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106회]
  • 관리자
  • 2010-06-04 11:06:56
  • 조회수 : 1,576
부끄러운 방문

김정일의 허담에 대한 신임은 날로 높아갔다. 허담은 김정일의 술 파티에 고정적으로 참석했으며 김정일과 죽이 착착 맞았다. 그는 김정일이 자신을 신임하고 있다는 걸 알고는 짬을 내어 자신의 의견을 제의했다. “일본의 조총련은 대남사업 기지이기 때문에 총련을 통하여 국제부가 사업을 벌이고 있는 일본의 당들은 공산당을 제외하고는 모두 통일전선부의 사업대상으로 돌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중복되어 오히려 나쁜 결과가 초래될지도 모릅니다.”

허담이 김정일에게 그 같은 의견을 계속 들이밀자, 김정일도 결국 승인을 했다. 허담은 일본공산당과의 사업에는 자신감이 없고 또 일본공산당을 대남사업에 이용하기도 어렵다고 본 것 같았다. 나는 김정일이 허담의 말을 계속하여 들을 게 뻔하고, 또 일을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판만 많이 벌이고 있는 것도 부담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군말 않고 일본과의 사업을 허담에게 넘겼다. 그러자 국제부 내에서는 내가 무능하여 업무를 빼앗겼다고 쑥덕거렸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내가 무능한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허담과 경쟁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그 대신 국제부의 사업으로 남아 있던 일본공산당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일본공산당과의 사이가 소원해진 잘못은 전적으로 북측에 있었다. 일본공산당측은 조선노동당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줄곧 노력해 왔으나, 당시 국제비서로 있던 자가 터무니없이 고자세를 취한 탓에 끝내 화해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국제비서가 된 첫날부터 일본공산당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한번은 김일성이 이렇게 물었다.

“황비서, 주체사상을 지침으로 하여 일본에 새로운 공산당을 조직할 수 없겠소.” “일본공산당은 오랜 역사를 가진 당입니다. 또 지식계층 속에 상당히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에 그 당과 맞설 당을 개설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지금 일본공산당이 주체사상을 오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해한 부분만 풀어주면 능히 일본공산당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과 쿠바 공산당은 물론 유럽의 모든 공산당들이 일본공산당과 사이가 좋은데, 유독 조선노동당만이 서로 만나도 악수조차 안 하는 형편이라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김정일에게 일본공산당과의 관계를 개선해보겠다고 제의했다. 구걸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체사상의 우월성을 인식시키고 우리와 협조하도록 그들을 설득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그렇다면 한 번 해보시오.”라며 허락하는 것이었다. 나는 예전부터 일본 소재 유엔대학 부학장(실질적인 학장)인 무샤코오지 킨히데 교수와 친교를 맺어왔었다.

그는 참으로 양심적인 학자였다. 그리고 1986년에는 토오쿄오대학의 사카모토 요시카즈 교수가 북한을 방문해와, 그와도 친교를 맺게 되었다. 사카모토 교수는 두뇌가 명석하고 마음씨가 고운 학자였다. 1987년 말경, 사카모토 교수에게서 자신과 무샤코오지 교수가 협력하여 유엔대학 주최로 인류의 안전보장 문제를 다루는 국제세미나를 열려고 하니 꼭 참가해달라는 편지가 왔다. 사카모토 교수는 북한방문 당시 나를 만나고는 일본으로 돌아가면 나를 초청할 수 있는 기회를 꼭 만들어보겠다고 이미 약속한 바 있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