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재건 : ‘통일비용’에 대한 정치적 왜곡과 대안
  • 관리자
  • 2017-09-19 13: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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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대다수 통일 전문가나 학자는 독일통일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당연히 언론이나 시민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이유는 천문학적 통일비용이다. 독일은 20년 동안 통일비용으로 2조 유로를 지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년 1천억 규모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30%에 달한다. 통일에 이렇듯 엄청난 비용이 연계되어 있느니 통일 기피증이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확대되는 것은 당연하다.

분단으로 인해 지불하고 있는 분단비용은 논외다. 과거부터 지불해왔던 군사비나 청년들의 군복무, 북한의 도발로 인한 불안감 및 스트레스 등 재정적 부담 및 사회적 비용은 언급조차 없다. 하지만 최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 외교적 충돌이 얼마나 많은 분단비용을 초래하는지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다.

중국은 사드 배치를 구실로 노골적인 경제보복을 자행하고 있다. 롯데나 현대자동차에 대해 각종 규제가 가해지고 환구시보는 “한국의 보수는 김치만 먹어 멍청해졌다” “절과 교회가 많은 대한민국이 할 일은 기도나 하는 것”이라며 민족감정을 자극하고 있다.

이런 대외적 피해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정부마저 우왕좌왕이다. 국가안보를 위해 사드 배치는 불가피한 조치이며 국민의 60% 이상이 찬성하고 있는데도 환경평가, 민주적 절차, 임시배치 등을 운운하며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북한 발 안보위기를 반미정서에 연계, 미국의 대한신뢰를 추락시키는 일도 다반사다. 중앙일보 김영희 기자는 그의 책 ‘베를린 장벽의 서사’에서 “한국에는 미국정부의 압력, 미국정부와 의회와 싱크탱크들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군산복합체의 괴력을 당해낼 힘이 없다. 한국은 결국 한 세트 2조 원이 넘는 사드를 최저 한 세트, 최고 네 세트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쓰고 있다. 사실관계를 왜곡했을 뿐 아니라 동맹국 미국에 대한 배신행위에 다름 아니다. 이 또한 분단으로 인한 비용이며 갈등이다.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통일비용을 내세워 공식적으로 독일식 ‘흡수통일불가’를 선언한 바 있다. 이 기피현상은 보수우파 정권인 이명박 박근혜 정권 하에서도 동일했다. 이미 좌파 정권 10년 동안 독일통일=흡수통일로 ‘돈 먹는 하마’라는 인식이 고착화되어 대세를 돌리기에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정감사장에 들어선 관계기관 공직자들은 의원들이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질의가 나오면 해명하기에 급급했다. 전 정부의 ‘통일대박’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된 통준위 조차도 흡수통일에는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통일비용’ 논리가 대한민국 통일의 미래를 좌우하도록 더 이상 방관할 수 없다. 엉터리 논리가 국가의 百年大計를 망치도록 내버려두는 것과 같다.

독일에는 ‘통일비용’ 논란이 어떻게 진행되어 왔을까? 결자해지(結者解之), 논란의 출발이 독일이니까 독일 내 논란과정과 결과를 리뷰 해보자.

통일 직전, 콜 총리는 증세 없이 통일비용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동독 재산을 처분해 얻게 될 수익으로 비용을 대부분 감당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동독 재산을 처분한 규모는 사유화 비용 및 대량실업 등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데 투입된 비용에도 미치지 못했다. 또한 복지비용 등 동독을 위한 재정 이전금은 예상보다 급증했다. 미지의 세계를 걸어가야 했던 개척자의 어려움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축복이다. 독일이 갔던 길을 간다는 의미에서 쉽다. 개척자가 범했던 실수나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것이 독일통일을 연구해야할 이유다.

독일통일을 거론하면 독일의 통일모델을 답습하자는 것일까? 아니다. 독일이 범한 실수나 시행착오를 수정해 가며 갈 수 있으니 1시간에 갈 길을 10분에 갈 수 있으며 100달러 비용을 10달러로 줄일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독일통일을 논하고 통일과정을 분석하고 살펴야 하는 이유다.

더욱이 통일비용에 대한 개념은 초기부터 논란의 대상이었다. 통일비용은 투자의 개념이라며 일방적인 통일비용 발표가 동서 갈등을 증폭시킬 것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이후 통일의 연수가 쌓이며 새로운 쟁점들이 부각되며 일방통행식 통일비용론에도 제동이 걸렸다. 새 쟁점은 대부분 통일 후 눈으로 확인하고 피부로 체감할 수 있는 구체적인 통일이익들이다.

