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와 기대 동시에 발신한 북한의 심야 열병식 메시지
  • 관리자
  • 2020-10-12 10: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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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노동당 창건 75주년을 맞아 개최한 열병식은 가까운 미래에 형성될 한반도 안보 지형에 우려와 기대감을 동시에 남긴 이벤트였다. 북한은 이례적으로 심야에 열린 이 행사를 통해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하나는 대북 정책에서 미국의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자위적 전쟁억지력을 지속 강화해 나가겠다는 것과 또 다른 하나는 코로나 19위기의 진정 국면 때 남북관계 복원에 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으로 간추려진다. 

북한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시험 발사 등 무력행사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신 이번엔 비교적 온건한 방식을 택했다. 미국의 대선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아 국제정세의 유동성이 커진 만큼 수위조절을 시도했다는 해석이 주조를 이룬다. 

차기 백악관 주인의 향배를 확실하게 점치기 힘든 미묘한 전환기적 시점에 굳이 무리수를 두지 않은 셈이다. 북한 내부적으로는 지난 여름 홍수피해와 이에 따른 식량난, 현재진행형인 코로나 19 방역으로 지친 주민들을 위무하려는 체제결속의 의미를 행사에 더 많이 부여한 측면도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열병식 연설에서 울먹이며 주민들을 달래고 나선 장면에 그 의도가 녹아들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면서도 북한은 신형 전략자산의 전시효과를 통해 미국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북미 정상의 하노이 노딜 회담 이후 개발을 진행해온 신형 ICBM과 북극성-4형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개선·증강된 무기의 공개가 그것이다. 

아직 시험발사 단계를 거치지 않은 새 ICBM은 길이가 늘어나고 직경이 굵어져 미국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을 정도로 사거리가 확장됐다는 분석을 낳는다. 다탄두 장착도 가능해 미국 동부의 거점 도시인 워싱턴DC와 뉴욕을 동시 타격할 능력도 갖췄다는 평가가 있다. 

김 위원장은 연설에서 이를 선제공격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자위용이라고 선을 그었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여간 위협적인 무기가 아닐 수 없다. 미 행정부 고위 관리가 북한이 계속 핵과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을 우선시하는 것에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데서 워싱턴 조야의 반응이 묻어난다. 미국 대북전문가들은 북한이 핵 강국으로 진화 중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이 있었으나, 북한의 대량파괴무기(WMD) 개발 의지와 능력을 꺾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심화, 발전하는 시간을 줬다는 낭패감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열병식은 당분간 북미 간 대치 구도가 지속할 것이라는 우려를 재확인했다는 게 미국의 지배적 정서인 것 같다. 

그렇지만 반드시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북한의 증강된 자위력이 미국과의 협상력을 키워 역설적으로 중단된 대화의 재개를 재촉할 가능성은 열려 있어서다. 미국이 대선 기간이어서 당장 유의미한 움직임을 보이긴 어렵겠지만, 대선 이후 어떤 형태로든 대화의 모멘텀을 찾으려는 현실적 이유와 동기는 그만큼 더 커졌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코로나 19 극복 후 남북이 다시 두손을 맞잡을 날이 오길 기원한다'는 김 위원장의 유화적 발언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은 '사랑하는 남녘의 동포'라는 표현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의 발언이 최근 연거푸 이뤄진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한 일종의 화답 성격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우리 공무원의 피격 사망 사건 등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에 숨통을 트는 긍정적 신호로 해석할 여지는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공무원 피격 사건 직후 우리 국민에게 통일전선부 통지문을 통한 전언 형식으로 사과의 뜻을 보내왔지만, 이번에는 육성 메시지로 남북관계 복원을 희망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점은 체감도가 다르다. 

청와대가 1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긴급 상임위를 열고 김 위원장 발언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 것도 이런 배경에서일 것이다. 하지만 남북관계의 복원이 당장 가시권에 들어올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공무원 피격 사망 사건과 관련한 남북한의 공동조사와 시신 수습에 진전이 전혀 없고, 코로나 사태의 조기 종식이 쉽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숙성의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피격사건 문제가 어떻게든 해결돼야 한다. 대승적 차원에서 묻어 두고 관계복원으로 직행하기에는 우리 정부가 감당해야 할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큰 탓이다. 

북한이 공동조사든 시신 수습이든 전향적이고, 진정성 있는 자세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이런 경로를 거쳐 얼었던 남북관계가 풀리면 북미 간 중재자로서의 우리 정부 역할도 다시 회복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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