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Out NK] ‘안보에 자해’ 대공 수사 이관, 돌려놔야
  • 관리자
  • 2021-01-05 08:3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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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13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국가정보원법 전부개정법률안이 재적 187명 중 찬성 187표로 통과됐다. 이날 국가정보원법에 대한 무제한 토론이 투표를 통해 종료된 뒤 국가정보원법에 대한 투표가 실시됐다. /사진=연합

더불어민주당이 지난해 12월 13일 절대다수 의석의 힘으로 야당의 국가정보원법(이하 국정원법) 개정안 필리버스터를 강제로 종결한 데 이어 동 개정법안을 끝끝내 단독 처리했다. 여당이 권력기관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공수처법 개정안, 경찰법 개정안과 함께 추진해 온 국정원법 개정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대공 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에 대한) 자기 책임의 원칙’에 어긋날뿐더러 ‘대공 수사’의 원래 목적도 무력화시키는 개악일 뿐이다. 한마디로 게와 구럭을 모두 잃는 ‘해망구실(蟹網俱失)’인 것이다.

명분과 실리 모두를 상실한 이번 국정원법 개정의 문제점을 하나씩 짚어본다.

먼저, 국정원법 개정을 주도한 김병기 의원 등 국회 정보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대공 수사권의 경찰 이관과 관련 해서 “대공 정보는 종전과 같이 수집하되 수사만 하지 않음으로써 인권 침해를 원천 차단하고 오직 국가와 국민만 위해 헌신하는 기관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발걸음을 내디뎠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라며 “국정원이 해야 할 분야는 강화하고 잘못된 흑역사는 영원히 종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국정원법 개정의 취지를 설명했다.

대공 수사는 물론이고 모든 수사는 그 과정에서 인권 침해의 소지가 있다. 이 같은 수사의 속성 때문에 수사권이 있는 조직은 국정원이든, 경찰이든, 그리고 검찰이든 어느 기관이라도 동일한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다. 결국 대공 수사권을 이관받은 경찰에 의해서도 인권 침해라는 ‘새로운’ 흑역사를 기록할 개연성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이런 소지를 방지하려면 수사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권한을 남용한 행위자에게 엄격한 처벌을 과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여당이 설명하는 행간을 읽어보면 마치 국가정보원에 대공 수사권이 있으면 흑역사를 만들고, 경찰에 대공 수사권을 이관하면 그렇지 않을 것처럼 호도(糊塗)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국정원법을 개정한 논리를 적용할 경우, 국회의원이 권한을 남용하면 국회의 입법권을 사법부나 행정부에 이관해야 하며 대통령이 권력을 전횡하면 탄핵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른바 ‘대권’으로 표현되는 대통령의 권한을 다른 통치기관으로 넘겨야 할 것이다. 그야말로 빈약한 명분이 아닌가?

다음은 대공 수사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 하는 실리의 문제인데, 결론적으로 말하면 효용성, 관련 부서와의 협조 문제 등을 고려해 볼 때 대한민국의 대공 수사 능력은 급격한 저하를 넘어 무력화될 것이다.

첫째, 국정원법 개정과 국가수사본부의 출범으로 대공 수사는 이제 경찰이 전담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여당은 -야권의 안보 공백 우려 주장을 의식한 듯-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국가수사본부 등 독립된 수사기구로 이관하되 시행을 3년간 유예하는 조항을 삽입했다. 하지만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이장폐천(以掌蔽天)일 뿐이다. 문재인 정부(2017~2020년)가 들어선 이후 검거된 간첩은 2명에 불과했다.

이는 북한의 대남공작 활동이 줄었다거나 국정원의 대공 능력이 저하되어서가 아니라, 대공 수사관의 자부심과 의지를 꺾는 정치적 상황에 따른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공 수사권 이관을 3년간 유예한다는 것은, 이 기간동안 어느 누구에게도 대공 수사에 책임이 없게 된다. 바꿔 말하면, 대공 수사가 앞으로 최소 3년간은 진공 상태로 들어가는 것이다.

둘째, 효율성의 문제이다. 국정원법 개정에 따라, 향후 대공 수사는 ‘국정원이 대공 정보를 수집·분석해서 경찰에 보내면 경찰이 이를 받아 수사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

대공 수사의 대상은 일반 국내 사범과 달리 대부분이 북한발로서, 고도의 보안 유지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분석 평가의 불확실성도 높아진다. 이런 제한에도 불구하고 정보와 수사 기능이 동일 부서에 있으면, 만일의 사태 발생에 대비하는 조기경보 차원에서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국정원법과 경찰청법 개정으로 ‘정보 따로, 수사 따로’의 상황이 되면, 국정원은 대공 정보를 경찰에 제공하는 데 많은 부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불확실한 정보를 제공할 경우, 조직의 신뢰도가 저하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어서는, 경찰은 ‘현행 대공 사범’만을 수사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결국은 대공 수사의 효율성이 급격하게 떨어지게 될 것이다.

셋째, 경찰이 대공 수사를 전담하게 되면 ‘말이 마차를 끄는 것이 아니라, 마차가 말을 끄는 형국’이 될 것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난달 15일 김창룡 경찰청장과 정보·보안 관련 경찰 수뇌부를 초청해 “오늘부터 국정원의 모든 대공 수사는 경찰과 합동으로 진행할 것”이라며 “3년 후 대공 수사권이 이관될 때까지 경찰이 사수(射手)가 되고 국정원은 조수(助手)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덕담으로 건넨 발언이기는 하지만, 양 기관의 위상으로 볼 때 그야말로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주지하다시피, 국가정보원은 직무 범위가 많이 축소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 직속의 국가정보기관으로서 국가안보에 총책임을 지고 있다. 반면, 국정원의 카운터파트인 경찰의 대공 수사 담당 부서는 정부조직법 상으로 행정안전부→경찰청→국가수사본부→대공수사국에 자리하고 있다. 이는 국가정보기관의 위상이 행안부의 3단계 하위 부서인 대공수사국의 지위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관계는 군(국방부)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지난 83년 12월 부산 다대포로 침투하던 무장 간첩을 생포한 것은 군사작전의 결과이다. 이처럼 대공 수사는 군 병력의 투입이 필요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데 경찰(대공수사국)이 이런 경우에 군을 지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대두된다.

이상의 문제점들을 종합하면, 경찰의 대공 수사는 국정원에서 제공한 (100% 확실한) 정보에 의거하여 현행범을 수사하거나 검거하는 역할에 국한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는 국가정보원의 흑역사를 단절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한 것이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는’ 수준을 넘어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환기(喚起)하거니와, 대공 수사는 자유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북한 권력자의 기도에 맞서 최전선에 벌이는 치열한 전투 현장이다. 결코 가상 현실이 아니다. 이런 안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한 것은 그 진의가 무엇이든 간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안보 자해행위이다. 대공 수사권을 국가정보원에 되돌려야 하는 소이연이다.

 정창열 북한연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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