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리자
- 2021-01-13 07:5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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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 전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북한의 8차 당 대회가 지난 5일 개최됐다. 7차 당 대회가 열린 지 4년 8개월 만에 열린 8차 당 대회는 많은 내용을 양산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경제정책 평가 및 계획, 국방력 강화, 남북 및 대외관계, 조직(인사) 개편 등 네 가지로 추릴 수 있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8차 당 대회는 당 조직의 정비를 통한 ‘김정은 조선’의 확고한 구축을 목표로 이뤄진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8차 당 대회 첫날 개막연설에서 김정은은 경제정책의 대실패를 자인했다. 김정은은 “국가경제발전 5개년 전략수행 기간이 지난해까지 끝났지만 내세웠던 목표는 거의 모든 부문에서 엄청나게 미달됐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0월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 때에도 김정은은 주민들에게 재난을 이겨내자고 호소하며 눈물까지 보인 적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수령의 무오류성’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김정은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새로운 수령상을 주민들에게 노정함으로써 더욱 큰 충성심을 끌어내려는 ‘독재자의 고도심리학’을 실천했다고 볼 수 있다.
2016년 7차 당 대회 당시 김정은의 경제 분야와 관련된 언급은 전체 보고의 22%였는데 8차 당 대회엔 51%로 대폭 늘어났지만, 주민들의 최대 관심사인 경제 문제와 관련해서 김정은은 이렇다 할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다. 기껏해야 새로운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언급하며 국가경제의 자립적 구조를 완비하겠다는 내용을 발표한 수준이었고, 이는 주민들에게 고통스런 ‘자력갱생’ ‘자급자족’ 기조의 지속으로 와 닿을 뿐이었다. 이는 향후에도 ‘셀프 고립’을 통해 북한 사회 전체를 외부와 철저히 차단시켜 독재의 아성을 구축하겠다는 것으로 경제 개선과는 하등의 관련이 없는 내용이다.
대신에 김정은은 ‘공화국’의 안보에 관해서는 강고한 지도자 상을 과시했다. 김정은은 36차례나 핵을 언급하며 “책임있는 핵보유국으로서 완전무결한 핵 방패를 구축했다”고 역설했다. 그동안 명분으로나마 내세웠던 ‘비핵화(非核化)’라는 단어는 아예 자취를 감췄다. 북한 당국은 5년 만에 노동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처음으로 국방력 강화를 명시하기도 했다. 개정 당 규약에는 “조국 통일을 위한 투쟁 과업 부분에 강력한 국방력으로 근원적인 군사적 위협을 제압해 조선반도(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환경을 수호한다”는 점이 명시됐다.
이는 한반도의 적화통일 기조를 유지할 뿐 아니라, 기존의 자위적인 전쟁억제력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공격력을 갖추겠다는 점을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정은은 핵잠수함 개발, 사거리 1만 5천 km에 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 등을 시사하면서 국가방위력이 적대 세력의 위협을 영토 밖에서 선제 제압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올라섰다고 언급했다.
‘공격적 국방력’의 강화에 관한 김정은의 자신감은 대남, 대외관계에서의 ‘갑질’로 나타났다. 대남관계 언급은 7차 당 대회의 19%에서 8.3%로 축소됐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대외관계 언급도 15%에서 7.7%로 대폭 줄어들었다. 남북관계 및 대미관계의 개선에 비중을 두지 않겠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번 당 대회에서 복귀된 비서국 체제에서 대남, 국제비서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뒀다는 점에서도 이 같은 의도를 읽을 수 있다.
특히 김정은이 대외 사업 부문에서 사회주의 나라들과의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겠다고 한 대목은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를 강화하며 한국, 미국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과의 관계와 관련해서 김정은은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김정은은 공동방역, 백신 지원, 그리고 개별관광 재개 등 한국의 대북지원을 ‘비본질적’ 문제로 치부하며 전략무기의 도입 및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단을 본질적 문제로 규정했다. 본질적 문제에 관한 한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남북관계 개선이 가능할 수 있다는 요지였다.
