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9회]
  • 관리자
  • 2010-06-04 10: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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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학교가 있는 승호리 읍에는 꽤 큰 시멘트 공장이 하나 있었다. 승호리 읍에 사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그 공장의 노동자 자녀들이었다. 다달이 월급을 타 생활수준이 높았고, 아이들은 대처에서 생활해서 그런지 눈치가 빠르고 약았다. 어디나 도농 간에 텃세를 부리는 애들이 있기 마련인데, 승호리의 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애들은 무리를 지어 주로 읍내에 살지 않는 학생들을 괴롭혔다.

나도 피해를 보는 쪽이었는데, 그 애들은 하교하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앞을 가로막고는 땅콩을 가져와라, 고구마를 가져와라 하는 것이었다. 그 애들 중에는 우리 반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는 조뢰진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우리는 녀석이 없을 때면 조돼지라고 불렀다. 녀석이 주먹을 내 얼굴에 디밀면서 겁을 줄 때는 정말 무서웠다.

“고구마나 땅콩을 안 가져오면 가만히 안 두겠다. 흠씬 얻어맞고 가져오는 것보다 일찌감치 갖다 바치는 게 몸에 이로울 거야.” 그때까지만 해도 서당에 같이 다니다가 먼저 학교에 다니는 애들을 나는 재간이 없다고 깔보며 그 애들과 함께 놀거나 같이 다니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승호리 읍내 아이들에게 자주 협박을 당하다 보니 그래도 믿을 것은 한 동네 사는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그래서 서당에도 같이 다녔고 나보다 한 살 위인 뒷동네에 사는 윤병선에게 승호리 애들의 텃세를 말했다. 윤병선은 우리 동네와 뒷동네 학생들의 우두머리이기도 했다. 그 아이는 서당에 다닐 때면 하루 종일 공부해도 연구의 두절도 따라 외우지 못하는 우둔한 축에 드는 아이였다.

그런 그가 우리 동네와 뒷동네 학생들의 우두머리 노릇을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나는 그 애들과 놀지 않았었다. “승호리 애들이 괴롭혀서 못살겠어. 내일은 먹을 걸 가져오지 않으면 가만히 안두겠대.” 윤병선은 내 말을 듣고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걔들이 여럿ㅎ이 나오면 우리도 여럿이서 힘을 합치면 돼. 집에 갈 때 우리와 같이 가자. 무서워할 거 없어.”

나는 윤병선이 나보다는 힘이 세지만 승호리의 불량소년들을 과연 물리칠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학교가 파하고 윤병선의 연락을 받은 우리 동네와 뒷동네 애들이 모이자 10여명이 되었다. 우리는 학교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 길목을 지키던 승호리 애들이 우리를 막아섰다. 조돼지가 나오며 나에게 싸움을 걸었다.

“야, 새로 온 촌놈, 고구마 가져왔냐?” 윤병선이 나에게 나서지 말라고 하더니 조돼지에게로 가 뭐라고 수근거렸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조돼지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승호리 애들을 데리고 물러나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도 신기하고 또 궁금하여 병선에게 어떻게 했기에 애들이 물러났느냐고 물었다. “응. 네가 우리 서당 선생님 아들인데 두고 보면 알겠지만 일본놈 교장(교장이 4학년 담임이었다)도 너에게 꼼짝 못하게 될 테니 우리가 잘 보호해야 된다고 그랬지.”

그날 이후로 조돼지는 사탕이나 과일을 갖다 주었고, 혹시라도 괴롭히는 애들이 있을까봐 나를 보호해주었다. 나는 윤병선과 같이 다니게 되었고, 예전과는 달리 그 애의 인품에 조금씩 매력을 느꼈다. 그는 동네 애들이 싸우면 공평하게 시시비비를 가려줬고, 몸이 아픈 애가 있으면 업고 가기도 했다.

여름방학 전에 학교에서는 학교농장에 쓸 퇴비를 만드느라 전교생에게 풀을 한 짐씩 지고 오도록 과업을 줬다. 그리고 선생이 매일 학생들이 가져온 풀을 점검하여 점수를 매겼다. 우리 동네에는 쌍둥이가 있었는데 그 애들도 우리와 함께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쌍둥이의 아버지는 목수여서 우리 집으로 문짝 등을 고치러 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퇴비를 한창 해와 야 하는데 때마침 쌍둥이 형제가 그만 학질에 걸리고 말았다. 아픈 몸으로 풀단을 지고 괴로워하는걸 보자, 병선은 자기 몫에다 쌍둥이의 것까지 얹어 땀을 줄줄 흘리면서 학교까지 져다주는 것이었다. 그걸 본 나는 그가 우리 동네의 골목대장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의 간섭과 어줍잖은 지시를 받는 것에 불평을 하지 않았다.

쌍둥이가 아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나는 어려서 몸이 허약해 많이 앓았다. 겨울에는 늘 감기를 달고 살았고, 여름이면 까닭모를 신열에 시달리고는 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나아졌지만 몸이 약한 것은 여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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