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8회]
  • 관리자
  • 2010-06-04 10: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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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리 보통학교
193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당에 오는 아이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우리 동네에서만 내 또래 아이들이 4명이나 보통학교에 입학했고, 뒷동네 아이들도 거의가 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그래도 한문을 중시하는 집안의 아이들은 여전히 서당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것도 여름이 되면서 뒤늦은 입학을 허용한 보통학교에 학동들이 입학하자 서당은 텅 비다시피 했다.

나는 혼자서 아버지에게 한문을 배워야 했다. 그것은 너무도 따분한 일이었다. 보통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 학교에서 배운 창가를 부르면서 돌아오는 것을 보면 부럽기 그지없었다. 나는 소에게 풀을 뜯기고 참외 원두막을 지키기도 하면서 형이 배우던 교과서들과 ‘삼국지’같은 국문으로 된 소설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어느 날,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다 보통학교에 들어간 아이들로부터 편입시험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상은 사립학교나 서당에 다니던 아이들로서 시험을 친 뒤에 학년을 정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아버지는 이번에는 몸소 나서서 편입시험을 주선해 주었다.

그래서 승호리에 있는 보통학교에 나가 아이들과 시험을 쳤는데 문제가 쉬웠다. 나와 ‘광대어물’이라고 불리는 마을의 아이가 시험에 합격하여 4학년에 편입되었다. 나와 함께 합격한 광대어물 동네 아이는 4년제 사립학교에서 공부했는데, 나이가 나보다 세 살이나 위였다. 그때는 나이가 서너 살 위인 동기는 말할 것도 없고 장가를 간 동기도 있을 정도였다.

결국 서당에서 함께 공부하다가 3년이나 먼저 보통학교에 입학한 아이들과 나는 같은 학급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한 학급의 인원은 80명 내외였다. 나는 보통학교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학교생활이라는 걸 시작하게 되어 무척 기뻤다. 그러나 학교생활을 늦게 시작한 만큼, 학급에서 뒤떨어진 걸 알고는 맥이 풀릴 정도였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나는 집에서 6학년까지의 공부를 나름대로 끝냈기 때문에 좀 더 월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학교생활을 하면서 내가 가진 지식이 정말 보잘 것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그 중에서도 나를 더욱 주눅들게 한 과목은 도화(미술)와 창가(음악), 그리고 체육이었다. 이 세 과목의 성적은 낙제나 다름없었지만 다른 과목의 성적이 뛰어나 동정점수를 받아 체면을 유지하고 낙제를 면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체육에 자신이 없던 나는 가을마다 돌아오는 운동회가 싫었다. 그날은 동네 사람들이 점심을 준비해가지고 와 운동회는 마치 큰 잔치 같았다.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보는데서 달리기를 하여 꼴찌를 한다는 것은 어린 내 마음으로는 상처를 받기에 충분했는데, 그래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들 들떠 하루를 보내는 운동회를 나는 그저 시큰둥하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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