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0-08-04 11: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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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한 달 전만 하더라도, 김정은의 신병이상설, 사망설, 가짜 김정은설, 리더십 교체설, 김여정 2인자설 등 세간을 참 시끄럽게 했다. 현재도 김정은의 리더십 위기 및 리더십 공백을 점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며칠 전에 김정은의 평양종합병원 시찰를 두고도 리더십 위기 극복차원이며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10·10)까지 병원이 완공되지 않으면 그의 리더십에 타격이 될 것이라는 전망들을 쏟아냈다. 김정은에 대한 리더십의 위기, 리더십 불안정, 리더십 공백을 너무나 쉽게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요즘이다. 과연, 김정은의 리더십에 변수가 일어난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필자가 볼 때는 아니다. 오히려 그의 리더십은 더욱 강고해졌다.
김정은은 지난해 12월 28일 개최된 당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야심 차게 2020년을 ‘정면돌파의 해’로 슬로건을 내세우며 대미·대남 강경대응으로 돌아섰다. 이 같은 배경에는 중국이라는 믿을만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변수가 생겼다. 올해 2월부터 코로나19 사태가 북한을 강타한 것이다. 김정은은 부랴부랴 북중국경 폐쇄를 명했고 중국인 관광객들마저 전면통제시켰다. 휘청거리던 북한경제는 급기야 파산 직전에 이르렀다.
이후, 김정은은 두문불출했고 4·15 김일성 시신 참배마저도 불참했다. 이후부터 김정은 신병 이상설이 터졌고 잠행을 거듭할 때마다 김정은의 리더십의 위기가 줄곧 제기돼오고 있다.
급기야, 별안간 대북전단 문제를 들고나오며 대남비난 성명을 앙칼지게 하는 김여정과 그 이후 계속되는 그의 거침없는 행보에 제2인자 설, 리더십 교체설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6월 23일 당중앙군사위를 소집한 김정은이 대남군사행동 보류를 지시하면서 하나의 해프닝으로 끝났다.
2019년 7월 8일 김일성 사망 25주기를 맞아 북한 주민들이 평양 만수대 언덕의 김일성·김정일 동상을 찾아 헌화하고 있는 모습. /사진=노동신문 캡처
북한 지도자 최고의 상징성, ‘수령’
김정은이 보류지시를 하기 전, 노동신문 기사 내용에는 그의 위상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단초가 제공되었다. 바로 ‘수령결사옹위’의 직접적인 대상이 김정은이 된 것이다. 쉽게 말해, 김정은에게 수령의 이미지가 구축된 것이다.
필자가 김정은의 지도자상징 연구에 집중하면서 언제 김정은에게 ‘수령의 이미지’가 구축되는가를 주목했다. 비록, 북한이 ‘수령제’ 사회이지만 6월 이전까지만 해도 김정은과 수령의 상징성은 별로 상관이 없었다. 수령 상징성은 김일성의 고유영역이었다. 물론, 김정일도 사망 이후 ‘영원한 수령’으로 추대받은 바 있다.
하지만, 그이 이름 앞뒤에 수령이 직접 수식어로 붙지 않았다. 우리 생각으로는 ‘김정일 수령’ ‘수령 김정일’이라는 용어가 매우 흔할 것 같지만, 북한 당문건, 정치문건들을 비롯한 주요 언론매체(조선중앙통신, 노동신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용어이다.
김정일과 수령상징이 연결될 때는 반드시 김일성과 함께 지칭될 때뿐이었다. ‘선대 수령님들’, ‘위대한 수령님들’이 그 대표적인 표현이다. 김정일도 이러할진대, 김정은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김정은과 수령상징은 무관했었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수령이 북한 지도자 최고의 상징성이라고 제시해 왔다. ‘어버이’, ‘태양’ 등과 같은 지도자상징들도 있지만 수령이말로 상징성의 최고봉인 것이다.
물론, 대다수의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수령제’이기에 현재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을 곧바로 수령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 대로, 북한 공식문헌 및 언론매체들을 보면 오직 김일성에게만 수령용어가 붙는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북한 내부에서 철저히 지켜지는 하나는 룰(rule)이다. 그런데, 지난달 6월부터 그 룰의 변화가 감지된 것이다.
6월부터 김정은 위상변화 감지
그 변화는 노동신문에서 감지되었다. 6월 11일자에 실린 ‘최고존엄은 우리 인민의 생명이며 정신적 기둥이다’라는 논설에서다. 이 글에는 특이하게도 ‘수령’ 용어가 12차례(수령옹위 포함)나 나온다. 내용 전체를 읽어보면 ‘수령’ 용어를 작심하고 의도적으로 사용한 느낌이 든다. 12차례 중, 10군데가 문맥상 ‘수령’이 김정은을 가리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2군데는 확실히 김일성-김정일을 가리킨다. 그 문장은 아래와 같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한생을 바쳐 키우신 영웅적인 우리 인민은 조국이 무엇이고 인간의 참된 삶이 어떤 것이며…”
나머지 10군데의 수령은 김정은을 가리킨다고 봐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그 문장들을 직접 가져와 봤다.
