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역사의 진리를 보았다.[제105회]
  • 관리자
  • 2010-06-04 11: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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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원에서 주체과학원으로 온 학자들은 한 달도 안 되어 자신들의 견해를 완전히 바꾸었다. 그러자 사회과학원에서는 그들을 변절자라고 비방하기 시작했다. 자료연구실 학자들의 실력은 급격히 향상되었으며, 이들은 비단 김정일이 요구하는 일만을 하는 게 아니라 주체과학원 학자들의 이론수준을 높이는 데도 적지 않게 기여했다. 특히 대남사업 부서들에서는 어려운 이론문제에 부닥칠 때마다 자료연구실 학자들을 초청하여 운동권 내의 사람들의 이념문제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일까지 했다.

한편, 철직당하여 평안남도 덕천탄광에 나가 혁명화를 하고 있던 김용순이 1년 6개월 만에 국제부 부부장으로 돌아왔다. 그는 탄광에서도 여전히 김경희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가 돌아온 것이었다. 김경희와 김용순의 관계는 예전과 같은 수준이었고, 결국 국제부는 비서인 나의 중심세력과 김경희와 김용순의 세력, 그리고 제1부부장으로 부장대리사업을 하는 세력으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중앙당 내에서 국제부는 삼두마차가 이끌고 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나는 제1부부장과의 세력다툼에서 김용순이 이길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하여 김정일에게 김용순을 부장으로 임명하여 실무사업을 처리하게 하고 나는 비서로서 정책문제를 지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김정일은 “혼자만 알고 있으시오. 김용순을 수령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수령님은 김용순이 아첨기가 심하기 때문에 믿지 말아야 하며, 중요한 일은 맡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실권은 김정일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김용순을 중용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김경희와 김용순이 국제비서 자리를 탐내며 나를 비방하게 내버려두기보다는 내 스스로 그를 천거하는 쪽이 현명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 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김정일에게 그들을 추천했다. 그들이 국제부 일을 한다고 해봐야 매일 손님이나 만나고 연회나 참석하는 것일 뿐, 무슨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을 천거하던 그 해 1987년, 나는 몇 편의 중요한 글을 김정일의 이름으로 써주었다. 김정일은 내가 주체사상연구소를 떠나 자신의 충복이 되기를 계속 권했다.

그러나 내가 김정일의 권유를 외면하면서 주체사상연구소 소장직을 유지했던 것은 언젠가는 국제부를 떠나 주체사상연구소 사업에 전념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나는 중국이 개방정책으로 전환하는 걸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변하지 않는 북한의 권력에는 더 이상 기대를 걸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오직 내가 하고 싶은 철학연구에 목숨을 바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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