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 철수 작전의 진정한 영웅들
  • 관리자
  • 2022-03-24 07:2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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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J 러니는 미국 뉴욕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아버지와 가정주부 어머니 사이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아버지 영향을 받은 러니는 18세에 해군에 입대해 2차대전 막바지인 1945년 태평양전쟁에 투입됐다. 1950년 6월 대학을 졸업하고 로스쿨에 진학하려던 그는 다시 전장으로 나갔다. 그해 9월 미 해군 수송선을 타고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한 것이다.

그가 일등항해사로 근무한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선원 47명을 태운 화물선이었다. 승객은 12명까지 태울 수 있었고 적재량은 1만658t이었다. 1950년 12월 빅토리호가 전투기 연료를 비롯한 보급품을 싣고 함경남도 흥남에 도착했을 때, 미군은 장진호에서 극심한 추위와 싸우며 중공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미군은 10만 병력을 흥남에서 배편으로 철수시키기로 결정했다. 빅토리호의 임무는 미군 탱크와 트럭을 비롯한 군사 장비 철수였다.

그때 흥남부두에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가려는 북한 피란민들이 밀어닥쳤다. 그러나 미군에는 이들을 태울 군함이 없었다. 미군은 빅토리호의 레너드 러루 선장에게 피란민들을 화물칸에 태울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러루 선장은 즉각 군사 장비를 부두에 되부리고 피란민들을 태우기 시작했다. 빅토리호는 흥남 부두에 남은 마지막 배였다.

러니가 말한 그때 풍경이다. “피란민들을 하역용 팔레트에 태우고 크레인으로 들어올려 배 밑바닥부터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화물칸은 모두 세 층이었는데, 맨 밑바닥을 채우면 그 위를 강철 덮개로 덮고 또 화물을 채웠죠. 그러나 사람을 실었기 때문에 덮개를 약간 열어뒀습니다. 그래야 빛과 공기가 통하니까요. 화물칸엔 난방도 전기도 물도 음식도 없었고 기온은 영하 30도까지 떨어졌습니다. 그 와중에 아이가 다섯이나 태어났어요. 우리는 그 아이들을 ‘김치1′ ‘김치2′ 식으로 불렀습니다.”

승객 정원 12명이었던 빅토리호에 피란민이 1만4005명 탔다. 화물칸을 다 채우고 갑판도 가득 메웠다. 상선이었던 그 배엔 어뢰 탐지기도 없었고 함포도 없었다. 무기라곤 러루 선장이 허리에 찬 권총 한 자루뿐이었다. 중공군은 부두에서 불과 3~4㎞ 떨어진 곳까지 밀고 들어와 있었다. 빅토리호는 배 한 척이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구조한 사례로 기록됐다.

빅토리호는 그렇게 북한의 마지막 피란민을 태우고 부산으로 출발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러루 선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그렇게 작은 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싣고 그렇게 위험한 곳에서 아무도 다치지 않고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하느님이 그날 배의 키를 잡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는 2001년 87세로 별세했다.

그해 12월 흥남에서 열흘간 선박 193척이 군인 10만명과 피란민 9만8000명을 이남으로 실어 날랐다. 그 가운데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함남 함흥 출신인 아버지는 고교 졸업 직전 전쟁을 맞았다. 미군이 함흥에 진격한 지 얼마 안 돼 후퇴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는 국방군에 자원 입대하는 것만이 남한에 갈 유일한 방법임을 알았다.

태어나서 처음 집을 떠난다는 생각에 약간 들뜬 아버지는 부모님께 “석 달 뒤면 전쟁 끝난대요” 하고 집을 나섰다. 할머니는 이불 홑청을 뜯어 만든 목도리를 아버지 목에 감아주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아버지는 영영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남에서 아버지는 혈혈단신에 적수공권이었다. 아버지는 차돌 같은 사람이었다. 시장 바닥에서 20대를 보냈고 스스로 벌어 대학에 다녔다. 그리고 전쟁 전 이미 남쪽에 내려와 살던 역시 함남 출신 어머니를 만나 가정을 이루고 삼형제를 낳아 키웠다. 아버지가 흥남에서 떠나지 않았다면 어머니를 만날 기회는 영원히 없었을 것이다. 나의 DNA는 흥남 철수 작전에 전적으로 빚지고 있다.

로버트 러니는 해군 대령으로 전역한 뒤 훗날 소장으로 명예 진급했다. 그는 한미 친선 단체인 코리아소사이어티 인터뷰에서 말했다. “모두들 저를 흥남 철수 작전의 영웅으로 추켜올리지만 진정한 영웅은 북한 피란민들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찾기 위해 조상 대대로 수백 년간 살아온 터전과 자신들의 삶을 희생했습니다. 그들이 지금의 번영한 자유 대한민국을 만들었습니다.”

러니는 지난 10일 95세를 일기로 영면했다. 먼저 가신 아버지가 아마도 반갑게 그를 맞았을 것이다. 러니의 부고를 읽으며 1950년 스물세 살이었던 러니와 열여덟 살이었던 아버지를 생각해 본다. 이 흥남 철수 작전의 영웅들이 나의 기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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