“이번에 사람값에도 들지 못하는 쓰레기들이 우리의 신성한 최고존엄, 우리 인민의 정신적기둥을 다쳐놓은것은 우리 인민을 우습게 여기고 롱락한 것이다.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의 존엄을 지켜싸우는 인민의 보복열기가 어떤 것인지, 최고존엄을 건드린 추악한 행동으로 차례질 징벌의 불벼락이 어떤 것인지 이제 적들은 똑바로 보게 될 것이다.”
누가 봐도 ‘자기 수령’은 김정은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 문장 다음에는 아래 문장이 나온다.
“우리 인민은 수령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심과 결사옹위정신을 만장약한 충직한 인민이다.”
수령, 결사옹위정신 둘 다 김정은과 연결되는 용어이다. 연이어 다음 문장들이 나온다.
“수령옹위는 우리 인민의 사상정신적 특질의 근본핵이다. 수령에 대한 충성을 의무이기 전에 삶의 요구, 량심과 의리로 여기고 그 어떤 천지풍파가 휘몰아쳐와도 자기 수령을 온넋과 심장을 바쳐 따르는 인민은 이 세상에 오직 우리 인민밖에 없다.”
“청춘도 생명도 수령의 안녕과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며 수령의 절대적 권위를 보위하는 길에서 한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려는 것이 우리 인민의 확고부동한 신조이다.
풍랑사나운 망망대해에서도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초상화를 목숨바쳐 결사보위한 불굴의 인간들, 한가지 일을 해도 수령옹위를 첫자리에 놓고 사색하고 실천하며 수령의 구상과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십 년을 일 년으로, 일 년을 한 달로 주름잡으며 내달리는 고결한 정신세계를 지닌 우리 인민이다. 우리의 일심단결이 그 어떤 힘으로도 깨뜨릴 수 없고 그 어떤 원쑤도 당해낼수 없는 불패의 단결로 되고있는 것은 수령결사옹위정신에 기초한 단결이기 때문이다.”
위 문장들에서 확인한 것처럼, 수령, 수령옹위, 수령결사옹위 용어들이 김정은을 직접 가리키는 것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른다. 이 논설이 나오기 전에도 직접 김정은을 수령으로 지칭하지 않았지만 위 문장들과 유사하게 ‘수령’ 용어가 김정은을 가리키는 것이 충분히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물론, 필자도 그 점을 깊이 유념했다. 그래서, 수령용어가 들어간 이전 기사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위의 논설이 나오기 2일 전인 6월 9일자 노동신문 ‘무자비한 징벌, 이것이 분노한 인민의 대답이다’에서는 김정은을 분명히 ‘당중앙’으로 지칭하고 ‘당중앙결사옹위’라고 표현했다.
“당중앙을 옹위하여 총 폭탄이 될 신념을 만장약한 총쥔 병사들, 수백만 청년들 아니 전민이 무장하고 전국이 요새화된 금성철벽의 나라 조선이 분노로 치떨며 활화산같이 끓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이 기사에서 김정은을 수령으로 연결시킬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점이다.
“온 나라에 차넘치는 오늘 같은 신념과 투지는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백두의 천출위인 경애하는 원수님을 목숨바쳐 충성으로 받들려는 우리 천만군민의 앙양된 사상감정, 불타는 각오와 기개의 분출이다.”
‘위대한 수령님들 그대로이신 백두의 천출위인 경애하는 원수님’이라는 이 문구는 김정은을 ‘현재의 수령’으로 인식할 수 있게끔 유도해준다. 그럼에도, 김정은을 ‘수령결사옹위’의 대상으로 하지 않고 ‘당중앙결사옹위’로 적시하고 있다.
이 기사보다 앞서서 ‘수령’, ‘수령옹위’, ‘수령결사옹위’ 용어가 나오는 노동신문의 기사내용을 검토해 보았을 때 직접적으로 김정은을 연상시키는 문장들이나 문구는 나오지 않았다. 6월 3일자, ‘온 나라를 미덕미풍의 대화원으로 가꾸시여’ 기사에서도 수령결사옹위의 대상은 김일성-김정일에 국한되었다. 아래 문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뜻밖에 조성된 위험으로 배가 침몰되는 위급한 시각에도 어버이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안전하게 모시고 38시간이나 날바다에서 표류하면서도 목숨처럼 보위한 김명호동무, 수령결사옹위정신을 온넋으로 체질화한 그의 숭고한 사상정신세계는 수령에 대한 충성이 가풍으로, 국풍으로 되고 있는 우리 조국에서만 형성되고 공고화될 수 있는 고귀한 충성의 세계인 것이다.”
