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한마디에 날아간 기업 재산 2조… 北의 ‘민족공조’는 허상
  • 북민위
  • 2022-09-05 06:5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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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아난티 골프장의 마지막 홀은 주말 골퍼들에게는 꿈의 홀이었다. 그린에 공을 올리기만 하면 자동으로 홀로 굴러 내려가는 깔대기 구조였다. 하지만 남측 골퍼들이 깔대기 홀에 공을 올려 마지막 버디를 기대하는 장면은 물 건너갔다. 북한이 금강산에 있는 남측 시설인 아난티 골프장(18홀)과 리조트(96실) 단지를 모두 철거했다고 미국의 소리(VOA) 방송이 위성사진을 근거로 최근 보도했다.

건설 당시 골퍼들에게 기대를 모았던 골프장과 리조트는 국내 리조트 기업 아난티가 850억원을 투자해서 건설했다. 2008년 오픈을 앞두고 박왕자씨 피격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돼 정식 개장하지 못했다. 2000년에 개장한 해금강호텔 등 7800억원이 투입된 현대아산의 금강산 관광사업도 좌초됐다. 한국관광공사가 1000억원을 들여 건설한 문화회관·온천장은 물론 대한적십자사가 남북협력기금 540억원을 투입해 건설한 12층 규모의 이산가족면회소 등 21개 시설물도 철거 및 개조되었다. 패밀리마트 등 49개 중소 업체도 1933억원을 투자했으나 손실 처리할 수밖에 없다. 이외에 소방서, 도로 개설, 사업권 대가 등 부대 비용은 계산도 어렵다. 1998년 현대그룹과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간에 ‘합의서’가 체결되어 11월 해로 관광으로 시작된 금강산 관광은 우여곡절 끝에 완전 막을 내렸다. 당연히 2조원 상당의 적지 않은 투자금이 허공으로 날아갔다. 공산주의 이념을 간과하고 민족을 앞세운 비즈니스에 대한 비싼 수업료였다.

/그래픽=이철원
/그래픽=이철원

2019년 10월 김정은 위원장은 갑자기 눈 덮인 백두산에 백마를 타고 나타나더니 금강산으로 내려가서 폭탄선언을 했다. 김정은의 백마 탄 사진이 노동신문에 게재되자 전례 때문에 전문가들은 긴장했다. 북한의 관영 매체들은 김정은이 백두산에 오를 때마다 새로운 ‘전략적 노선들’이 제시되고 ‘세상을 놀래 우는 사변’들이 일어났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일주일 만에 드러난 백마의 결단은 금강산 시설 철거였다. 북한은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협 사업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의 결단’이라고 선전해 왔다. 하지만 김정은은 남북 경협의 상징인 금강산 사업에 대해 “잘못된 정책”이라고 혹평하면서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그는 “금강산에 대한 관광사업을 남측을 내세워 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 식으로 새로 건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은이 선대의 정책을 대남 의존적이라고 정면 비판한 것은 북한에서 이례적이다. 김정일이 합의한 사업을 아들이 단번에 엎어버렸다.

김정은의 지시 이후 20개월 만에 금강산은 원위치 되었다. 금강산은 기암괴석과 계절별로 변화하는 풍광은 특이하지만 산중턱 바위에 붉은 글씨로 ‘김정일 장군 만세’ 같은 정치 구호가 새겨져 있는 바위산으로 되돌아갔다. 금강산 관광 당시 멀리서 바라본 온정리 북한 주민 마을은 가난이 덕지덕지 붙은 모습 그대로였다. 그나마 현대아산과 관광공사 등에서 숙박 편의시설 등을 건설하여 최소한의 관광지 모습을 갖추었으나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에 대한 진상 규명도 북한의 사과도 없이 종료되었다.

남북 화해·협력의 상징이라던 관광사업도 김정은의 말 한마디에 문을 닫았다. 문을 닫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이제 다시는 관광사업에 거액을 투자할 기업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20여 년 만에 막을 내린 금강산 시설 철거의 교훈은 다음과 같다.

