았다가 북한 내에 이른바 비사회주의 현상이 확산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바꿔 말하면, 김정은은 북한 주민이 안고 있는 고통을 완화하기보다는 자신의 절대권력을 유지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문재인 정부의 대북 지원 정책은 –김정은의 관점에서 볼 때- 전혀 고마워할 일이 아니며, 따라서 고려의 대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지원 위주의 대북정책은 △ 북한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보다는 응급처치에 불과한 데다 △ 지원의 수혜가 전체 주민이 아니라 김정은에게 돌아갈 뿐이며 △ 최종 수혜자인 김정은조차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는 문제점이 있다.

이런 문제점들로 인해 어떤 결과물도 수확하지 못할 것이 확실한 「퍼주기식」의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이유는 북한의 체제 특성(절대권력의 세습)과 목표(적화통일을 통한 체제 유지)에 대한 몰이해에서 시작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문 정부의 대북정책은 하수(下手)의 전형인 ‘일방적인 수읽기’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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