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북한 문제에 대한 우리의 근본 입장 (7)
  • 관리자
  • 2010-06-04 10:10:16
  • 조회수 : 1,505
「金正日 정권은 출발점부터 변질 되었다」

그의 가장 치명적인 과오는 장기집권하고 개인숭배를 조장시키면서 점차 자만자족하고 교만하게 변질 되여 정권을 세습적으로 자기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다, 이때부터 金日成의 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것은 金 正日의 수령절대 주의였다, 金正日의 영향 밑에서 진행된 金日成의 활동은 金正日과 동일하게 부정적으로 평가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金日成과는 달리 金正日은 활동과정에서 변질된 것이 아니라 첫 출발점부터가 변질상태였다.

그는 독재자의 가정에서 태어나 봉건유습이 농후한 주위 환경 속에서 왕자처럼 떠받들려 제멋대로 잘라났으며 이 과정에서 자기중심의 권력욕만 자라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으레 사람들을 지배하는 지위를 차지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을 다 자기의 신하와 같이 여기는데 습관되게 되었다, 그는 자기 아들인 김정남에게도 대 원수 복을 입혀주고 왕자의 행세를 하도록 교육하였다는 사실로 보아 그의 머리를 지배한 것은 공산주의 사상이 아니라는 것이 명백하다,

공산주의 사상은 무산계급의 사상, 못사는 사람의 사상이다, 金正日은 한순간도 못사는 사람들의 생활, 무산계급의 생활을 체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그가 체험한 생활은 모든 것을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절대적인 권력과 절대적 재부의 주인으로서의 생활뿐이었다, 그가 공산주의 사상학습에 관심이 없었고 조금이라도 자기 힘을 들여야 체득할 수 있는 어려운 이론을 배우려 하지 않은 것은 우연이라고 볼 수 없다,
1959년 나는 金日成을 따라 金正日과 함께 소련 모스크바에 가서 한동안 생활을 같이 하면서 그의 사람됨을 관찰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 때 그는 열일곱 살에 불과 하였다, 그는 나를 선생이락 부르면서도 자기 아버지의 가신처럼 여기고 자기 심부름을 부탁하였다. 金日成을 따라온 고위급 간부들이 많았으나 金正日은 매일 아침金日成을 호위하는 고급군관과 정부병원 원장인 주치의사와 간호사 등을 불러 과업을 주고 저녁에 그들이 金日成과 함께 숙소로 돌아오면 또 불러서 하루 진행된 일을 하나하나 물어 보고 과업을 주었다,
그에게 모스크바 종합대학에 유학 할 생각이 없는가하고 물어 보았을 때 그는 정치는 아버지 한데서 배워야 하기 때문에 유학할 필요가 엇다고 잘라 말하는 것이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정치적 권력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정치적 이해 관계타산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비상히 발전 되어 있었다, 그는 고생을 모르고 제 멋대로 자라난 데로부터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대하여 동정하는 품성을 키우지 못하였다, 金日成은 인민들 속에서 굶는 사람들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매우 걱정하였고 정치적으로 중대한 문제라고 보았지만, 金正日은 사람들이 굶어 죽든 얼어 죽든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어떤 때 보면 심지어 그에게는 남이 행복해 하고 기뻐하는 모습보다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는 데서 쾌감을 느끼는 가학성이 있지 않는가, 하는 의심을 자아내기 까지 한다.

그에게서는 처지를 바꾸어 놓고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특성을 찾아 볼 수 없다. 金正日은 성미가 급한 편인데다가 참을성이 없다 보니 빨리 자기 요구를 관철하려고 서두른다, 그래서 설복보다도 폭력과 강제적 방법에 의거한 “속도전”을 좋아하며 심사숙고함이 없이 즉흥적으로 명령과 지시를 내린다.
金日成은 설복과 교양을 사업 작풍의 기본으로 내세우지만 金正日은 공포와 이해타산을 사업방법의 기본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점에서 金日成이 계몽군주형의 독재자의 품성을 지녔다면 金正日은 히틀러형의 품성을 지닌 독재자라고 볼 수 있으 frjt이다.

그는 병적으로 질투심이 강하다. 그는 자기에게 충실한 부하에 대해서도 질투심을 가지며 경쟁대상이 아닌 다른 대국의 지도자들에 대해서도 강한 질투심을 가진다.
金日成은 자기를 따르는 부하들의 재능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스럽게 여겼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