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의 자유를 억제당한 경험
  • 북민위
  • 2022-10-28 07: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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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상황에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자유의 억제를 당한 기억은 많은 생각을 불러오게 했다. 바로 마음대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에의 경험이다. 현행 헌법상 “모든 국민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가진다(제14조)”고 명시되어 있으며, 기본권의 침해는 사회 공동체의 상호 이익을 보호하는 공공복지를 위한 것을 이유로만 제한당할 수 있다.

특수한 상황 아래에 놓인 우리는 공동체가 합의한 질서 혹은 국가적인 차원의 조치에 순응하였다. 이러한 결정과는 별개로, 이동의 자유가 억제당하는 것은 곧 사람들 간의 만남 및 정보 교류와 직장생활 등 생업 종사가 제약되고, 시장 거래 등이 제한되어 생존권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 따라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내가 그동안 실감해보지 못한 범주의 인권 침해의 심각성을 몸소 체험한 사례이다.

역사적으로 거주, 이전의 자유는 강제 노동관계를 기초로 했던 봉건체제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상업 및 화폐경제의 발달과 함께 사실상 인권의 하나로 인정받았다. 농경생활 이래로 수렵 및 채집을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이동이 필요했던 바, ‘이동’은 인간이 생존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후 세계인권선언을 비롯한 바이마르 헌법, 이탈리아 헌법 등 각국 헌법은 경제적 자유의 하나로 거주·이전의 자유를 보장하게 되었다. 더 많은 먹거리를 위해 이동하는 것뿐만 아니라,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더 유리한 장소에 거주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도 포함한다.

이동의 자유의 구체적인 내용

세계인권선언과 ICCPR(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등의 인권협약에 따르면 이동의 자유는 첫째, 한 국가의 영역 내에서 자유롭게 이동할 권리와 거주지를 선택할 권리를 뜻한다. 둘째, 국경을 넘을 권리로서, 어떤 나라로부터도 출국할 권리가 포함된다. 세 번째, 자국에 돌아올 권리를 포함한다.

이러한 권리가 제한되는 배경에는 권력으로 인한 차별적 대우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노예화가 가능해지고 국가 차원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제도의 집행을 통한 통제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일반 시민을 노예처럼 부리며 개인의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기 시작했다. 이는 경제적 자유 중 특히 직업 선택의 자유와 연동되며 부를 축적할 수 있는 기회에 차이를 낳는다. 북한의 경우, 국내 이동에 대해서나 국외 이동에 대해서 철저한 통제 기제가 작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가 국외 이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국가 공동체 유지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국외이동이 제한된 북한의 경우, 1990년 고난의 행군 시기 홍수와 가뭄으로 인한 대량 아사가 발생한 바 있다. 당시 그들에게 필요하였던 건 먹거리이며 동시에 먹을 것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이동의 자유였다.

북한은 김일성 일가의 독재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외부 사회로부터 유입되는 위협 요소를 없애는 것은 물론, 국내 주민들 간의 이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체제 유지에 힘써왔다. 근간은 성분제도이며, 이에 따른 직업과 주택 배정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결혼 및 직장 배치, 군 복무 등 특별한 사유가 아니고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 어렵다. 그러나 모든 것을 집단화 하여 국가 배급에 의존하는 현 체제가 무용(無用)해진 현 상황에서 개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인정할 필요성은 상당하다.

어떻게 통제하는가

북한 헌법에서는 ‘공민은 거주, 려행의 자유를 가진다(제75조)’로 규정되어 있다. 동시에 북한의 공민은 ‘거주등록’을 해야 하며(제4조), 평양시에 거주하는 주민과 그 외 지역의 거주자 간 등록증에 차별을 둔다. 지방에서 평양시로 이주하거나 주변지역에서 중심지역으로 이전하려는 공민은 반드시 해당 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제31조) 이동의 제한 기제가 상시 작동하고 있다. 거주하던 지역에서 퇴거할 때는 ‘퇴거등록’을 해야 한다.(제14조)

2020년 대한변호사협의의 북한인권백서에 따르면, 북한 출신인 증언자 대부분(82%)은 헌법상 이동의 자유에 대한 규정(1998년 제정)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정은 집권기 북한 당국의 허가 없이 살림집을 옮기거나, 장마당 경제를 위해 지역 간 뇌물을 주고 이동하는 사례가 차츰 증가한 경향이 있지만, 당연한 것을 주장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갖추어져도 이 사실이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성분의 하락이나 비사회적인 범죄 행위로 인해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거주지와 살고 싶은 곳에 살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는 무력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는 가족 중 한 명이라도 남한행이 확인된 경우 ‘회령에 집 한 채가 남을 때까지 추방시킨다’는 명목으로 추방 명령이 내린 적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2010년대 들어 한국행을 한 가족이 너무 많아 이러한 조치도 약해졌다. 단, 친척의 범죄행위, 비법월경죄나 밀수로 인한 처벌의 성격뿐만 아니라, 철도 및 아파트 짓기 같은 국가 차원의 정비 사업이나 좋은 집을 뺏으려는 의도적 목적으로 권력을 남용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서는 증대되는 외부정보유입으로 인한 비사회주의 행위에 대한 처벌적 성격으로 추방당하는 사례도 다수 있다.

통행증이 있는 사회

북한 주민은 원칙적으로 여행증을 소지해야 만이 거주지를 벗어날 수 있다. 자연히 여행증을 발급해주는 기관을 통하는 ‘뇌물’이 횡행하고 있다. 또 국경 연선 지역으로의 여행은 2중 승인을 받아야 한다. 김정일 시대와 달리 김정은 시기에는 절차를 거쳐 여행증명서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드물다는 증언도 존재한다. 2000년대 이후 여행증이 필요없는 일명 ‘써비차’가 등장하기도 하였다. 지나치게 강한 제도는 곧 제도의 효용을 낮게 만드는 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국제사회 각국마다 이동의 자유를 제약하는 수준은 다르다. 이동의 자유에 관한 보다 폭넓은 논의가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에서 북한만이 사상적 이유로 이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코로나로 인해 실제 경험해본 이동의 자유 제약, 매우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인권 침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세계의 일부가 되어 주고 있다’는 문장을 떠올리며, 잠시나마 북한의 현실에 시선을 거두지 않기를 바란다.


출처 : 데일리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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