지난 6월에 ‘수령결사옹위’ 용어가 들어간 기사 및 논설은 약 20개였다. 그 전달인 5월은 5개였다. 이들 중 ‘수령결사옹위’의 대상으로 김정은을 가리키는 기사는 없었다.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 소백수의 용용한 흐름은 백두산정신의 근본핵은 수령결사옹위임을 빨찌산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로 페부에 새겨준다.” (노동신문 ‘명줄’, 5.25)
“조국해방전쟁의 가렬한 불길 속에서 우리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이 발휘한 수령결사옹위정신과 조국수호정신, 대중적영웅주의는 조국의 부강번영과 주체혁명위업의 승리를 위한 우리의 투쟁에서 더없이 귀중한 사상정신적재부로 됩니다.”(‘위대한 년대의 승리자들에 대한 숭고한 도덕의리심을 안고’, 5.14)
“사람들은 아마 지난해 11월 당보에 실렸던 기사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광란하는 날바다우에서 수령결사옹위의 억센 의지를 보여준 무역짐배 《장진강》호 기관장 김명호동무에 대한 이야기. 보통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포와 절망감에 몸부림칠 상황이였지만 홀로 풍랑에 떠밀리우면서도 《어디에 계십니까 그리운 장군님》의 노래를 심장으로 부르며 결사의 의지로 위대한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정중히 모시고 끝까지 보위한 영웅적소행은 그야말로 절해고도에서 검증된 충실성이였다.” (‘충성의 한길로 가고가리라’, 5.9)
그 전에, 4월(10곳), 3월(8곳), 2월(24곳), 1월(12곳)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7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건조한 잠수함을 시찰한 장면에서 다른 간부들이 김 위원장의 말을 받아적고 있다. /사진=노동신문
김정은의 수령 이미지, ‘인간적 풍모’에서 ‘신격화’로 회귀
사실, 2019년 초에도 김정은을 수령으로 연결시키는 작업들이 있었다. 당시는 김정은의 지시로 수령이 신비화되고 신격화된 이미지(풍모)보다 매우 인간적인 이미지로 인민들이 아주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동지적 개념의 성격으로 전환됐었다. 작년 3월 6일 개최된 제2차 ‘전국당초급선전일꾼대회’ 참가자들에게 김정은이 보낸 서한 ‘참신한 선전선동으로 혁명의 전진동력을 배가해나가자’에는 ‘수령’에 대해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있었다(2019. 3.9일 노동신문)
“위대성교양에서 중요한 것은 수령은 인민과 동떨어져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인민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는 인민의 령도자라는 데 대하여 깊이 인식시키는 것입니다. 만일 위대성을 부각시킨다고 하면서 수령의 혁명활동과 풍모를 신비화하면 진실을 가리우게 됩니다. 수령은 인간과 생활을 열렬히 사랑하는 위대한 인간이고 숭고한 뜻과 정으로 인민들을 이끄는 위대한 동지입니다. 수령에게 인간적으로, 동지적으로 매혹될 때 절대적인 충실성이 우러나오는 것입니다. 수령의 사상리론도 인민들을 존엄높이 잘살게 하기 위한 인민적인 혁명학설이고 수령의 령도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 그 힘을 발동시키는 인민적령도이며 수령의 풍모도 인민을 끝없이 사랑하고 인민에게 멸사복무하는 인민적 풍모라는 것을 원리적으로, 생활적으로 알게 하여야 합니다. 한마디로 위대성교양의 내용을 우리 당의 인민대중제일주의로 관통시켜야 합니다.”
이 내용은 가히 혁명적인 것으로 김정은이 수령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린 것이다. 두 가지 상반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나는 우상화(신격화) 배격이다. 다른 하나는 수령의 자리 낮춤이다. 김정은에 입장에서는 둘 다 절실하다. 북한의 현실 정치 속에서 김정은 신격화 작업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방법은 수령의 자리를 좀 더 아래로 끌어내리는 것이다. 당시에도 필자는 김정은이 곧 수령으로 등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왜 그렇지 않았는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당시만 해도 비록, 북미 제2차 정상회담이 불발에 그쳤지만 대미협상노력은 지속되던 때였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정면돌파라는 강력한 대응정책으로 나가고 있다.
대북 제재가 전혀 풀리지 않은 가운데,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김정은은 내부동요를 막고 강력한 내부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선악과’의 위치에 있다는 것을 북한 인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했다. 북한식 말로는 ‘최고존엄’이다. 북한에서의 최고존엄의 대상은 바로 ‘수령’이다.
‘수령결사옹위’가 바로 그 증거다. 김정은이 수령으로 등극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즉, 이것이야말로 내부통제의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 현상을 외부로부터 찾았고 그것이 대북 전단 살포였다.
김여정의 비난 성명 이후 북한 전역에서의 대대적인 시위는 김정은이 수령으로 등극하는 데 필요한 수순이었다. 문제는 ‘인간적 풍모’로 전환되었던 수령의 이미지가 다시금 ‘신비화’ ‘신격화’ 이미지로 회귀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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