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수용소의 노래" 제56화
  • 관리자
  • 2010-07-16 1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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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남북은 5천의 역사를 함께 살아온 한민족 이다. 어쩌다 짐승만도 못한 독재자를 만나서 세계 제일 빈곤국가로 전락한 동토의 땅을, 인간이 살수 없는 지옥의 땅을 우리들이 구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들을 구하겠는가? 라디오 방송극 “ 수용소의 노래 ” 원작 강철환, 각색 김기혁, 감독 송동렬, 오늘은 쉰 다섯번째 시간입니다.

설화: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수용소 생활이다.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는 견디지 못하는 것이 수용소요, 육체마저도 갈가리 찢겨버려 우리 집 식구가운데서도 성한 사람이라곤 나 하나뿐이었다.

할머니는 이까지 다 빠져서 호호백발에 파파 늙어버렸고, 아버지는 위병이 심해져서 죽으로만 연명을 하셨다. 거기에 허리병까지 도져서 예전처럼 노동도 할 수도 없게 되었다. 보위원들은 이런 아버지를 ‘경노동작업장’으로 내 몰았다.

아버지: (기침) 이러다 정말 여기 수용소를 벗어나지 못하고 죽어야 할 가부다. (기침)
철 환: 아버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나요? 어떻게 하든 여길 벗어나야지요.
아버지: 그게 글쎄 말처럼 쉬운 일이냐.

설화: 사람들은 그런 수용소에서의 1년을 사회에서의 10년이라고 했다. 그 만큼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여기서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탈출? 자살?’ ‘에익, 차라리 전쟁이라도 콱 나면좋겠다’ 하고도 생각해 봤으나 어느 것 하나 가능한 것은 없었다.

그러던 1987년, 새해 벽두부터 이상한 소문이 떠돌았다. 수용자들의 뒷조사를 하는 ‘담화사업’이 귀국자 마을 사람들을 상대로 진행된다는 것이었다. 까딱 잘못하여 말실수라도 하는 날이면 한사람의 운명을 그날로 끝장내 버릴 수도 있는 것이 이른바 담화사업이었다.

수용자1: 지금 와서 또 다른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건 아니갔지?
수용자2: 그걸 누가 알가서? 그냥 덮어 놓구 잘못했다고 해야지.
수용자1: 이거야 어디 가슴이 조마조마해서 살수가 있어야지. 야 철환아. 긴데 우리같은 젊은 사람들을 내 놓구 왜 너희할머니를 젤 처음 부른대? (음악)

설화: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하필이면 왜 우리할머니를 먼저 부르는 것일까. 불안에 떠는 우리가족이 보는 앞에서 보위원들이 할머니를 강제로 부축해 저들의 사무실로 끌고 갔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온 할머니주변에 빙 둘러앉은 우리 온 가족은 할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할머니: 아 글쎄, 나를 보고 현재 일본에 있는 친척들이 누구누군지 대라는 게 아니냐. 하나도 빠짐없이. 그래서 다 댔지. 그랬더니 이번에는 친척들이 일본에서 하는 사업이 뭔가고 묻더구나. 그러고 나서는 본 고향이 어디며 언제 일본에 건너갔느냐는 등 집안 이력을 하나하나 물었어.

아버지: 아니, 일본에 있는 친척들 내막을 몰라서 늙은이를 불러내다 따진다는 거예요?
할머니: 글쎄 그 속내를 아는 재간이 있니? 돌려보내면서는 계속 생활을 잘 하시오. 하더구나.

설화: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먹이를 기다리는 짐승처럼, 혹은 일감을 기다리는 마소처럼 수감자들의 어깨위엔 기다림의 무거운 멍에만 놓여있을 뿐이었다. 9살에 끌려와 수용소에서 산지가 벌써 10년, 내 나이 19살이 되었다. 이제는 수용소 생활 이외엔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아는 바깥세상은 어릴 적 기억과 막연한 환상뿐이었다.

문득 한참 전에 출소한 리용모 생각이 났다. 용모네는 그의 아버지가 김정일의 이복동생과 가깝다는 이유로 들어온 가족세대였다. 그들은 3년 만에 혐의가 벗겨져 수용소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우리 할아버지의 죄명이 벗겨진 것은 아닐까... 하는 희망과 의구심이 하루에도 몇 차례나 엇갈렸다. 그런 와중에 김정일 생일날이 가까워졌다. 김정일 생일이 가까워질수록 나의 가슴은 막연한 기대감에 부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좋은 일이라는 것은 주로 김일성, 김정일 생일날에 이루어지기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초조하고 불안하기도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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