이 같은 김정은의 발언엔 커다란 모순이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전작권(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의 조건에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작권 조기 전환을 위한 두 가지 핵심 조건은 각종 첨단무기를 확보해서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고, 한·미 연합훈련을 통해 전작권 전환의 조건 충족 여부를 검증하는 것인데, 김정은이 이 두 가지 조건의 중단을 남북관계 개선의 ‘본질적’ 문제로 내세우면서 한국 정부에 딜레마를 던진 것이다. 지난해 9월 16일 북한 선전매체 <메아리>는 “미국으로부터 군사주권을 회복하겠다던 남한의 공약이 ‘빈 약속’이 되어가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그런데 김정은은 전작권을 조기에 넘겨받으려는 한국 정부의 발목을 잡고 있다. 다양한 대북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사실에 더불어 이 같은 북한 당국의 입장은 남북관계 개선에 커다란 장애물이 될 공산이 크다.
대미관계와 관련해서도 김정은의 태도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김정은은 미국을 여전히 최대의 주적으로 규정하며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의 철회를 요구했다. 미국에 대해 ‘강대강 선대선’ 원칙을 밝히면서도 김정은은 “대외정책 활동을 우리 혁명 발전의 기본 장애물, 최대의 주적인 미국을 제압하고 굴복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지향시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공격적 국방력’의 강화를 통해 미-북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고 향후 바이든 행정부와 개최될 수도 있을 핵협상에서 주도권을 장악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강경한 대북정책 기조를 내거는 경우, 미-북 관계엔 짙은 먹구름이 낄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바이든 당선자는 국무부 부장관에 한반도 전문가인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을 지명했는데, 셔먼 전 차관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북한 비핵화가 지지부진하자 강경한 입장을 표방하기도 했던 인사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지명자가 임명될 경우, 블링컨-셔먼 국무부 수장들의 대북 강경노선이 현실화되면 미-북 관계에도 가시밭길이 펼쳐질 수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대내정치와 관련해서 김정은의 독재 강화 의도는 더욱 명확해진다. 8차 당 대회를 통해 북한 당국은 노동당 지도부를 새롭게 구성하며 세대교체를 통한 김정은 충성 세력들을 전면에 포진시켰다. 북한 당국은 과거의 비서국 체제를 부활시키며 김정은을 총비서로 추대했다. 이 같은 조치는 김정은의 권력 강화뿐 아니라 대내적 통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과거 당 비서국은 당원과 주민들뿐 아니라 북한의 모든 부문에 대한 정책적 통제와 지도 기능을 수행해왔었다. 1966년부터 시행된 비서국 체제는 일단 당 회의에서 채택된 제반 정책을 집행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16년 6차 당 대회에서 정무국으로 바뀌기 이전에 당 중앙위원회의 비서국에는 10명 내외의 비서를 두고 지방 당 위원회의 비서처에는 책임비서와 비서들이 있었다. 당 비서국 산하에는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통일전선부를 비롯해서 전문부서가 있었고, 비자금을 조달하는 38호실과 39호실 등도 포함돼 있었다.
이번에 부활한 비서국에도 김정은이 총비서를 맡고 최정예로 인원을 최소화하면서 가장 핵심적인 분야의 비서들로만 구성됐다. 이 같은 사실은 김정은 독재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직 개편임을 말해준다. 이번 당 대회에서 가장 약진한 조용원(조직), 박태성(선전), 리병철(군사), 정상학(감사), 리일환(근로단체), 김두일(경제), 최상건(과학교육) 등이 그들이다. 대남 및 국제비서는 임명하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이번 당 대회에서는 박봉주, 최부일 등 고령의 구세대들이 물러나고 조용원, 오일정(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3남) 등 김정은 충성파들이 요직을 차지한 점도 주목된다.
8차 당 대회를 통한 김정은 독재 강화 의도는 사회 통제 조치의 강화에서도 잘 나타난다. 지난 8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사업총화 보고에서 ‘우리식 생활양식을 확립하고 비사회주의족 요소들을 철저히 극복하는 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를 언급했다고 보도했다. ‘우리식 생활양식’을 확립하겠다는 얘기는 주민 생활 통제를 더욱 강화해서 외부 정보의 유입을 차단하고 자본주의식 문화의 확산을 저지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 전체를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고립된 섬’으로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이번 8차 당 대회에서는 수없이 많은 내용들이 김정은의 사업총화라는 이름으로 양산됐다. 그러나 백화점식으로 나열된 정책 계획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실현 불가능한 전시용 사업이다. 5년 후에 열릴 수도 있는 9차 당 대회에서 김정은은 또 다시 ‘솔직 담대한’ 모습을 보이며 정책 실패를 자인할지 모른다. 문제의 본질은 독재의 강화가 아니라 열린 북한을 통한 회생의 길이라는 점을 깨닫기엔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마음이 씁쓸해진다.
문순보 대진대 북방연구소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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