첫째, 통일로 1800만 동독이라는 시장이 탄생했다는 주장이다. 1990년 당시 서독의 경제는 실업자 300만에 육박하는 침체상황이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 소비자 1,800만 시장이 탄생한 것은 기업에게는 통일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매출은 폭증했고 고용이 늘어나고 세수가 급증했다. 실직이 줄고 취직이 늘었다. 사회적 비용은 줄고 취직으로 누리게 된 삶의 질은 수치로 환원하기 어렵다. 통일이 가져다 준 혜택이다.

둘째, 통일은 동독의 젊은 고급 인력을 서독으로 불려 들였다. 통일 후 동독인의 서독행은 200만 명에 달했고 70%는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 이들 젊은 재원들이 서독에서 취직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성장에 기여했다. 기업의 가치는 오르고 정부는 소득세, 법인세를 챙겼을 것이다.

독일의 일간지 디벨트(Die Welt)는 2010년 10월 3일 ‘통일의 수혜자’라는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했다. 20년 동안 동독인이 서독에서 산출해낸 부가가치 규모가 600억 달러이며 이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런 맥락에서 할레 경제연구소 블룸 소장은 동독인들이 통일비용의 대부분을 지불해 왔고 지금도 지불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셋째, 통일과 함께 서독으로 유입된 동독인들이 임금상승을 저지하고 있다. OECD가 2012년에 발표한 주요국 단위인건비 비교에 따르면 독일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지수가 하락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995년을 기준(=1)으로 하여 2012년까지 단위인건비의 변화를 나타내는 지수에서 독일은 0.7로 단위인건비가 30% 하락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 프랑스가 1로 거의 변동이 없었고 이태리는 1.2로 20%, 영국과 스페인이 1.1 전후로 10% 내외의 단위인건비 상승을 보였다.

독일이 유일하게 30% 하락을 보인 것은 통일을 계기로 동독 인력이 대거 유입됨에 따라 임금이 하락한 결과였다. 또한 저임금 효과는 앞으로도 한 세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같은 요인들을 고려하지 않은 채 통일비용의 규모를 발표해 통일 두려움을 확산시켜왔던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이런 태도야 말로 독일발 통일비용을 정치적으로 왜곡한 것이고 자유민주통일에 대한 두려움을 갖도록 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통일비용의 바른 이해

이제 통일비용 관련 논쟁은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하며, 우리의 경우 감당할 수 있는 통일비용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라는 건설적인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다. 통일비용 논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보자.

우선 통일비용은 그 규모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투입한 재정을 어떻게 분배, 활용할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예를 들어 복지에 투입할 수 있는 재정적 능력은 어느 정도인지, 인프라 투자에는 얼마나 배정할 수 있는지와 같은 고민이다. 

이와 함께 통일비용은 북한재건을 위해 남한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로 정의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다. 독일의 경우, 20년 간 지출했다는 통일비용 2조 유로 중에는 거의 2/3가 동독 주민들의 복지비용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예산을 복지에 투입했다고 동독 주민들이 통일에 승복했고 행복감을 느꼈던 것은 아니다. 통일비용과 관련해 양적 크기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독인들의 감정이다. 1조 통일비용을 들이고도 상대방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면 무의미하다. 반대로 감당할 수 있는 예산이 1,000억에 불과하더라도 상대방이 마음을 열고 재건사업에 동참한다면 대성공이다.

서독의 통일비용 2조 유로는 서독국민이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성된 것에 다르지 않다. 우리의 통일비용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정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서독의 재정적 여건이 넉넉해 동독에 3조 유로를 이전했다면 통일비용은 3조 유로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통일비용은 각 기관에 따라 75조 ~ 2000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것은 통일비용의 기준이 애매모호하다는 반증이다. 편의에 따라 기관이 일정한 조건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맞춰 비용을 산출한 추정치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한 기관은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이 남한의 1/2에 도달하는 수준을 정해 통일비용을 산출해 발표하고 있다.

왜 1/2인가? 1/4이면 안되고 1/1이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가. 아니다. 그저 편의에 따라 정한 수치에 불과하다. 오히려 예산은 부족하더라도 북한 주민에 대한 애정과 배려가 담겨져 있을 때 만족도는 훨씬 클 수 있다. 복지라는 것은 한도 끝도 없다. 결국 복지는 국민의 태도에 좌우되는 변수에 불과하다.

국민소득 50 달러에 불과한 네팔에도, 5만 달러가 넘는 미국에도 사람이 생활하고 있다. 인간의 적응력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결국 통일비용의 규모가 아니라 통일 재정을 어떻게 관리하고 북한주민을 어떻게 설득하고 배려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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