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0-10-05 07: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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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 기조연설을 했다. 연설 중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동북아시아 방역·보건 협력체를 제안했다. 이것이 이후 동북아 안보협력체로 전환될 것이며 다자적 협력체야말로 북한이 안보 보장을 받는 토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재의 북미 양자 회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드러낸 언중유골이다. 더 나아가 북한의 선 비핵화 조건 없이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들었다. 종전선언이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말이다. 선 비핵화를 내세우는 미국과 거리를 두는 모양새다. 동북아 안보협력체 방안도 결국, 미국의 주도권 상실과 더불어 중국의 부상을 의미한다. 과거 6자회담 당시로의 회귀 말이다.
이번 유엔기조연설은 미 트럼프 정부에 대한 신뢰를 거두는 성격이 강하다. 지난 2일,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한미동맹을 군사동맹, 냉전동맹으로 규정하며 평화동맹으로 전환을 모색할 때라고 한 것과 결을 같이 한다. 즉, 동북아 안보협력체를 통해서만이 평화동맹이 구축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곧, 북한 체제(정권)유지 및 동북아 평화의 걸림돌이 미국이라는 뉘앙스가 짙다. 그러잖아도 흔들리는 한미동맹을 좌초시킬 수 있는 위험한 수위의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우리의 국방력이 한미동맹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절대 과언이 아니다. 23일, 문 대통령의 기조연설 다음날 우리의 주목을 끈 것이 박한기 합참의장의 퇴임사였다. 재임 2년 어간에 북한의 도발이 17차례나 있었고 33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고 그는 술회하였다. 한미동맹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그가 퇴임사를 이렇게 갈무리했다.
“한반도 평화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평화에는 강한 힘이 필요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흔들리는 땅 위에 건물을 지을 수 없듯, 국방이 흔들리면 ‘대화’도 ‘평화’도 설 자리가 없다”고 강조하였다. 문재인의 종전선언 촉구에 대한 일침이 아닐 수 없다. 한미동맹을 흔들면서 동북아 평화를 실현할 수 없다는 강력한 역설이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촉구를 과거 문정인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의 발언과 연결시키면 그 충격은 더욱 커진다. 2년 전인 2018년 2월, 미국 워싱턴 한 강연장에서 문 특보는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에게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한다고 했다. 2달 뒤인 4월에는 미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에서는 “한반도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주한미군 주둔을 정당화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논란이 커지자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로,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단언했었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동북아 안보 협력체 방안은 평화협정 체결과는 상관없이 한미동맹을 흔드는 것이고 주한 미군 철수로 귀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사실, 한미동맹은 상당히 불안한 상황에까지 다다랐다.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지난 10일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을 만나 한미 간 국장급 협의체인 ‘동맹대화’를 추진했다. 2015년 양국 외교, 국방장관 간 2+2회의가 국장급으로 낮춰진 것이다. 지난 5년간 양국 2+2 장관급 회담은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었다.
한 외교전문가는 ‘동맹대화’라는 용어 자체에서 동맹의 불안감을 엿볼 수 있다고도 하였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발언이 미 정가를 술렁이게 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 미리 비밀리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종전선언에 대한 내용을 조율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16일~20일)했다는 뒷얘기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이번에 종전선언 카드를 꺼내기에 앞서, 지난 6·15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하여 범여권 173명의 국회의원들이 ‘한반도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을 발의했다. 대표 발의한 김경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종전선언을 비핵화 상응조치 넘어선 평화로의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제시했다. 그러면서, 당 차원에서 미 하원의원들에게 ‘한국전쟁 종전선언 결의안’ 서명을 받고 있다고 했다.
여섯 번째 결의안인 ‘종전선언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 동참 등을 촉구’를 전방위적으로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이런 것을 볼 때, 이번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촉구 발언은 나름대로 밑밥이 깔렸다는 판단하에 결행된 것이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대로 미국 정가는 상당히 회의론적이다. 미 국무부도 북한의 비핵화가 선결조건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하고 있다.
북한은 6·15 공동선언 이후에 ‘종전선언’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았다. 지난 6월 26일자 노동신문에는 “정전은 평화가 아니다 이 땅에 제국주의와 계급적 원쑤들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절대로 해이될 수 없다”라고 밝혔는데, 이는 종전선언과 그 궤를 같이한다.
여기서 평화를 제국주의가 물러가는 것으로 상정한 것을 보면, 며칠 전, 마이클 그린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부소장의 견해가 맞는 것 같다. 그는 미국의 소리(VOA) 방송에서 “종전선언은 중국, 러시아, 북한이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구실만 줄 뿐”이라고 단언했다.
북한은 작년부터, 김정은을 평화의 수호자라고 칭하면서 평화의 개념을 남조선 해방이라고 설정하고 있다. 남조선을 해방시켜야만 진정한 평화가 도래한다고 굳게 믿고 있는 북한이다. 노동신문은 지난 7월 28일자에 이와 맥을 같이하는 김정은의 연설문을 올렸다. 전승절(7·27) 67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제6차 전국로병대회에서의 연설내용이다. “전승절을 뜻깊게 경축하는 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불멸의 전승업적을 길이 빛내이며 조국해방전쟁에서 우리 군대와 인민이 발휘한 영웅적 투쟁정신으로 새 세대들을 무장시키고 그 정신을 대를 이어 계승해나가도록 하는 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북한은 휴전협정일인 7월 27일을 전승절이라고 부르며 매년 거국적 행사를 치렀다. 올해는 코로나 위기 상황인데도, 축보를 터트리며 행사를 진행했다. 여기서 ‘그 정신을 대를 이어 계승해나가도록’이라는 말은 조국해방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해준다.
종전선언은 하나의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 그 다음 단계가 평화협정체결이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복잡하고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 당사국들이 상호 합의해야 할 사안 중 그 첫 번째가 6·25전쟁 발발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북한은 6·25의 책임을 미국과 한국에 떠넘기고 있다.
노동신문은 6월 25일자에 “침략자가 전쟁의 불을 지른 6월 전쟁이 시작된 바로 그 6월에…”라고 했고, “한 세대는 70년 전 불타는 고지에서 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전승을 안아온 세대라면…”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이것은 여전히 6·25 전쟁 책임을 한미에게 철저히 전가시키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주목해야 하는가.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지난 9월 9일 북한정권 수립일을 맞이해서 김정은에게 축전을 보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중조(북중) 관계발전을 고도로 중시하고 있으며 위원장 동지와 함께 전통적인 중조친선협조관계가 끊임없이 새로운 성과를 이룩하도록 추동함으로써 두 나라와 두 나라 인민들에게 보다 큰 행복을 마련해주며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촉진시켜나갈 용의가 있습니다.” 여기서 그는 (동북아) 지역의 평화와 안정, 번영의 촉진자 역할을 하겠다고 분명한 의사를 밝혔다.
김정은도 14일에 시진핑의 축전에 다음과 같이 답전을 보냈다. “총서기 동지와 굳게 손잡고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빛내기 위한 공동의 투쟁에서 두 당, 두 나라 인민의 귀중한 재부이며 전략적 선택인 조중(북중)친선을 보다 새로운 높은 단계로 강화·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화답을 하였다.
이것이 무엇인가. 동북아의 주도권을 다시금 중국에게 내주겠다는 사인 아니겠는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때를 같이하여 문 대통령도 같은 제스처를 취한 것이다. 어느 때 보다, 미중 간의 패권전쟁이 치열한 이때에 중국의 등에 올라타겠다는 사인을 노골적으로 한 것이다. 미국의 대응에 따라 한국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 정교진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교수)
출처 :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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