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1-02-01 0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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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중인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불똥이 튀고 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산업부 공무원이 삭제한 파일 목록에 북한 원전 건설과 남북 에너지 협력 관련 문건 파일 십수 개가 포함됐다는 보도 이후다.
이 보도는 검찰의 공소장을 토대로 북한 관련 파일의 개수와 파일명, 파일 생성일을 전했다. 파일의 숫자는 17개로, 동일한 이름의 중복 파일명을 고려하면 최소 13개였다. 생성 추정 날짜가 적힌 6개 파일은 제1차와 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이인 2018년 5월 2∼15일 기간에 작성됐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공소장에 적시된 내용이니 팩트일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는 대부분 추론 혹은 해석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파일들 안에 저장된 모든 문서의 구체적인 작성 시기와 목적, 내용 등을 알 길이 없으니 달랑 파일명에 의존해 그 안의 문서 내용을 짐작해 보는 게 국외자들이 할 수 있는 전부여서다. 이 파일들이 들어있는 상위 폴더의 이름이 핀란드어로 북쪽을 뜻하는 '뽀요이스'여서 보안에 신경 쓴 흔적이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식 주장까지 나오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월성 1호기 검찰 수사만 놓고 보면 '북한 원전' 관련 파일 삭제라는 곁가지 문제가 갑자기 본질 이상으로 부각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정황 논리와 정치 환경적 요인이 결합해서 일 것이다. 일단 산업부 공무원의 심야 파일 삭제 행위가 논란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산업부는 삭제 문건이 남북경협 활성화에 대비해 아이디어 차원에서 검토한 내부자료라고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문건이 실제로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단순검토였다면 과연 삭제할 필요까지 있었느냐는 원초적인 의문에는 미흡한 답변이다.
애초 감사원 감사의 대상이 아니기도 했다. 여기에는 뭔가 구린 데가 있어서일 테고, 그래서 압수수색 시 들통날 게 걱정되어서 내친김에 삭제했다는 정치권 일각의 의구심을 해소할 좀 더 명쾌한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통일부는 2018년 이후 남북협력사업으로 북한지역에 원전 건설을 추진한 사례가 없다고 했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낸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도 문재인 정부에서 열린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교류 협력사업 어디에서도 북한 원전 건설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결국 '아이디어로 검토했으되 실행하지는 않았다'는 정도의 결론이 현 단계에서는 사안의 본질에 근접한 판단인 것 같다. 어느 정부이든 정책추진을 위한 기초 단계에서 검토보고서를 작성하기 마련이라는 생각에 미친다면 이번 '북한 원전' 논란의 성격을 섣불리 재단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국내 탈원전 정책에 시동을 걸던 시점에 정부가 과거 실패로 끝난 대북 경수로 건설을 연상시키는 방안을 어떤 이유와 배경에서 검토했는지에 대해선 납득가는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정치권은 마치 벌집 쑤셔놓은 듯하다. 국민의힘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의혹 제기와 거친 비판이 불을 댕겼다. 그는 우리의 원전은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것은 충격적인 이적행위라고 비난했다. 북한 원전 건설을 기정사실화한 전제 위에서 최근에는 좀처럼 듣기도 힘든 '이적행위'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그러자 청와대는 북풍 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이례적으로 빠르고 강하게 반박하면서 법적 대응까지 언급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도 가세해 보궐선거 때문에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느냐고 견제했다.
이적행위, 북풍, 선거라는 단어가 겹치면서 과거 우리 선거판을 흔들어놓기 일쑤였던 시대착오적인 이념논쟁이 다시 고개를 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사실과 주장이 혼재하는 가운데 정치적 프레임이 득달같이 작동하면 자칫 국론분열로 이어질 수 있다.
막바지로 치닫는 월성 1호기 관련 검찰수사를 지켜보면서 실체적 진실에 더 다가설 때까지 정치권이 도 넘는 공방을 자제해야 하는 이유다. 검찰수사가 '북한 원전' 파일 삭제 문제에 대한 속 시원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다면 더 이상의 소모적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문재인 대통령이 대국민 설명을 하는 것도 최종적인 방법으로 검토할만하다.
남북이 걸린 문제는 정치적 공방으로 무한정 소비될 가벼운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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