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 [제17회]
  • 관리자
  • 2010-06-04 10: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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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형보다 아버지에게 신임을 얻은 것은 성격이 당신을 닮아 잔잔해서였다. 형은 힘도 세지 않으면서 성미가 급해 이길 수 없는 상대임이 뻔한데도 자주 싸워 얻어맞았고, 이런저런 말썽을 피워 식구들의 속을 썩였다. 형의 싸움질 탓에 동네 어른들 사이가 어색해지는 수도 적지 않았다. 나는 원체 겁이 많기도 했지만 싸우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또 형들끼리 싸웠다고 해도 그 집 애들과는 여느 때처럼 내식하지 않고 잘 지냈다. 동네에서 형과 걸핏하면 싸우는 상대는 형보다 한 살 아래였는데, 그의 동생은 나보다 한 살 위였다. 그 형제는 우리 형제보다 힘도 세고 싸움도 잘했다. 아이들끼리의 싸움에 잘잘못을 따지며 자기 아들을 편드는 어머니들을 보면서, 친구와 나는 서로 싸우지 말자고 굳게 약속하고는 했다.

우리의 어린 눈에도 아이들 싸움에 부모들이 나서는 것이 좋게 보이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형은 아버지가 나서서 드러 내놓고 편을 들어주지 않는 게 불만이었다. 그래서 늘 그 불만을 떠벌리고는 했는데, 그 때문에 아버지는 그런 형보다 성격이 잔잔한 나를 더 좋아했는지도 모른다. 형은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로 중학교 강의록을 공부한다고 했지만 실상은 하지도 않았다.

농사철이면 키우던 개의 손도 빌린다는 말이 있듯이 어린 나까지도 동원되었으나, 형은 일을 하면 머리가 아프다면서 아예 농사일을 거들려고 하지 않았다. 식구들은 일본인 교장에게 곤봉으로 맞은걸 잊고 있었다. 그래서 모두들 형이 게으르다고 행각했다. 나도 그 점에 대해서는 형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아버지는 가끔 나를 데리고서 조그만 반두(양쪽에 막대기를 댄그물)를 가지고 고기잡이를 나갔는데, 한번은 새우를 잡으려고 동네 어귀의 강으로 나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새우가 잘 잡히지 않았다. 아버지는 새우가 있을 법한 버들 숲이 우거진 곳에 그물을 쳤으나 그래도 잡히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에게 오늘은 잔풀이 무성한 데에 그물을 쳐보자고 했다.

아버지는 내 말대로 해보자며 큰 기대 없이 그물을 쳤는데 새우가 많이 잡혔다. 아버지는 나에게 어떻게 그런 걸 알았느냐고 물었다.
“오전에 사람들이 새우가 붙어 있기 좋아하는 곳을 다 뒤졌기 때문에 자연히 평소에는 없던 곳에 붙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참으로 그렇구나. 내가 그걸 몰랐구나. 그런 생각을 하다니 참으로 용하다.”

아버지의 칭찬은 집에 와서도 이어졌다. 형은 아버지가 나를 칭찬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당시 내가 아버지에게 자주 이쁨을 받아 형의 입장을 곤란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때 나는 형의 너그럽지 못한 점이 불만이었다. 때로는 그저 동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나는 아버지에게 형을 고자질하는 따위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번은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아버지에게 형의 못됨을 일러바친 적이 있었다. 그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형이 나에게 강냉이를 화롯불에 튀기라고 하고는 잘 튀겨진 것은 자기가 먹고 나에게는 타거나 덜 튀겨진 걸 주는 것이었다. 그래도 꾹 참았는데, 화롯불에서 불꽃이 튀겨 자기 신발을 못쓰게 만들었다면서 나를 사정없이 패기까지 했다. 나는 형을 이대로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녁식사가 끝나갈 쯤에 나는 아버지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모조리 말했다. 둘째누이도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형의 못된 행동거지를 털어놓으면서 내 편을 들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형을 나무랐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몹시 화를 냈다. “일도 안하고 빈둥거리면서 동생이나 때릴 바에는 집에서 나가라.”아버지의 꾸중이 계속되는 사이에 나는 형을 일러바친 것을 입술을 깨물며 조금씩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성난 꾸중을 듣고 난 며칠 후, 형은 정말 집을 나가고 말았다. 얼마 후에 동네 사람들한테서 형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마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간이역에서 사환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철도는 석탄을 나르는 게 주목적이었는데, 간이역장(말이 역장이지 노동자들과 큰 차이가 없었다)은 아버지의 서당 제자였다.

그렇게 훌쩍 집을 나간 형은 6개월 만에 집으로 돌아왔다. 아니 돌아온 것이 아니라 평양으로 가기 위해 간이역 사환을 그만두고 잠시 들렀다는 것이었다. 누구를 연줄로 하여 평양으로 가는지 식구들이 궁금해 했으나 형은 말해주지 않았다. 며칠 후 형은 평양으로 떠났다. 그리고 상당해 오랫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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