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10-07-16 10:3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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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여) 내가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9년간을 살아야 했던 리유는,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과 친구였고, 그녀가 5호 댁이라 불리우던 김정일에게 시집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초, 앞으로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될 김정일이 다른 사람의 부인인 성혜림을 데리고 산다는 것은 김일성도 모르는 비밀이었고, 이러한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죽음을 면치 못했다. 이른바 김정일의 권위와 관련된 문제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공화국에서는 극악무도한 범죄가 되기 때문이었다. (음악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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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실화극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 오늘은 전 시간에 이어 제3화 “공포와 충격의 두 달”을 들으시겠습니다.
주인공: 사흘 동안은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하루가 그토록 지루했던 날은 나의 일생에 없었다. 말도 못하고 사연도 모르고 묻지도 못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신세인 것만은 분명했다. 두려움 때문에 심장의 박동조차 정상이 아니였다. 얼마나 숨 막히고 초조했는지 숨마저 바로 쉴 수가 없었다.
나흘째 되는 날, 나를 련행해온 중좌가 방으로 들어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 앉았다. 자신을 국가 보위부 지도원 이호춘이라고 소개했다. 그렇게 의례적인 인사가 오갔고, 또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야말로 숨 막혀 죽을 지경이였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며 말문을 열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어 여기에 왔습니까? 여긴 도대체 어딥니까?”
남 2: “서두를 것 없소. 이제 곧 알게 될 테니까.”
주인공: 이번에도 한마디였다. 그 한마디를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난 이호춘 중좌는 씽~하니 방에서 나가버렸다. (음악)
그리고 또 사흘 간 개미 한 마리도 얼씬하지 않았다. 답답하게 만들어 말려 죽일 심산인 모양이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이호춘 중좌가 종이뭉치와 원주필을 가지고 오더니 책상우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는 내 눈을 응시한 채 또박 또박 말하는 것이였다.
남 2: “쓰시오.”
주인공: “쓰라구요? 무엇을 써야 하는데요?”
남 2: “동무가 여태까지 살아온 일들을 하나도 빼먹지 말고 써야 합니다. 례를 들어 몇 시에 밥을 먹고 몇 시에 출근하며 몇 시에 누구를 만났고, 무슨 말을 나누고 들었으며 또 동무가 알고 있는 사람들, 특히 알고 지낸 간부들에 대해서 써야 합니다. 그 자서전이라는 거 알지요? 자서전을 쓰는 것처럼 사소한 것도 빼먹지 말구 구체적으로 써야 합니다. 알았습니까?”(효과 음악)‘’
주인공: ‘빨리 쓰고 이곳을 나가야 부모님도 자식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바로 그 후부터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부지런히 적어 나갔다. 될 수 있는 대로 자세히 적어갔다. 알고 지내던 간부들의 이름도 생각을 짜 내어 적고 또 적었다. 내각 부수상 김광협, 이웃에 살던 박금철의 딸 박정식, 김일성의 부인 김성애 여맹위원장을 만났던 일도 적었다.
몇 년 전 허담의 부인 김정숙이 나에게 속치마를 선물해줬다는 이야기며, 중앙여맹부위원장 이경숙을 만났던 사실, 그리고 김정일의 누이이자 장성택의 처였던 김경희의 여행준비를 해주던 일들을 적었다.
장성택의 누이 장계순은 협주단에서 함께 복무했고 성혜림과는 여고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 까지 동창이였고 친구였다는 사실도 썼다. 또 4․25영화촬영소 소장 차계룡이 우리 집 웃층에 살고 있어 어느날 그를 만나려 우리 아빠트에 왔던 성혜림이 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렸고, 이제는 배우생활 그만두고 「5호댁」으로 간다는 사실을 말했다는 것도 적었다.
인민군 3월 전원 회의 때 숙청된 리익성, 리대성, 리주연, 장평산, 김두봉이 팔로군에 있을 때 오빠의 전우들이었다는 것 등, 나의 머릿속에 있는 모두를 하나도 빠짐없이 끄집어 내서 적었다.
옴 몸이 녹아내릴 듯 한 여름, 두 달에 걸쳐 깨알같이 써낸 이른바 “자서전”은 륙백장이 훨씬 넘었다. 이름 모를 아파트에서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며 적었던 내 삶의 그 기록들...
그 기록들은 다시 한 번 살펴볼 사이도 없이 이호춘 중좌에 의해 회수 됐다. (효과 음악)
예심과정이라고 했던가...나는 그동안 세 번이나 정신을 잃었었다.
그때마다 의사가 달려왔고 주사를 놓아주군 했다.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 되었고 그러면 다시 일어나 책상과 마주하군 했다.
소화가 안 되어 여러 번 의사와 마주 하기도 했다.
의사를 통해 생리대도 가져다 주군 했다.
나름대로의 대우를 하면서 최대한의 진술을 받아내기 위함이었던 듯했다. 예심과정을 모두 거친 뒤에야 정치범들이 그렇게 다루어 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손에 쥐가 나도록 다 쓰고 나서 마지막에 적었던 글이 지금도 생각난다.
“저는 조선로동당원이고 당의 딸입니다. 제가 혹시 본의 아니게 생활상의 잘못을 저지르거나 외국인 려행자 상점에 손해를 끼친 것이 있을지는 몰라도 정치적 생명에 흠이 갈 일은 죽어도 하지 않았음을 당 조직 앞에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저의 심정을 말씀 드리며 앞으로 더욱더 분발하여 당과 수령, 조국 앞에 충실하겠다는 것을 결의 합니다” (음악)
주인공: 그러한 맹세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었으랴. 서른 세 해 동안의 삶을 쓰면서 눈물도 흘리고, 맹목적인 맹세도 적고 또 적었지만 나는 끝내 수용소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18년이 지난 후에야 나의 죄라는 것이 김정일의 부인 성혜림과 친구였고 그녀가 「5호댁」이라 불리던 김정일의 집으로 시집간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억울했다.
성혜림으로 말하면 당시 공화국의 문예총 위원장이였던 소설가 리기영의 며느리며 나의 친구였다. 그가 리기영의 아들 리평과 결혼했던 사이고, 이제 공화국의 주석인 김일성의 아들 김정일과 동거하는 것이 얼마나 큰 비밀이기에 사람의 인생을 그렇게 뒤집어 놓는단 말인가.
분하고 원통해서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아무리 후계자로 이름을 올리고, 공화국의 최고 권력자가 될 사람이라지만 사람들 앞에 부끄러운 일이라면 차라리 일을 저지르지나 말 것이지 무고한 사람의 입을 틀어막기 위해 정치범 수용소라니...하늘을 원망하며 울고 또 울었었다.
‘저 하늘에 하느님이라는 존재가 과연 있을까? 전지전능하다는 하느님이 만약 있다면 왜 나처럼 억울한 사람이 생겨날 수 있단 말인가. (벼락 치는 소리, 효과음악)
(설화 여) 지금까지 원작에 김영순, 각색에 김민, 자유북한방송 아나운서들의 출연으로 들으셨습니다. 방송실화극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
청취자 여러분 그럼 다음 시간을 기다려 주십시오. 여기는 서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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