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민위
- 2025-06-25 05:34:10
- 조회수 : 42
Ⅰ. 서론: 대북정책의 새 전환기에 선 대한민국
2025년 6월, 제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면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적 변곡점에 도달했다. 외교·안보 정책 전반에서 중요한 재조정이 요구되는 시점에서, 대북정책 역시 예외는 아니다. “안보는 튼튼하게, 평화는 확실하게”라는 선거 구호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은 전통적인 더불어민주당식 평화 협력 기조를 계승하면서도 안보 현실을 반영한 유연한 접근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특히 남북연락사무소 재설치, 남북 공동방역체계 구축, 이산가족 상봉, 남북 공동경제특구 추진 등 구체적 약속들은 남북 교류의 복원을 목표로 한 전략으로 읽힌다. 그러나 북한의 핵 개발 고도화, 우주·사이버 전력 강화, 북중러의 전략적 연대 강화 등 최근 국제 정세의 변화는 이러한 낭만적 접근만으로는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과거의 이상주의적 접근이 아닌, 실용과 전략을 겸비한 새로운 대북정책의 방향 설정이다. 본 칼럼은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 대북정책으로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지 제언하고자 한다.
Ⅱ. 본론: 실용주의 대북정책이 필요한 이유와 전략적 방향
1. 더불어민주당 대북정책의 이상과 현실 간 간극
더불어민주당은 오랫동안 ‘평화경제’ 구상을 중심으로 남북관계를 설계해 왔다. 문재인 정부 시기부터 이어진 이 정책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재가동,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핵심 과제로 삼았으며, 9·19 군사합의를 통해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 기대와 다르게 전개됐다.
북한은 9·19 군사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했으며, 핵무력 완성을 헌법에 명시하고, 정찰위성을 발사하고, 남측을 향한 도발 수위를 높여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대화와 교류를 제안하는 것은 오히려 전략적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과거처럼 ‘햇볕정책 계승’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는 것은 오늘날의 안보 환경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평화를 위해선 이상이 아니라 명확한 조건을 갖춘 협상이 필요하다.
2. 실용주의 대북정책이란 무엇인가
실용주의 대북정책은 비핵화라는 궁극적 목표를 포기하거나, 남북 화해를 단절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현실 기반의 전략적 수단이다. 이상이 방향이라면, 실용은 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속도와 에너지에 해당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다층적 전략이 필요하다.
첫째, 단기적 전략이 필요하다. 보건, 환경, 재해 등 비정치적 협력 분야부터 접점을 찾는 접근이 바람직하다. 예컨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남북 공동기구 설치나 방역 정보 교류 등은 상대적으로 정치적 민감성이 낮다. 이런 비정치적 협력을 통해 신뢰 재건의 초석을 다져야 한다.
둘째, 중기적 전략이 병행되어야 한다. 남북 문제를 한반도 내부 문제로만 보지 말고, 한미일 3각 협력 및 중국, 러시아의 전략적 이해관계까지 고려한 다자외교 구도를 짜야 한다. 이제 북핵 문제는 사실상 국제 이슈이므로, 대한민국이 외교적 중재자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중장기 평화 체제 구축에 도움이 된다.
셋째, 장기적 전략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종전선언이나 평화협정 체결 등 정치적 체제 변경을 위한 사전 조건으로, 북한의 실질적 비핵화 의지를 검증하고, 그에 따른 단계적 보상과 신뢰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물론 이 과정은 느리고 복잡하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용적 접근 없이는 영속적 평화가 불가능하다.
3. 정책 구조 개편의 필요성과 통일부 개혁 방향
이번 대선 기간에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통일부 폐지를 주장하며 “이념에 갇힌 통일부는 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 일정 부분 고개를 끄덕이는 국민이 많다. 실제로 통일부는 △외교부, 국정원, 국방부, 대통령 국가안보실 등 역할 혼선 발생 △대북정책 조율 기능 약화 △정권 교체 시마다 대북정책 방향 전환 △현실 정치, 국제정세 속에서 실질적 영향력 미약 등의 문제가 지적돼 왔다.
