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71회]
  • 관리자
  • 2010-06-04 10:5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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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나는 아내의 생모를 모시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집과 장인과는 교류도 없었다. 그러나 아내의 아버지가 탈출하다가 체포된 만큼,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북한체제 아래서는 달리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아내는 대학에서 철직 되어 돌아온 모양인데,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아내의 안색이 안 좋아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아니에요. 저녁이나 먹고 얘기할 게요.” 아내는 저녁을 먹을 때도 아무 말이 없었다. 설거지를 끝낸 아내가 내게 해 준 말은 철직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로서도 당장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미안해요. 당신에겐 피해가 없어야 할 텐데.” 나는 그때 박승옥이 훌륭한 아내이자 동지라고 느꼈다. 그녀는 겹치는 불행 속에서도 누구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나와 운명을 같이할 확고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나는 공산주의자들은 왜 이다지 가족주의가 강하고 봉건주의적으로 사고하는지 정말 불만이었으나, 운명에 순응하는 길밖에 다른 수가 없었다. 내가 분노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고, 오히려 내 불행을 그만큼 앞당길 뿐이라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당시 논문을 잘못 썼으니 용서해달라는 따위의 말을 하거나 살려달라고 애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없는 논문을 썼다고 무척 후회는 했다. 대학을 직접 지도하는 부수상 김일과 나는 서기실에 있을 때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그를 찾아가 상의했다. 그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이론적 과오는 이론적으로 극복해야 하지 않겠소.” 그는 나를 돕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나로서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은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여기서 참고삼아 김일성 가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려고 한다. 김일성(김성주)은 삼형제였으나 둘째인 김철주는 해방 전에 죽고 동생 김영주가 있을 뿐이다. 김일성에게는 삼촌의 아들들인 사촌동생들이 있다. 그 중에서 제일 알려진 사람이 김창주로, 오랫동안 농업담당 부총리를 맡아왔으나 건강이 나빠져 지금은 쉬고 있다.

김일성의 외삼촌의 아들로서는 오랫동안 평양시당 책임비서를 지내온 강현수가 있다. 그리고 이모 쪽으로는 처음에 군간부로 있다가 현재 교통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는 이용무가 있다. 그는 최근 김정일의 측근자로 부상하고 있다. 김일성의 친척 가운데 가장 세력이 큰 것은 고종사촌들이다. 김일성의 고모의 두 딸은 모두 소련유학 출신으로, 맏딸의 남편이 양형섭이고 둘째딸의 남편이 허담이다. 이들과 김일성 삼촌의 아들인 김창주 계열과는 치열한 경쟁관계에 있으며, 여기서 양형섭과 허담의 집단이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되었다.

김일성의 후처인 김성애와 김일성의 고종사촌 누이동생들인 김신숙(양형섭의 처), 김정숙(허담의 처)은 김성애와 같은 마을 출신으로 사이가 나쁘다. 김정일이 김성애를 배척해왔고, 여기에 김신숙과 김정숙 자매가 합세함으로써 김정일의 지지를 받게 되었다. 김창주 계열은 김신숙과 김정숙 자매와의 경쟁에서 패배한 탓인지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고 말았다. 김달현은 김일성 외삼촌의 손녀사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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