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북한이탈주민법 시행령 개정이 갖는 함의
  • 북민위
  • 2025-05-02 06: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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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1일 북한이탈주민법 시행령이 개정됐다. 명분은 ‘형평성 강화’와 ‘자립 기반 확대’. 정부는 이번 법령 개정으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환경이 더욱 안정적으로 개선될 것이라 자평했지만, 당사자 그리고 정책 현장 실무자들의 반응은 다소 온도차가 있다.

제도는 늘 그렇다. 법령 개정과 현실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하고, 숫자와 문구가 바뀌었다고 해서 삶이 곧장 달라지는 건 아니다. 이번 법령 개정으로 개편된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제도의 네 가지 주요 사항을 중심으로, 그 의미와 한계 그리고 앞으로의 과제를 꼼꼼히 짚어볼 필요가 있다.

미래행복통장 가입 제한 폐지

북한이탈주민의 자산 형성을 위해 2014년 도입된 ‘미래행복통장’ 제도는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정부가 추가로 일정 비율의 지원금을 적립해 주는 일종의 매칭형 자산 형성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정착 5년 이내에만 가입이 가능하다는 비합리적 기간 제한이 있어, 자립 기반을 다지려는 북한이탈주민 상당수가 이 제도의 수혜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돼 왔다.

이번 개편으로 가입 시기가 폐지된 건 뒤늦은 정상화 조치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시행된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형식적 가입 완화만으로는 부족하다. 북한이탈주민의 금융 접근성과 저축 여력 그리고 중도 해지율이 높은 현실을 감안할 때, 이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재무 상담, 자산관리 교육, 긴급 생활비 대출 연계 같은 보완 프로그램이 필수적이다. 물론 의무 금융교육 이수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해외 사례를 보면, 영국의 ‘Matched Savings’ 프로그램은 가입자 전원에게 재무 코칭과 생활 관리 교육을 의무화해 자산 형성의 성공률을 높이고 있다. 국내도 이런 운영형 개선 없이는 통장 가입자 수 늘리기에만 집중되어 실질 성과는 미미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지원금 지원 기준 확대

교육지원금 제도의 연령 제한과 학력 인정 5년 이내 입학 조건이 폐지되면서 이제 나이와 학력에 상관없이 누구든 대학에 진학하면 등록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중년 북한이탈주민이나 늦은 학업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기회의 문을 연 조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여전히 ‘대학 진학’만을 기준으로 설계된 제도라는 한계는 그대로다. 현재도 전국 1800여 명의 탈북 대학생들이 각자의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중도 탈락률은 9.8%로 일반 대학생 6.4%보다 1.5배가 높다.

한국어 어휘력, 영어 기초학습, 과제작성법, 또래 관계 형성에 이르는 종합적인 적응지원 체계가 병행되지 않으면 이 제도는 대학 문턱을 넘기는 돕지만, 학위취득이라는 목표지점까지 동행하지 못하는 제도로 남게 될 수 있다. 미국의 난민 교육지원 사례처럼 대학과 연계한 멘토링·튜터링·정신건강 상담 프로그램이 같이 병행되어야 실효성이 생길 수 있다.

정착기본금 50% 인상

1인 세대 기준 정착기본금이 기존 10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50% 인상됐다.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늦은 조치지만 의미는 있다. 특히 초기 정착비용(보증금, 가전제품 구입, 의료비, 교통비 등)이 크게 부담되는 북한이탈주민에게는 절실한 지원이다.

문제는 이 인상폭이 여전히 실거주와 생활비 현실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예컨대 서울·수도권의 원룸 보증금 평균은 800만원 이상, 월세는 50만원에 달한다. 주거비만 해도 정착기본금의 70% 이상이 사용되고, 남은 금액으로 생필품, 의료비, 교육비를 충당하기엔 부족하다.

특히 한국은 정착기본금 일시 지급 중심이라 ‘초기 자금 소진 이후의 자립 지속’이 어려운 구조다. 금액 인상과 함께 생계 보조, 교육비 추가지원, 긴급 의료비, 심리상담비 지원 등을 포함하는 종합형 정착 지원금 설계 방식으로 가야 한다.

취약계층 안부 확인 사업 전국 확대

고령, 독거, 한부모가정 등 위기 상황에 취약한 북한이탈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해 온 ‘똑똑! 안녕하세요’ 사업이 수도권에서 전국으로 확대됐다. 정책 방향성 자체는 환영할 만하다. 실제로 2024년까지 수도권 내 고독사 예방과 응급 상황 조기 발견 사례가 다수 보고되면서 효과도 입증됐다. 전국 확대 후 지자체가 앞다투어 시행하고 있다.

다만 전국 확대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선 단순 방문·전화 확인을 넘어, 위기 발견 이후의 긴급구호 연계 체계, 의료기관·정신건강센터와의 실시간 정보공유망이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전국 확대에 따른 예산 확보와 방문 인력의 전문성 확보, 정례적인 현장 교육 시스템 구축이 동반되지 않는다면 확대만 하고 관리가 안 되는 전형적인 ‘전국 확대용 정책’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결론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제도는 분명 이전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의 진짜 가치는 숫자가 아니라 현장에서 얼마나 작동하는가에 있다. 단순히 법령을 개정했다고 해서 북한이탈주민들의 삶이 바뀌진 않는다.

숫자와 제도, 행정 논리를 넘어선 사람 중심의 정책 설계. 지금 이 시점에 절실한 건 그 부분이다. 북한이탈주민 당사자와 현장 실무자의 목소리를 정책 수립 초기부터 반영하고, 수치보다 ‘변화된 일상’을 만드는 정책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진짜 중요한 건 이제부터다. ‘법은 고쳤는데 왜 삶은 그대로인가’라는 질문에 당당히 답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일. 그게 진짜 통일 준비이고, 지속 가능한 사회 통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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