첫째, 남북 신뢰 구축은 물론 경제협력도 언제든지 무너질 수 있는 사상누각이라는 점을 각인시켜주었다. 아난티 측은 “금강산 사업이 종료돼 안타까운 마음도 있다. 하지만, 현재 보유 중인 전체 자산이 1조3000억원이 넘고, 운영 중이거나 새롭게 추진하는 플랫폼이 7개나 된다”며 “500억원 자산에 의해 브랜드 가치와 신뢰도가 지속적으로 손상되는 것보다는 깨끗하게 정리하고 미래에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대북 사업이 국내 및 해외 사업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전격 정리한 것이다. 향후 어느 기업이 북한에 투자할 것인지 불투명하다. 어떤 정부라도 왜곡된 정보를 기반으로 북한에 투자하도록 무리하게 기업들의 등을 떠미는 데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장밋빛 전망으로 기업들을 사지로 몰아넣어서는 안 된다.

둘째, 남북한 당국 간의 합의서라도 평양의 변심으로 일순간에 휴지 조각으로 변한다. 2003년 발효된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상사분쟁조정 및 청산결제 등 4대 경협 합의서는 국제 규범을 모방했지만 무용지물이 되었다. 경제협력이 정치적 화해를 가져온다는 유럽통합 방식의 기능주의(functionalism) 접근은 한계에 도달했다. 통일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의도가 무엇이든 우리 기업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일방적인 조처는 안 된다며 북측에 설명을 요구했으나 무응답이다.

셋째, 향후 금강산에는 남측을 대신할 투자 기업은 물론 관광객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의 금강산 현지 지도 뒤인 2019년 11월 “온 세상 사람들이 와 보고 싶어 하는 세계 제일의 명산은 명백히 북과 남의 공유물이 아니며, 북남 화해 협력의 상징적 장소도 아니다”며 “금강산을 우리 식으로 훌륭하게 개발할 것이고, 거기에 남조선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 식 개발’을 주장하지만 북한 경제는 금강산을 개발할 자금 여력이 없다.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 국제 기업은 더더욱 없다. 찾아올 관광객도 없다.

북한이 중국 관광객을 유치해서 금강산 관광을 활성화시키려는 전략은 착각이고 오판이다. 금강산은 한국인이 애호하는 명산일 뿐이다. 금강산에 무관심한 중국인들이 교통도 복잡한 지역까지 대규모 관광을 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 금강산의 고객은 남측 관광객 이외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금강산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이산가족면회소도 있었는데 북한이 이들 시설을 일방적으로 철거함에 따라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국제사회의 비난 대상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담대한 구상’을 밝히며 북한 비핵화에 당근을 제시하였다. 식량부터 금융까지 경제의 전 분야에 걸친 종합선물세트에 가까운 경제협력이다. 금강산 시설 철거는 북한의 비핵화 행동을 누가 담보하며 보장할 것인지 의문을 던진다. 민간기업과 약속한 관광사업조차 일방적인 철거로 계약을 파기하는 평양과 비핵화 논의를 추진하는 것은 참으로 지난한 과제다.

북측에 마지막 남은 우리 자산은 안동대마방직 등이 평양에 투자한 시설과 123개 기업이 개성공단에 건설한 공장들이다. 최근 개성공단 무단 가동과 자재 훼손 등이 위성사진을 통해 감지되고 있다. 남북 관계 최후의 보루인 개성공단 시설의 운명도 금강산 관광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투자한 기업인들은 노심초사한 모습이다. 2020년 300억원이 투자된 개성공단 남북공동연락사무소도 하루아침에 폭파되는 현실이니 걱정이 태산이다. 협상에서 입만 열면 큰소리치던 민족 공조는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평양은 답을 해야 한다. 김여정이 나서서 윤 대통령에 대해 인간 자체가 싫다는 등 인신공격만 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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