그러나 폐지가 해법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금 필요한 것은 통일부의 역할과 기능의 재정립이다. 통일부는 북한 인권 및 정보 분석, 북한 주민 정착 지원, 대북 정보 교류 창구 등의 실질적 기능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또한 외교부·국방부와의 협업을 제도화하는 통합 안보·통일 전략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통일부는 ‘이념 부처’가 아닌 ‘현실 협상과 행정 전문 부처’로 거듭나야 한다. 이에 다음과 같이 제언하는 바이다.
첫째, 전략 기획 중심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강화되어야 한다. 대북정책 전략실을 신설해 외교·안보·경제·인권 부문을 통합하는 전략본부로서 통일부 내 독립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전략실은 중장기 통일 시나리오 개발 및 단계별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전략적 정책 조정 기능을 확보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둘째, 대북 실용외교 및 국익 중심 협상 창구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 북측과의 실무 접촉, 교섭, 합의, 이행 관리를 전담하고, 외교부가 주도하는 다자외교와 분리해 남북 간 직접 통신 채널을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인도적 지원, 사회문화 교류 등 비정치 분야 협상도 전면적으로 담당해야 할 것이다.
셋째, 북한 인권 및 정착 지원 기능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북한인권정보센터’, ‘북한인권재단’ 등 외곽 조직과 연계하여 북한인권 기록 및 국제 공조를 연계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국내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심리·법률·고용 등 탈북민 생애주기 맞춤형 복지 체계를 구축하고 감독해야 한다.
넷째, 국민 공감 기반의 통일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기존의 통일교육을 넘어 MZ세대 대상의 통일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실감형 콘텐츠를 중심으로 홍보 체계를 정비하고, 남북한 출신 주민들이 함께하는 시민 외교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운영해야 한다.
4. 북한 인권과 억지력: 실용의 두 축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의 대북정책은 상대적으로 인권 의제가 약했다. 북한인권법은 입법되었지만 예산 집행이나 국제 공조는 지지부진했고, 북한 정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탈북민 송환이나 강제 북송 사건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실용주의 정책은 인권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체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장기 전략으로서 인권 개선을 병행해야 한다. 국제사회와의 연대, 유엔과의 협력, 탈북민 보호 및 정보 유입 확대 등은 ‘비정치적 사안’으로서 북한에 대한 압박 수단이자, 협상 카드가 될 수 있다.
동시에, 정밀한 억지 전략도 병행돼야 한다. 이는 단순한 군사력 증강이 아니라, 북한의 도발 패턴에 대한 면밀한 정보 분석, 유사시 즉각적 대응 능력, 사이버 및 우주 안보 태세 확보를 포함한다. 강한 안보는 평화 대화를 위한 바탕이다. 문재인 정부 시기 보여준 ‘군비 억제 없는 평화 구상’은 북한에 주도권을 뺏겨, 오히려 약점으로 인식되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Ⅲ. 결론: 이상은 방향, 실용은 속도다
이재명 정부의 대북정책이 진정한 ‘강한 평화’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과거 진보 정권이 범했던 이념 중심의 비현실적 기대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구호가 아닌 전략이고, 감정이 아닌 시스템이다. 이미 북한은 변했고, 세계도 변하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을 읽고 주도하려면 실용이라는 이름의 전략적 사고가 필수다.
실용주의 대북정책은 평화를 지향하되, 현실을 직시한다. 남북관계를 일방적 포용이나 일변도 억제 대신, 정교한 조건부 협력과 다층적 억지력의 균형 구조 속에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 이상은 방향을 제시하지만, 실용은 속도를 만든다. 이재명 정부가 보여줘야 할 것은, 바로 그 속도다.
앞으로 이재명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는, 변화된 국제 질서 속에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안전하게’ 그리고 ‘의미 있게’ 재정립할 수 있을지를 결정해야 하는 중대한 시험대에 놓여 있다. 그 시험의 해답은, 이념이나 정당이 아닌 실용적 태도와 정책의 일관성, 그리고 국민의 신뢰 속에서 완성될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