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2-02-14 06:5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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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1970년대 김정일 활약상 홍보 방해한 '반당분자' 언급
한이 13일 김정일 생일 80주년(2.16)을 앞두고 1970년대 치열했던 후계자 권력투쟁 비화를 이례적으로 공개해 눈길을 끈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전날 '수령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는 것은 우리 인민의 제일가는 본분이다' 제하의 기사에서 "장군님(김정일)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 더해만 가는 경사스러운 2월에 우리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을 세상에 전하게 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사의 골자는 6·25전쟁 중이던 1952년 김정일과 만경대혁명학원을 함께 다녔던 민주조선사(내각 기관지) 기자 출신 김룡순씨가 1970년대에 김정일의 10대 시절 '혁명 업적'을 세상에 알리려고 방해 세력에 맞섰다는 내용이다.
신문은 정확한 연도를 밝히지 않은 채 "1970년대는 나라의 방방곡곡 어디서나 '영명하신 지도자',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라는 존칭이 스스럼없이 울려 나온 흠모의 시대였다"고 표현했다.
북한 내부에서 김정일을 '친애하는 지도자' 등으로 부르기 시작한 것은 그가 1974년 후계자로 공식 내정되기 이전부터여서 후계자 내정을 둘러싸고 치열한 권력 암투가 벌어지던 1970년대 초중반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당시 기자였던 김씨는 김정일의 만경대혁명학원 시절 관련 '사적자료'를 자발적으로 발굴하고, 고증 원고를 '해당 기관 취급자'에게 제출했다. 사적자료를 다루는 해당 기관이라면 노동당내 부처 중 하나인 당역사연구소로 추정된다.
그러나 원고를 받아본 사적자료 취급자는 김씨에게 "(김정일의) 10대 때 일을 너무 어른스럽게 서술하면 누가 그것을 믿겠느냐"고 핀잔을 주며 김정일의 활동 관련 자료를 빼고 분량도 축소할 것을 지시했다.
심지어 이 취급자는 김씨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고증 내용을 철회하라고 '간교한 회유'를 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하지만 김씨와 학원 동기들은 물러서지 않았고 결국 "위대한 태양의 빛과 열을 가려 보려고 음으로 양으로 책동하던 그 자의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서의 정체는 낱낱이 드러나 끝끝내 인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말이다.
이번 일화는 김정일이 1974년 후계자로 공식 선출되기까지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존재했고 권력투쟁도 있었음을 사실상 공식 자인한 셈이다.
김정일은 1970년대 초반부터 계모인 김성애 및 이복동생 김평일의 세력과 치열한 권력 싸움을 벌인 끝에 후계자 자리를 꿰찼으며 이후 김평일과 그의 누나(김경진), 동생(김영일)을 정치적으로 완전히 고립시켰다.
김평일은 1988년 헝가리 대사로 부임한 후 30년 넘게 외국에서 사실상의 유배 생활을 하다가 2019년에야 고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북한은 그동안 김정일의 후계자 관련 권력 암투에 대해서는 침묵해왔다
김정일 후계자를 둘러싼 내부 권력투쟁을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하나의 충격적인 사실"이라고 보도할 정도로 전례 없는 일이다.
김일성의 경우 광복 직후부터 1960년대 1인 지배체제가 확립되기 전까지 치열한 권력투쟁을 '혁명역사' 차원에서 연도별로 상세히 소개하고 주민들에게 주입했다.
방해 세력에 대한 심판으로 끝나는 이번 김정일 권력투쟁 비화를 공개한 것도 김정일 생일을 맞아 3대 세습 체제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주민들에게 촉구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만경대혁명학원은 1947년 10월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의 유자녀를 위해 설립했으며 김정일은 전쟁 시기에 학원 원아들과 잠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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