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서] 황장엽선생 서거 5주기에 즈음한 북한민주화위원회 담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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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10-10 06: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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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민주화위원회 담화
(황장엽선생 서거 5주기에 즈음하여)

2010년10월10일은 북한민주화와 조국통일의 원대한 꿈을 안고 대한민국으로 망명하셨던 북한민주화위원회 초대위원장 황장엽선생께서 서거하신 5주기가 되는 날이다.

황장엽선생의 대한민국 망명은 한반도의 새로운 정치적 변화와 북한민주화를 앞당기는 전환점이 었으며 북한독재체제에서 신음하는 2300만 북한동포들에게 자유 대한민국과 북한 수령독재 체제인식의 새로운 변화를 몰고온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황장엽선생은 대한민국 망명후 김대중, 노무현정권의 정치적 박해와 탄압으로 북한민주화를 위한 원대한 꿈과 인본주의 철학을 집대성하기 위한 꿈을 완성하지 못하고 2010년10월10일, 우리들의 곁을 떠나 가셨다.

황장엽선생은 2003년10월 27일부터 10일간의 일정으로 미의회와 미행정부, 디팬스포럼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여 북한정권의 반인적정책의 본질과 북한주민들이 겪고있는 참상, 그리고 북한민주화를 위한 당면과제들에 대하여 당시 백악관 라이스안보보좌관을 비롯한 미행정부관리들과 미의회 상하원 의원들, 프리돔하우수와 미국의소리방송, 자유아시아 방송과 워싱턴DC 현지교민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진지한 의견을 교환 하였다.

특히 선생은 종북정권하에서 조국통일 활동을 자유롭게 펼칠수 없는 상황에서 미국 워싱턴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함께 활동하자는 미국 현지교포들의 의견을 뿌리친채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김정일 정권과 북한과 결탁한 내부의 적들과 싸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고 대한민국 귀로에 오르기도 하셨다.

황장엽선생은 자신이 마지막으로 할수있는 일은 조국통일의 주력군 탈북자들의 전위대오 결성에 두고 2007년4월10일, 프레스센터에서 500여명의 사회지도층 인사들과 지인들, 수많은 탈북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민주화위원회 결성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시었다.

그러나 선생께서는 2010년10월10일, 뜻하지 않는 사고로 북한민주화와 조국통일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채 우리들의 곁을 떠나셨다.

선생께서 우리의 곁을 떠나신 다음 북한민주화위원회는 여러가지 난관에 직면하여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민주화위원회는 황장엽선생의 북한민주화와 조국통일의 큰 뜻을 받들어 북한민주화위원회를 과거로 회기하지 않고 기득권에 얽매어 자리에 열연하지 않는 역동성있는 전투조직으로 발전시켜 명실상부한 탈북자 전위조직으로 꾸려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2010년 10월 10일

(사)북한민주화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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